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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여러 군장국가들과 연맹왕국의 집합체다. 대체로 철이나 쌀을 생산해 먹고살기는 좋았다고 한다. 정교 분리의 사회로 [[천군]]이 지배하는 소도라는 신성지역이 치외법권이었다. 신지,견지/읍차,부례로 족장에도 격이 있었다. 제천행사는 5월 수릿날, 10월 계절제로 1년에 두 번했다. 무덤은 독무덤이나 주구움무덤(주구토광묘)<ref>매장주체부와 분구를 만들고 그 주변에 주구(周溝: 도랑)를 두른 무덤 양식. 마한 지역에서 많이 쓰였다.</ref>, 널무덤(목관묘), 덧널무덤(목곽묘)이다. ====마한==== 삼한중 하나이다. 54개의 소국 10만호 규모로 추정되며 주로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에 분포했다. 마한 목지국 왕이 마한왕을 자처하는 짱이었다. 왕명은 진왕으로 불린다. 하지만 3세기 경부터 차근차근 백제에 통합당했다. =====백제===== 이때는 마한의 소국 중 하나였다. 부여계 집단들이 남하해 송파구 일대에 자리잡아 세워졌다. 하지만 고고학적으로는 부여계 문화의 영향이 미미한 편이다. 최상의 위치선정으로 가장 빨리 중집국가에 도달했다. 목지국과 마한의 짱자리를 놓고 대결을 펼쳐 승리한다. 낙랑인지 한사군도 한번 찔러보기도 했다. 서울에 일찍부터 하수도를 갖추고 중원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 삼국중 가장 먼저 차를 마시며 ㅂㅅ같은 고구려 새끼들 찐따 신라놈들이라며 까대며 문화생활을 영위했다. ====진한==== 삼한 중 하나이다. 12개 소국 5만호 규모로 추정되며 주로 경북 위주로 있던 국가였고, 이 진한의 소국 중 하나였던 신라가 진한 지역을 모두 통합한다. =====신라=====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상북도 경주 근처에 고조선 유민 출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육촌장이 박혁거세를 추대해 [[사로국]]이란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이 기록은 고고학적으로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 기원전 2세기~기원전 1세기에 한반도 서북지방의 청동기 문화가 유입되었음이 밝혀지면서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2015년 유럽의 인류고고학 학자들과 국내 연구진들이 합동 조사연구한 결과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여 한반도로 이주한 스키타이 세력이라고 결론내렸다. 국립경주박물관의 황금보검과 각종 금관, 세공품 양식들이 스키타이유물과 일치한다고 발표함.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참조) 박혁거세의 신화에도 반영되어 있는데, 육촌장이 사로국이란 나라를 세웠는데 영문을 알 수 없는 알을 왕으로 추대했다는대서 이런 정황이 포착된다. 스키타이니 흉노니 고고학으로 반박된 지 오래되었다. 오히려 토착계 유물도 많이 나와서 현재는 고구려의 영향이거나 교류의 흔적으로 보는 중. 신라의 금세공품의 편년은 아무리 빨라봐야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 정도이다. 그전에는 옥만 장신구로 썼다. 실제로 신라 초기에 왕자리를 돌려먹었던, 석씨<ref>[[석탈해]]가 시조</ref>와 김씨<ref>[[김알지]]가 시조</ref> 역시도 토착인들이 아닌 멀리서 온 도래인으로 묘사된 대서 근거가 강화된다. 어쨋건 이 시기에 박석김 세 성이 왕을 교대로 해먹었고 대족장이나 대제사장 정도로 취급당하며 안습의 나날을 보냈다. 장자세습조차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서 왕위를 삼촌이나 사위가 왕위를 계승하는 경우도 잦았다. 병신들이 이 시기 신라를 단순히 왜에 털리던 약소국으로만 알고 있는데, 탈해 이사금 시절부터 지금의 울산 지역인 우시산국과 부산 지역인 거칠산국을 합병하는 등 정복전쟁도 활발히 하는, 진변한 지역에서는 나름대로 침 좀 뱉던 국가였다. 괜히 안라국이 포상팔국한테 털리니까 신라에게 도와달라고 한 게 아니다. ====변한==== 삼한 중 하나이다. 12개 소국 5만호 규모로 추정되며 김해 마산지역에 주로 분포했고, 소국 중 하나였던 가야가 주도권을 가지면서 가야에 흡수되었다. 철이 주 생산품으로 여러지역, 특히 왜와 교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변한 지역의 철은 당시 국제 무역에서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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