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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농업은 에도시대 일본의 기간산업이었으며, 막부와 제번들도 이의 중요성을 인지하였고 적극적으로 육성에 나섰다. 일본의 주 생산작물인 쌀은 농업용수가 풍부히 공급되는 수전(水田)에서 그 생산량이 배가된다는 특성이 있는데, 수전은 자연적인 강수량만으로는 유지가 불가능하였고 따라서 농업인프라가 충분히 확충되지 못했던 전국시대까지만 해도 일본 농경지의 수전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에도시대에 들어 막부와 각 번들이 농업용수로 확충에 주력하여 평지의 논들이 수전으로 변모해갔으며, 언덕에 지어진 경사전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측량에 노오오력을 기울이면서 점차 농업용수가 공급되는 수전이 되었고 이로 인하여 토지생산성이 향상되었다. 질적인 측면 이외에도 양적인 측면에서의 발전도 이루어졌는데, 신전(新田)개발이 바로 그것이다. 신전개발은 난세가 수습된 17세기와 막부 말기에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600년경에 약 160만 정보였던 경지면적은 1720년경에 이르면 300만 정보로 확대된다. 평지를 개간하는것 이외에도 만성적으로 부족한 일본 열도의 평지를 늘리기 위한 간척사업도 병행되었다. 일본의 간척사업은 야마토 시대부터 존재해 왔지만 에도시대에 이르러 각 정치체들의 후원에 힘입어 활발해졌다. 가장 괄목할만한 간척사업은 큐슈 서쪽의 아리아케 만에서 이루어진 간척으로, 에도시대 주요 번 중 하나인 사가 번은 이 해역에서의 간척사업으로 6300정보의 수전을 새로이 간척한 바 있다. 이러한 경제발전에 힘입어 식생활수준의 개선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는데, 17세기에 1인당 평균 쌀 소비량이 연 1석<ref>약 180리터</ref>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메이지 초년에 이르면 1.3석으로 증가한다. 농업생산성의 증가는 잉여생산물의 전례없는 급증으로 귀결되었고 이는 상품작물의 생산이라는 농업의 새로운 트렌드로 이어졌는데, 주로 목면과 생사, 차 등이 주요 상품작물로 생산되었다. 쌀 또한 주요 상품작물 중 하나가 되었다. 17세기에는 이러한 농지개발 산업이 지나치게 활발하게 이루어져서 중앙의 막부가 어느정도 규제를 넣기도 했지만, 18세기에 들어 신전개발활동이 침체국면을 맞게되자 교호개혁 당시 막부가 '감정신전십분지일법'이라는 농지 개척자의 이익을 보전해주는 법을 제정하여 신전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한 바가 있다. 그 이외 막부는 농민의 유랑화나 영세화도 방지하고자 하였다.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츠는 전답영대매매금지령(田畑永代売買禁止令)을 내려 농민이 자신의 논과 밭을 매매하는것을 금지하였고, 4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츠나는 전답의 분할상속에도 제재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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