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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 - 영변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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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좆망 == 흐미 씨발 퇴로가 하나밖에 없던 상황에서 천조국 1군단장은 11월 1일 20시, 안주에서 사단장들을 모아 운산 국군 15연대와 미군 제 8기병연대는 용산동, 영변도로로 철수해 청천강에서 교두보를 확보, 쭉쭉 올라가던 24사단은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일단 철수는 해야지?하면서 8기병연대는 당일 23시에 철수명령을 받고 자정이후 새벽에 2,1,3대대순으로 철수를 했는데, 망할 남단의 3대대를 뺀 모든 대대가 철수명령들어오기 2시간 전부터 중공군과 대판 싸우고 있었다. 결국 1대대는 운산에서 흩어져 입석으로 철수, 2대대와 지원포병 1개포대, 전차 1개소대는 중공군의 매복공격을 받았으나 입석까지 철수했다. 이랬더니 3대대가 중공군에게 포위되는 엠창같은 상황에 이르렀다. 운산남쪽 3km에 있던 3대대 본부옆 도로에는 11월 2일 3시 대대모든 차량이 남으로 늘어선채, 전방에서부터 철수중인 소총중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무렵 상초동에서 교량을 경비하던 M중대 2개분대와 미 70전차대대소속의 1개 전차소대는 국군으로 보이는 1개 중대규모의 부대가 그들 옆에서 북상하는 것을 목격했고 이들은 '에이뭐... 국군이니 괜찮겠지' 하면서 보고를 안하고 그냥 넘어갔다.<ref>꼭두새벽에 지칠대로 지쳤다보니 동양인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고 한다.</ref>. 근데 뭥미? '''이새끼들 중공군이었다.''' 한마디로 그냥 보고를 안하고 넘어간것이 큰 실수가 됬다는 것이다. 결국 3대대는 기습공격을 받고 1시간반뒤 소총중대가 철수할 때까지 불지옥 무스펠하임을 방불케하는 공방전이 이어졌다. 여기에 3개대대가 존나 갈려나가 부상병 170명, 남은병력 200명, 전차 3대만 남았고.... 미 제1기병사단은 7기병연대 1개대대를 제5기병연대에 배속, 3대대를 구하라고 했는데 포위망을 못뚫어서 GG쳤다. 이날 오후 늦게 1군단장은 1기병사단장에게 '구출이고 뭐고 제끼고 청천강 남쪽으로 철수'를 지시했다. 위에 불쌍한 3대대 병력은 중공군의 포위속에서 2일을 더 버텼지만 80명이 더 갈려나가고 포위망을 뚫지 못하는 눈물겨운 싸움이 되었고 11월 4일 오후, 부상병의 간호사를 자청한 군의관과 250명의 부상병을 남긴채 200여명의 장병들만 야간에 중공군의 포위망을 겨우 벗어나 탈출했다. 결과적으로 이 8기병연대 3대대는 이 중공군의 포위에서 600명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장교 10명을 포함한 210명만이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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