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요령성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단둥 === {{북괴}}{{여행유의}} '''丹东'''<ref>번체로는 '''丹東'''</ref> [[압록강]]가에 있다. 하위 행정구역인 펑청시에 세워진 무차현, 주요 군사요충지인 서안평현과 함께 요동군 동부도위에 속한지역이었다. 지리적인 특성상 [[고구려]]가 해상진출을 위해 후한시기부터 이지역을 계속 공략했고<ref>146년엔 이지역을 공격해 대방현 현령과 낙랑태수의 가족을 죽이기도 했다. 애초에 2세기중반부터 고구려는 랴오둥군 양평현을 비롯한 중심지역에서 깽판을 졸라게 치고댕겼다.</ref> 결국 [[미천왕]]이 311년에 먹고야 말았다. 고구려는 지금 펑청시에 속하는 지역에는 오골성(烏骨城)을, 단둥시가지 근처에는 박작성(泊灼城)을 올려놨다. 고구려멸망이후 고연무가 오골성을 기반으로 당나라에게 죽창을 날리려고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발해가 이지역을 장악한 이후엔 별볼일없는 깡촌으로 전락했다. 이 발해가 [[요나라]]에게 띨망한 뒤 거란은 그땅에 동란국을 세웠다. 1년뒤인 927년, 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겠다느 이유였는지 동란국이 랴오양으로 옮겨지면서 수십만 발해유민들이 랴오둥으로 이주당했다. 이중 훈춘지역에 있던 둥징용원부가 단둥의 봉성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이름도 개주 진국군으로 바뀌었고.... 그리고 단둥시가지쪽에는 래원성(来远城), 정주(定州)를 세웠는데, 이중 래원성은 고려 vs 거란전쟁시기 중요한 요충지역할을 하게 된다. 요나라가 [[아골타]]에게 관광당한뒤로 [[금나라]]는 개주는 펑황성으로 바뀌면서 격하크리먹었고 래원성은 래원주로 격상하고 파속부로를 설치했다. 하지만 금나라가 좆망한뒤로 단둥시가지는 봉성현쪽에 있던 봉황성만 청나라때까지 남았다. 청나라말 봉금령폐지이후에 단동시가지에 안동현을 설치했다. 그래서 이지역은 1965년 단동으로 개명될때까지 '[[안동|안둥]](安东)'이라고 불렸다. 만주의 관문이라서 더 중요했기 때문에 [[경상북도|그]] [[안동시|안동]]에 있던 기차역은 '한국안동역'이 되었을 정도였다. 지금은 북괴 [[신의주시]]랑 접하고 있고 이외에도 북괴 접경지대랑 많이 경계를 이루고 있어서 탈북자들이 아주 많고 이들을 잡으러가는 콩사탕 공안과 북괴 공작원들도 아주 많은 곳이다. 그래서 단둥은 여행유의지역에 속한다. 암튼 단동외에도 다음과 같은 하위행정구역이 있다. *펑청시(凤城市): 랴오둥군 무차현, 고구려 오골성, 요나라 개주, 봉황성이 있던 곳이다. 봉황성에서 이름을 따와 펑청으로 개명됨. *둥항시(东港市): 마권자촌이 있는 대양하 바로 이서지역에서 연나라식 성곽유적이 발굴된 적이 있다. 이걸로 보면 진개가 고조선 후장따면서 이지역까지 내려간듯? 근데 이거말고는 존재감이 제로인 깡촌이다. *전싱구(振兴区) *위안바오구(元宝区) *전안구(振安区)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