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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진왜란 당시 군주였던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조선의 선조가 퇴갤한 이후 새로이 일본의 지배자가 된 도쿠가와와 조선의 광해군이었고 그들 모두 양국간 외교관계 수립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일본의 쇼군직에 취임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국내에서 자신의 위엄을 뽐내기 위해 외국사절단을 게스트로 초빙하고싶어했고, 조선의 광해군 정권은 북쪽에서 그 세력이 막강해지는 여진족에 대비해 남방의 위협을 제거할겸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일본과 통교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필요성의 인식과는 별개로 사절단을 누가 먼저 보내냐는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간 신경전이 계속되었는데, 이는 1598년 일본 군대가 반도에서 철군한 이후에도 양국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적대관계였던 탓에 먼저 관계개선 사절단을 보낸 쪽이 GG쳤다는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양국간의 불편한 관계지속이 가장 불편한 세력이 존재했는데, 바로 일본과 조선 사이에 있는 츠시마였다. 츠시마는 작은 섬을 본토로 하는 세력으로 그 농업기반이 협소하였고 따라서 일본과 조선의 중간에서 양국간 교역에 자국의 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이었다. 따라서 일본과 조선 간 무역이 단절된 상태에서 츠시마가 만성적인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었음은 두 말할 것 없을 것이다. 따라서 츠시마는 과거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에 했었던 짓과 같은 국서 주작을 획책하였고, 그들의 계략은 성공하였다. 츠시마는 막부의 국서와 조선 왕조의 국서를 중간에 개작하여 각자 상대편의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채워 보냈고, 이로 인해 일본과 조선간 관계는 재개되었으며 조선은 비정기적으로 에도 막부에 조선통신사를 보내게 되었다. 비록 양국간 관계는 재개되었지만, 주작질로 인해 재개된 관계인만큼 속은 그만큼 뒤틀려있었다. 양국은 공식적으로는 대등관계를 표방했지만, 일본 측은 대내적으로 조선통신사를 속국의 조공사절단으로 선전하였으며, 조선 측은 일본을 하등국가로 치부하곤 했다. [[파일:Japanese Bridge, Hoi An.jpg|thumb|250픽셀|베트남의 교역도시 호이안의 재팬타운에 있던 일본교(橋)]] 일본의 조선과의 관계는 18세기 중반에 들어 시들시들해졌으며, 1811년 마지막 통신사가 츠시마에서 간략하게 업무를 보고 조선으로 돌아감으로써 이 제도는 폐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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