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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에도시대 일본은 약 300개의 '''번(藩)'''으로 구성되어 있는 봉건제 국가였다. 번의 개수는 번의 신설,합병,폐지 등으로 인해 조오오금씩 변하긴 했으나, 250~300개 사이의 갯수를 유지했다. 번 이외에 고대시대 율령반포를 통해 정비된 행정구역명인 국(國)이라는 개념이 존재했으나 에도 시대엔 실질 행정구역으로서의 의미는 없었다. 국의 숫자는 68개로 번의 숫자보다 적었다. 에도시대에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떨어지는 츠시마 국, 이키 국의 2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66개 국 중 1개 이상의 국을 통치하는 번의 다이묘를 국주(國主)라는 클라스있는 타이틀로 부르기도 하였다. 에도시대 최대 번인 카가 번은 3개의 국을 통치했으며, 사츠마 국은 2개의 국을 통치하였다. {| class="wikitable collapsible" border="1" table align=right |- |colspan=12 style="color:#4682B4;background-color:white;text-align:center"|'''에도시대 일본 10대 번<br><small>1863년 기준</small>''' |- !style="text-align:center"| 순위 || 번명 || 지배가문 || 석고<ref>연간 쌀환산 산출량, 경제력의 척도. 단, 어디까지나 명목적인 지표로 실질 경제력을 정확히 반영하는 지표는 아니다.</ref> |- | 1 || 카가 번 || 마에다 || 1,200,000 |- | 2 || 사츠마 번 || 시마즈 || 728,000 |- | 3 || 센다이 번 || 다테 || 620,000 |- | 4 || 나고야 번 || 도쿠가와<ref>오와리 도쿠가와</ref> || 619,000 |- | 5 || 와카야마 번 || 도쿠가와<ref>키슈 도쿠가와</ref> || 550,000 |- | 6 || 쿠마모토 번 || 호소카와 || 540,000 |- | 7 || 후쿠오카 번 || 쿠로다 || 473,000 |- | 8 || 히로시마 번 || 아사노 || 426,000 |- | 9 || 쵸슈 번 || 모리 || 360,000 |- | 10 || 사가 번 || 나베시마 || 357,000 |} 초기 에도 막부는 중앙의 권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지방의 다이묘들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막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는 1615년에 모든 다이묘들로 하여금 한개의 성(城)만을 보유할 것을 의무화하였고, 기타 잔여 성들에 대해서는 파괴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를 공포하여 다이묘와 기타 사무라이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기본 법률을 제정하였다. 또한 문제를 일으킨 지방 다이묘들을 상대로 트집을 잡아 감봉시켜버리거나 혹은 자신의 토착기반과 관계없는 멀리 떨어진 땅으로 전봉시켜버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감전봉은 주로 에도 막부 초기에 일본의 중부, 동부지방에서 많이 일어난 편이나, 서부지방에도 그 예가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의 대표 번 중 하나인 쿠마모토 번은 원래 가토 가문이 통치했던 지역이지만 2대(代)만에 개역대상이 되어버려 지배가문이 호소카와 가문으로 바뀌어 이 가문의 통치가 막말까지 이어진 바가 있다. 결국 막강한 권력을 가진 중앙의 통제로 인해 그 이전 시대에는 빈번히 일어났던 다이묘들 간의 대결이 에도시대에는 일어나지 않게 되었고, 이는 250년 장기평화의 시금석이 된다. 반면 훗날 메이지 유신의 대표주자로 떠오르게 되는 사츠마 번의 시마즈 가문이나 쵸슈 번의 모리 가문은 세키가하라 전쟁에서 서군 측으로 참전, 즉 도요토미 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반지역의 통치를 에도시대에도 지속해 나가 결국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시마즈 세력은 아무런 제재를 당하지 않아 도쿠가와 이에야스 본인도 시마즈 세력을 그대로 온존시킨 것에 대해 뒷통수가 좀 땡겼는지 죽을 때 사츠마 쪽으로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미래에 현실화되었다.) 에도시대에 번은 사실상 하나의 소왕국과 다를 바가 없었고 번들은 막부가 하지마라고 빼애액거린 바 있는 일부 중대행위(ex:화폐 주조, 다른 영주와 전쟁)만 거르면 거의 대부분의 정치활동을 행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자치를 누렸다. 각 제번들은 죠카마치(成下村)이라 불리는 성시(市)를 건설하여 그곳을 행정의 중심지로 삼았다. 죠카마치에는 죠닌(城人)이라고 불리는 도시 상공인들과 사무라이들이 거주하였고, 인구비는 대개 5:5였으나, 3:7, 7:3인 성시도 있었다. 사무라이 거주구역과 죠닌 거주구역은 엄격히 분리되었으며 사무라이와 죠닌 내에서도 신분과 직업에 따라 또 거주구역이 분리되었다. 죠카마치는 중요한 소비시장으로서 에도시대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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