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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교육(敎育)이라는 단어는 에도 시대 일본에서 최초로 쓰이기 시작한 단어이다. 에도 시대 이전의 일본이나 전통적인 중화권에서는 교화(敎化)가 education에 대응되는 단어였으나, 현재 교화는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일본은 전근대사회 중 유별나게 교육이 활성화된 국가였다. 에도 시대 일본의 문자해독률은 40%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되며 남성의 50%, 여성의 20%가 글을 읽을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에도 시대의 초등 서민교육은 테라코야(寺子屋)에 의해 수행되었다. 중세 사원의 교육원에 유래를 두고 있는 테라코야는 입학생들에게 문자의 해독과 쓰기, 계산 등 간단한 산수, 도덕, 그리고 일본과 동아시아의 역사 등을 가르쳤다. 테라코야의 교사는 주로 학식있는 평민들이었고, 전체 교사의 10% 가량이 여성이었다. 테라코야는 그 규모가 천차만별이었는데 10명 가량의 학생이 다니는 학교부터 100명 이상의 학생이 수학하는 학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거의 대부분의 테라코야는 남녀공학이었다. 상위 학교로는 번교(藩校)와 사숙(私塾)이 있었다. 학교는 서민용 교육기관이었으며, 사숙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 번교는 각 번에서 설립한 학교이다. 일반적인 번교는 재지 사무라이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학교를 의미하는 것이나, 개중에는 서민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학교도 있으며 일반적인 사족학교들 중에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수가 일반 평민에게도 입학을 허용하는 모양새를 취하였다. 생도들은 번교에 대개 7~8세에 입학하여 교육적 성취도에 따라 13세에서 20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이대에 졸업하였다. 대부분의 번교는 유교(특히 성리학) 위주의 교육 커리큘럼을 갖추고 있었으나 소수의 일부는 국학이나 난학, 의학 등을 메인으로 삼기도 하였다. 번교는 사무라이 학교인만큼 검술과 궁술 등의 무예도 중시하였으며, 번교생들은 각종 기예에 대한 수행도 겸하였다. 유교 이외의 학문을 중히 여기는 학교의 비중은 번교보다 사숙이 더 높았다. 대표적인 사숙으로는 일본 개화기를 주도한 인물들을 대거 배출한 쇼카손쥬쿠(松下村塾)를 들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사숙에는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입학할 수 있었고, 유교 위주의 번교 교육에 염증을 느낀 학구열이 높은 젊은 사무라이들이 번교에서 이탈하여 사숙에 몸을 담기도 하였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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