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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무사들은 여전히 지배계급이었으나, 과거처럼 지나가는 평민을 마음대로 일본도로 베어 죽이는 만화에나 나올법한 행동은 죽고싶은게 아닌이상 못 했다. 사실 전국시대에도 이러지는 못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여종들을 마음껏 따먹었을 거란 것과 같은 수준의 루머이고 망상 이는 평화기에 접어들어 과거 전국시대에 비해 무사의 사회적 필요성은 줄어든 반면, 생산계층의 사회적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증대된 사회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에도시대의 법전인 공서방어정서(公事方御定書 <I>쿠지카타오사다메가키</I>)에 의하면 키리스테고멘(切捨御免 / 무사가 무례한 자를 베는행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키리스테고멘의 대상이 된 평민이 무사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한 정황이 입증되어야 했다. 그러나 대개 평민을 벤 무사는 할복형에 쳐해졌는데 이는 이를 입증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당시 무사사회에서는 칼을 함부러 쓰는 행위 자체를 일종의 수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민에게 조롱을 당한것 그 자체도 무사들 사이에서는 수치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던 미친놈에게 욕을 얻어먹은것만으로도 할복을 한 무사들도 가끔 있었을 정도이다. 이렇다보니 에도시대에는 오히려 지배층인 무사들이 평민을 피해다니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었다. 평화시대에 이르러 사무라이들의 본 스킬인 싸움질은 사실상 무쓸모가 되었고, 재능충 사무라이들은 붓을 들고 막부나 번에서 공무원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러나 사무라이 인구 수에 비하면 공직의 수는 적었기에 대다수의 하급 사무라이들은 쥐꼬리만한 연공으로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 이 시기 무사들은 무사도에 정신적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전국시대 사무라이들에게 있어서 싸움은 일상이었지만, 이 시대 사무라이들은 전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기 때문에 칼질이 일종의 로망이 된 것이다. 이 시기에 정립된 오리지널 사무라이와는 별 관계없는 무사도는 현대시대에도 사무라이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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