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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송 === 원래는 시조 유유가 건국 이전에 북벌을 통해 황하 이남의 상당한 영토를 획득했지만 자손들이 거의 대부분 막장들이라서 북위에게 대다수의 영토를 날려먹는다. 그 실체는 창업 군주 유유와 3대 황제 유의륭 마지막 군주 유준 이외에는 모두 막장이었던 왕조다. 이들을 뺀 나머지는 개막장이냐 그냥 평범한(?) 막장이냐의 차이일뿐(...). 괴담 기네스 책에나 나올 법한 아니 막장 이야기 책에 나오는 것 이상으로 왕실사가 막장 of 막장이었던 유례 없는 희대의 호러 엽기 판타스틱 병맛 왕조로, 바로 뒤를 이은 제 왕조와 함께 어지간한 막장 드라마 시나리오나 막장 에로게 설정 따위는 그냥 쌈싸먹는 콩가루 집안 내지 인간 도살장을 보여줬다. 이 왕조의 행적을 축약하자면 남자 친척(형제)은 모두 죽이고, 여자 친척은 예쁘면 겁탈한다. 웬만한 왕조에서 한 두명 나올까 하는 폭군들과 암군들이 연속해서 등장했다. 그나마 장수한 무제를 제외하면 소제, 문제, 전폐제, 후폐제, 순제는 젊은 나이에 살해당했고 효무제와 명제는 비록 병사했지만 오래 살지 못했다. 안습. 게다가 이 둘의 대는 후대에 모두 끊긴다. 유씨가 사마씨를 거꾸러트렸기 때문에 '이것은 유비의 후손인 유유가 사마씨를 물리치고 촉한을 부흥시킨 것이다!'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유비는 한경제의 아들 중산정왕의 후손이고 유유는 한고조 유방의 동생인 초왕 유교의 먼 방계 후손이기 때문에 관계가 전혀 없다. 애시당초 국호부터도 한이 아니라 송이었다. ==== 유의륭 ==== 유송의 정치 체제를 안정시키고 '원가의 치'를 이룩했으며 유송 존속 기간의 반을 통치한 명군이다. 치세는 항목 참조. 이 사람이 그나마 내부 정치는 제대로 한지라 이런 막장 왕조가 60년이나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46세의 나이에 비명횡사했으니 중국 황제 역사상 최초로 '''아버지를 태자 아들이 죽여버리는 패륜'''이 발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셋째 유준이 아버지를 죽인 형 둘을 주살하고 황제로 오른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역시 아버지 유유처럼 첫째, 둘째가 막장이었다는 것이다. 그 딜레마를 피하려고 했는지 몰라도, 그는 무능한 태자 유소(劉劭)를 폐하고 둘째 시흥왕 유준(劉濬)을 주살하려 했지만, 역으로 그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역시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것은 무릉왕 유준(劉駿)이었다 ==== 유자업 ==== 중국 남북조시대 유송(劉宋)의 제5대 황제로 전폐제라 한다. 효무제 유준의 장남으로 후폐제 유욱과 더불어 사치와 향락에 빠져 약 1년여 동안 가감없는 막장을 부렸다. 폐위됐기 때문에 묘호는 없으며 시호는 없다. 황제가 된 후 보복심에 아버지의 묘를 파헤치려고 하다가 신하들의 강력한 간언으로 그것은 관두고 결국 찌질하게 아버지를 코주부라고 욕하며 똥을 묘에 뿌리고 돌아갔다. 뜻(?)을 이루지 못한 유자업은 고모이자 효무제의 총애를 받던 계모 은귀비의 묘를 파헤쳐 버렸다. 그런 다음 자신의 이복 동생이자 사촌 동생이기도 한 효무제 유준의 8남 유자란을 사약을 내려 죽였는데, 이유는 유준이 사랑하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10살도 안 된 어린아이였던 유자란은 내세에는 황가에서 태어나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비감 섞인 유언을 남기고 죽었는데 훗날 유송의 마지막 황제인 순제가 남긴 말과 똑같은 의미였다. 그러면 유자업이 생모인 태후에게 효도했냐하면 그것도 아닌 게,즉위하고 몇 달 뒤에 친어머니 왕씨(왕헌원)가 아파서 불렀는데 '''환자들이 있는 방에는 귀신들 천지라는데 내가 어떻게 가겠는가?''' 라면서 가지 않자 왕씨는 '''내 배를 가르거라. 내가 어떻게 저런 비린내나는 짐승을 낳았는지!'''라며 분통을 터뜨리다가 얼마 뒤인 464년 음력 8월 23일에 죽었다. 일찍이 친누나 산음공주(유초옥)와 근친상간을 했는데, 어느 날 폐하는 육궁에 후궁이 많으면서 신은 겨우 부마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는 매우 불공평합니다라는 식으로 산음 공주가 불만을 가지자, 유자업은 산음 공주에게 면수, 즉 아름다운 남첩 30명을 선물했다. 산음 공주는 남편 하집이 미남이었고, 30명의 남첩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했다. 하집은 하언의 아들이었으며 첩으로 송씨가 있었다. 산음 공주는 의원을 유혹해 음욕을 채우고 거기에 당대의 미남이었던 이부랑 저연을 유혹했다. 문제는 저연은 산음 공주의 고모부였던 것이다.산음 공주는 동생 전폐제에게 허락을 구했는데 차마 고모부에게 목적을 설명하기가 그랬는지 조서를 내려 무조건 산음 공주 집에 가도록 했다. 산음 공주는 저연이 오자 끊임없이 유혹하고 온갖 추태와 교태를 다 부렸지만 저연은 당대의 인재답게 유혹을 거부했고 산음공주는 결국 포기했다. 그녀가 얼마 간가 죽자 남첩들은 같이 순장되었다. 누나와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효무제 유준의 친여동생인 고모 신채 공주(유영미)를 겁탈하고, 궁중의 한 여종을 살해해서 신채 공주가 죽었다고 소문내고 장사까지 치뤘다. 물론 진짜 신채 공주는 귀빈으로 삼아 성을 사씨로 고쳤으며 후환을 방지하기 위해 덤으로 고모부 하매는 죽였다. 신채공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유자업은 이상하게도 자기 삼촌들을 매우 미워해서 자기가 보기에 만만하거나 의심스러운 삼촌들에게 계속 굴욕을 줬다. 벌거벗긴 다음에 참대 나무로 만든 우리에 가두고 머리만 내밀게 하거나 가축 마냥 무게를 재기도 하고 곤장을 쳤으며 나무 그릇에 여물을 담아주고 먹으라고 했다. 이 삼촌들은 유의륭의 11남인 유욱, 12남 유후인, 13남 유후우, 8남 유의로 유자업은 이들을 각각 돼지왕, 살인왕, 도적왕, 나귀왕으로 봉했는데 왕명도 그렇고 그 이유도 가관인데 돼지왕 유욱은 가장 뚱뚱해서, 살인왕 유후인은 인상이 가장 험악해서, 유후우는 가장 욕심이 많아서, 유의는 가장 멍청해서였다. (실제로 유의는 평상시에도 어리석어서 다른 황족들에게도 무시당했다) 이 자의 최후도 매우 황당했는데 계속된 폭정에 버티지 못한 삼촌 유욱과 신하들이 몰래 손을 잡고 유자업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이 당시 유자업은 죽림당에서 궁녀들과 '''나체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는데(거부한 궁녀 1명을 참수한 건 덤이다), 유욱과 신하들의 지시를 받은 환관 수적지와 그 일당들이 호위병들이 없는 틈을 노려 살해당했다. 처음에 수적지가 바로 숨겨놓은 칼을 꺼내 유자업을 죽이러 했으나 유자업이 도망쳤는데 수적지의 부하들이 붙잡았고, 칼 들고 쫓아온 수적지에게 죽었다. ==== 유욱 ==== 후폐제 유욱. 아버지인 유욱과는 동명이인. 전폐제인 유자업이 패륜과 근친상간으로 막장드라마를 찍었다면, 후폐제 유욱은 인간 코스프레도 안 될 정도로 중국 전체 역사를 통틀어도 독보적인 살인광 군주였다. 제위에 올랐을 때는 겨우 9살이었는데 자신이 쓸 톱, 끌, 송곳 같은 다양한 수제 도구를 만들었다. 여기까지만 했다면 그냥 덕후끼가 있는 암군이었을텐데....문제는 이 연장으로 '''산 사람'''을 썰고 분해하면서 노는 쾌락살인을 계속 저질렀다. 어린 시절부터 멀쩡한 사람을 두들겨패는 걸 좋아해서 싹수가 노랬는데 관례를 치른 12살 이후로는 도저히 통제가 안 되는 망나니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흉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 저녁에 나가면 새벽에 들어오고 새벽에 나가면 저녁 때 돌아왔으며, 불행하게도 거리에서 유욱과 마주친 생명체는 전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이런 사건이 계속 터지니 수도에선 상인들이 낮에도 장사를 하지 않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으며 항상 무기를 자기 곁에 두었다고 한다. 궁궐 안도 살벌하긴 마찬가지였는 유욱이 이렇게 밖에 나가 하루에 1명이라도 안 죽이면 즐거워하질 않아서 숨쉬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막장 행각에 친어머니가 계속 그런 짓 하지말라고 잔소리를 하자 독주를 먹여 죽이려고 했으나 신하들이 뜯어말려서 그만두었다. 그만두게 만든 충고의 내용도 판타스틱한 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복잡한 상례를 치뤄야 하는데, 그러면 놀러나갈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친아버지가 명제 유욱이라고 하지만, 유욱이 어느 순간에 '''고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피를 이은 친자식이 아니었다. 명제 유욱은 자신의 아내를 친애하는 부하인 이도아에게 하사해서 임신한 뒤 돌려받았다고 하는데 고자라서 일종의 씨내리로 사용한 듯 보이며(사이가 가까운 남동생이 있었으니 태제로 삼는 게 원래는 맞았다), 이런 행각 때문에 세간에서는 이도아의 아들이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했고 사이코패스 아들은 '짐은 이장군이다!'고 커밍아웃 해버리는 또라이 짓을 했다. (전제군주제에서 군주의 혈통이 의심받는다는 건 아주 좋은 반란의 명분이니 자기 입으로 밝히는 건 자살하는 것과 똑같은데 유욱은 이 짓을 했다) 제위 초부터 막장 짓거리를 계속 벌이니 신하들 중 유경문, 심발, 손초가 유욱을 제거하고자 반란 모의를 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런데 확실한 증거도 없고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았는데, 유욱은 바로 직접 그들의 집으로 행차해서 말 못하는 젖먹이 아기들까지 빠짐없이 손수 전부 죽이고 시신을 해체했다. 이 중 심발은 아버지 상을 치르고 있었는데 유욱이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들자 빰을 때리고는 '너는 걸주보다 더한 놈이니 며칠을 못 가 도륙을 면치 못하리라!'고 저주했는데 그대로 실현되었다. 황족이 연루된 반란이 2번 터졌는데, 이걸 전부 소도성이 진압하면서 친위군 내에서 명성이 높아졌다. 사이코패스 유욱은 처음에는 두려워했으나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소도성과 비슷하게 깎은 목상에 화살을 쏜다든지, 아예 낮잠을 자는 소도성의 배에 과녁을 그려놓고 촉 없는 화살을 쐈는데 이것도 주변 사람들이 말려서 그런거지, 처음에는 진짜 화살을 쏴서 죽이려 했다.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소도성은 유욱을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그 수하 10여명과 비밀리에 손을 잡았다. 결국 14세 되는 해 칠석에 부하에게 '견우랑 직녀가 오작교 건너는 거 보이면 바로 보고해라. 안 하면 니가 죽는다.'고 명령한 뒤 잠들었는데 이미 소도성에게 포섭된 그 부하는 유욱의 살인도구를 꺼내 목을 베었다. 유욱이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백성들이 전부 만세를 외쳤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미친 놈이었다. ==== 유준 ==== 소도성이 유욱을 죽인 후 선양을 받기 위해 꼭두각시로 앉힌 황제. 시호는 선선히 순양을 해줬다는 의미에서 순황제. 너무 어린 아이라 (즉위시 8살, 사망시 10살) 뭘 해볼 수도 없는 처지였으며 선양을 해줄 때는 불상 밑에 숨어있다가 병사들이 수색한 끝에 발견되어 끌려나왔다. 이 때 나를 죽일 거냐고 묻자 병사들을 인솔하던 자가 '죽이진 않을 겁니다. 폐하의 조상도 사마씨에게 이러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자 '아니, 너희들은 분명히 날 죽일 거다. 내세에 다시 태어나면 천자의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니, 궁중의 사람들 중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 말대로 선양한지 한 달도 안 되어 죽었다. 훗날 [[남송]]의 마지막 황제인 소제도 유준처럼 9살 어린애였는데, '내 다시는 제왕의 핏줄로 태어나지 않겠다.'는 비슷한 말을 남기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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