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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 에도시대에 들어 잉여농산물 생산이 폭증하여 상거래가 전례없이 활발해졌고 이는 공예품 수요증가로 직결되어 공업활동도 활발해졌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 자기(磁器)생산기술을 보유한 지역은 중국, 조선, 베트남이 유삼무사했고 일본은 자기수입국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계기로 납치한 조선인 도공들을 통해 자기생산기술이 일본에 보급되었고, 17세기 초중엽 정치적 혼란을 피해 탈지나한 중국 출신 도공들이 대거 일본으로 이주함에 따라 일본 또한 세계 주요 자기생산/수출국으로 발전한다. 일본의 자기생산 및 수출량은 17세기에 그 정점을 찍었다. 기존의 주요 자기수출국가인 중국이 막장상태가 되면서 일본이 세계에서 경쟁상대가 없는 최대 자기수출국가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안정을 되찾고 주요 자기수입지역인 유럽이 18세기부터 자체적으로 자기생산이 가능해지자 일본의 자기수출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일본의 자기들 중 가장 유명한 자기는 바로 이마리 자기이다. 이마리 자기는 아리타라는 도공도시에서 생산되는 자기이지만, 이마리라는 이름의 항구에서 수출되어 나가사키에 집적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마리 자기의 카키에몬 양식과 킨란 양식은 유럽의 자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에도시대 경제가 전례없이 번창하면서 사치품 수요가 크게 증가한 바 있다. 당시 에도 막부는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던 사치풍조를 막기 위해 노오오력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사치품 중 하나는 바로 비단이었고 쿄토의 니시진(西陣) 비단이 최고의 명품으로 꼽혔다. 니시진은 그 기원이 헤이안 시대로까지 거슬러올라가는 1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쿄토의 견직공 거주구역에서 생산되는 상품으로 에도 시대 내내 높은 수요로 인해 번창하였다. 에도시대 말기에 일본에 이식된 산업으로는 유리공예가 있다. 나가사키를 통해 수입된 서구의 유리는 일본의 사치품 애호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유행을 창출하였고 일본 내에서도 유리공예가 새로이 신산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납이 첨가된 크리스탈 유리를 깎아만든 일본 전통 유리공예품을 키리코(切子)라고 부르는데, 에도 시대에 키리코 공예가 발달한 양대 지역은 오늘날의 도쿄인 에도와, 오늘날의 카고시마 현인 사츠마 지역으로, 막부의 쇼군과 사츠마 번 다이묘의 적극적인 후원 하에 성장하였다. 원래 에도의 키리코는 투명함과 무색 세공을 가한것이 주 특징이었고, 사츠마 키리코의 특징은 유리를 여러장 겹쳐서 만들었기 때문에 투명함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과 색상 공예를 가한 것이었지만, 현대시대인 지금은 양 지역간 기술교류로 인해 디자인이 비슷비슷해졌다. <gallery> 파일:Imari Porcelain.jpg|이마리 자기그릇 파일:Imari Jar.jpg|이마리 자기 항아리 파일:Nishijin-ori.jpg|니시진 비단원단 파일:Nishijin-Ori2.JPG|니시진 비단원단(2) 파일:Edo Kiriko.jpg|에도 키리코 파일:Satsuma Kiriko.jpg|사츠마 키리코 </gallery>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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