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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 과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만 섬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조선 및 중국과 더불어 정벌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일으킨 임진왜란의 여파로 중국과의 무역이 단절되었고 이는 일본의 경제와 금수저들의 취미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히데요시의 뒤를 이은 에도 막부는 이와 같은 현상을 타개하고자 하였고 같은 맥락에서 당시 막부의 위정자들은 대만이라는 섬에 주목하였다. 대만은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멀티를 건설한 유럽 세력의 중간에 위치한 교통상의 요지였기 때문에 무역기지로서의 포텐셜이 있는 땅이었던데다 당시 대만엔 중국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당시 중국은 명 말기로, 본진 지키기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막부는 1609년 아리마 하루노부를 대장으로 하는 대만 탐험대를 꾸렸다. 이 탐험대는 대만 원주민의 공격을 받아 피해를 입긴 하였으나 대만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귀환하였다. 1616년, 막부는 4000명의 병력과 13척의 대형 선박으로 구성된 정벌대를 편성하였고 같은 해에 이들은 나가사키에서 출항하여 대만을 향하였다. 막부는 이들을 통해 대만의 상륙가능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입수하고 무역전초기지를 설립코자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나 치명적인 손실을 입어 궤멸되었다. 13척의 선박 중 겨우 1척의 선박만이 대만의 해안에 당도하였고, 이들마저도 대만 원주민들의 공격을 버틸수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회항하였다. 결국 막부의 대만 개척시도는 충격적인 실패로 귀결되었고, 이를 계기로 에도 막부는 대만에서 영원히 손을 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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