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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윤씨는 원래 사람이 검소하고 착해서 성종 엄마도 좋아했는데 이 년이 연산군을 낳고 나서 완전히 사람이 바뀌어버린다 . 그 착하던 사람이 화를 잘 내고 시어머니한테 대든적도 있었고 성종을 존나게 바가지 긁는다. 심지어 지 생일날 딴 후궁이랑 놀다 왔다고 티격태격하다가 성종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버림. 이 당시엔 이게 존나 큰 중죄다. 옥체에 상처를 냈으면 자기랑 그 가문 몰살당해도 할말 없고 그년하고 가족만 죽어도 임금이 관대하다며 성군소리 들을 정도인 시대다. 그런데 나름 인내심 갑에 [[섹스]] 좋아하던 성종은 걍 좆까고 딴 후궁들이랑 떡치고 다녔고 아들 둘이나 더 본다. 그리자 윤씨는 질투심과 자기 아들이 혹여나 세자 자리를 뺏길까봐 별의별 미친짓을 다 하고 다닌다. 결국엔 후궁들 죽이려고 쓰려던 독약까지 발견함. 이때 성종 엄마는 윤씨를 도저히 답이 없는 미친년으로 판단해 사약 주고 죽여버린다. 이미 성종도 마음이 떠나서 걍 죽임. ㄴ어머니 죽었다고 발작하는 거면 [[경종]]은 뭐냐? 경종이 장희빈 아들내미였는데 숙종 손에 사약받고 뒤졌는데 그럼 경종도 즉위하고 나서 막장테크를 탔어야 되는거 아니냐? 정작 즉위시절에는 치세가 꽤 괜찮았었고 몇년 못해먹고 죽어서 그렇지 행실만 보자면 조선 왕중에서도 상타는 치는 애였다 :경종도 삼수의 변때 한 짓거리 보면 은근 만만치않은 씹새였다. ::삼수의 변은 연잉군하고 노론 새기들이 찬탈 카운트다운 셀 정도로 나대던 걸 카운터친 건데 그게 왜 씹새끼 소릴 들어야 함? 요즘 학자들은 이런 윤씨를 전형적인 산후우울증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연산군은 성종과 이 애미 윤씨의 나쁜 유전자만 다 가지고 태어난 새끼다. 이러니 연산군 빡칠까 안빡칠까? 연산군이 정귀인과 엄귀인에게 얼마나 빡침이 극에 달했으면 [[패륜|각자가 낳은 아들들로 하여금 정귀인과 엄귀인을 장살시키도록 조치]]할 정도였다. 성종이 정귀인과 엄귀인을 멀리했더라면 연산군이 이따위 시궁창 인성을 갖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ㄴ 왜 멀리했어야 하는지? 조선시대에 현대적 윤리관을 대입시키니 후궁 들이는게 뭔 죄악처럼 여기는데 당시로서는 오히려 후궁을 안들이는게 이상한 거였다 뭐 물론 윤씨가 질투를 느낀 건 이해는 가지만 그건 그거고 일국의 왕비면 최소한 왕실예법은 지키고 살아야 되는거 아니냐? 당시의 윤리관으로 보자면 윤씨가 잘못한게 맞다 그래도 하고 싶은거 즐기고 싶은거 다 즐기고 산 인간이라 왕답다고 빠는 놈들이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것땜에 중종 이후 왕들의 권력이 ㅈㄴ 약해졌다. 몇백년이 지나 영조에 와서야지 겨우 왕권이 회복되었다. 근데 그 회복된 왕권은 얼마안가 정조 사후 또 존나 낮아져 안동 김씨, 풍양 조씨 이딴 새끼들이 세도 정치해서 나라 나락이되고 [[일제강점기|일제에게 지배당했다.]] 특히 중종은 지형처럼 막나가면 신하들에게 목잘릴거라고 암묵적인 경고가 있다. 사실 제일 불쌍한건 연산군 마누라다. 역대 조선 왕비들 중에서도 인성이 탑클래스로 착한 인물이었는데 남편 잘못 만나 개고생. 참고로 이 아주머니는 후궁이나 궁녀들 상대로도 존댓말을 썼다. 그 인성 개판이던 연산군도 자기 아내가 하는 간언은 최소한 들어주는 척은 하면서 존나 치켜세워줬으며, 나중에 귀양가서 뒤지기 직전에 아내 보고싶다는 유언까지 남길 정도였고 유언대로 부인 옆에 묻히게 되었다. 지금도 연산군묘에는 2개의 봉분이 있다. 덤으로 연산군의 아들인 이황도 의외로 좋은 놈이였는데 아버지를 잘못 만나 동생들과 사이좋게 뒤진다. 말년에 사람 열라 죽여대고 숙청하던 새끼인데, 신기하게 가장 큰 정적인 지 이복동생(중종)은 오히려 우쭈쭈 해줬다. 하도 죽여대고 나니 왕권 탄탄해졌다고 생각해 긴장 풀어진 건지, 아니면 중종이 후빨 스킬이 숙련자급 이상은 됐던지. 아님 둘다 윤씨와 연산군 스토리 공부할 것까진 아니고 그냥 흥미만 가지고 알고 싶다면 '금삼의 피'라는 박종화의 1936년작 역사소설을 봐라. 나름 재미있다. 읽으면서 당시 금삼의 피나 현진건의 무영탑 같은 역사소설이 나온 이유 중 하나가 쪽바리 씹새들이 문인 탄압하고 현실비판적인 소설 못 쓰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충분히 유익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누구를 매질했다 죽였다는 말만 맨날 나온다. 이 인간이 하도 낭비를 한 덕에 조선은 재정이 개판이 되어버렸다. 연산군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살던 신하들도 그래도 이건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했는지 적자가 난 장부들을 들고 가자 그냥 적자가 난 장부들을 다 없애버리는 것으로 적자를 해결하려 했다. 하도 좆같은 짓을 많이 해서 그런지 연산군의 자식들도 중종반정이후 다 뒤졌다. 물론 중종은 조카 만큼은 봐줄라 했는데 반정공신 신하들이 가만두지 않아서 어쩔수 없이 사형을 내렸다. 장례도 왕자의 예로 치루려 했는데 신하가 또 반대 했다. 연산군은 자식의 사망 소식 듣고 얼마 못가 자기 생일날 뒤졌다고 한다. 향년 30세 [[평택]]을 [[경기도]]에 편입시켰다. 궁궐에서 곰 표범등을 풀어놓고 사냥했다고 한다. 상남자ㄷㄷ [[디시인사이드]]와 [[철구]]의 대선배 격이다. 처음에는 의외로 건전하거나 잘했는데 가면 갈수록 맛탱이가 나가고 병신같은 짓을 해서 욕먹은것까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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