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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자업 ==== 중국 남북조시대 유송(劉宋)의 제5대 황제로 전폐제라 한다. 효무제 유준의 장남으로 후폐제 유욱과 더불어 사치와 향락에 빠져 약 1년여 동안 가감없는 막장을 부렸다. 폐위됐기 때문에 묘호는 없으며 시호는 없다. 황제가 된 후 보복심에 아버지의 묘를 파헤치려고 하다가 신하들의 강력한 간언으로 그것은 관두고 결국 찌질하게 아버지를 코주부라고 욕하며 똥을 묘에 뿌리고 돌아갔다. 뜻(?)을 이루지 못한 유자업은 고모이자 효무제의 총애를 받던 계모 은귀비의 묘를 파헤쳐 버렸다. 그런 다음 자신의 이복 동생이자 사촌 동생이기도 한 효무제 유준의 8남 유자란을 사약을 내려 죽였는데, 이유는 유준이 사랑하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10살도 안 된 어린아이였던 유자란은 내세에는 황가에서 태어나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비감 섞인 유언을 남기고 죽었는데 훗날 유송의 마지막 황제인 순제가 남긴 말과 똑같은 의미였다. 그러면 유자업이 생모인 태후에게 효도했냐하면 그것도 아닌 게,즉위하고 몇 달 뒤에 친어머니 왕씨(왕헌원)가 아파서 불렀는데 '''환자들이 있는 방에는 귀신들 천지라는데 내가 어떻게 가겠는가?''' 라면서 가지 않자 왕씨는 '''내 배를 가르거라. 내가 어떻게 저런 비린내나는 짐승을 낳았는지!'''라며 분통을 터뜨리다가 얼마 뒤인 464년 음력 8월 23일에 죽었다. 일찍이 친누나 산음공주(유초옥)와 근친상간을 했는데, 어느 날 폐하는 육궁에 후궁이 많으면서 신은 겨우 부마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는 매우 불공평합니다라는 식으로 산음 공주가 불만을 가지자, 유자업은 산음 공주에게 면수, 즉 아름다운 남첩 30명을 선물했다. 산음 공주는 남편 하집이 미남이었고, 30명의 남첩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했다. 하집은 하언의 아들이었으며 첩으로 송씨가 있었다. 산음 공주는 의원을 유혹해 음욕을 채우고 거기에 당대의 미남이었던 이부랑 저연을 유혹했다. 문제는 저연은 산음 공주의 고모부였던 것이다.산음 공주는 동생 전폐제에게 허락을 구했는데 차마 고모부에게 목적을 설명하기가 그랬는지 조서를 내려 무조건 산음 공주 집에 가도록 했다. 산음 공주는 저연이 오자 끊임없이 유혹하고 온갖 추태와 교태를 다 부렸지만 저연은 당대의 인재답게 유혹을 거부했고 산음공주는 결국 포기했다. 그녀가 얼마 간가 죽자 남첩들은 같이 순장되었다. 누나와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효무제 유준의 친여동생인 고모 신채 공주(유영미)를 겁탈하고, 궁중의 한 여종을 살해해서 신채 공주가 죽었다고 소문내고 장사까지 치뤘다. 물론 진짜 신채 공주는 귀빈으로 삼아 성을 사씨로 고쳤으며 후환을 방지하기 위해 덤으로 고모부 하매는 죽였다. 신채공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유자업은 이상하게도 자기 삼촌들을 매우 미워해서 자기가 보기에 만만하거나 의심스러운 삼촌들에게 계속 굴욕을 줬다. 벌거벗긴 다음에 참대 나무로 만든 우리에 가두고 머리만 내밀게 하거나 가축 마냥 무게를 재기도 하고 곤장을 쳤으며 나무 그릇에 여물을 담아주고 먹으라고 했다. 이 삼촌들은 유의륭의 11남인 유욱, 12남 유후인, 13남 유후우, 8남 유의로 유자업은 이들을 각각 돼지왕, 살인왕, 도적왕, 나귀왕으로 봉했는데 왕명도 그렇고 그 이유도 가관인데 돼지왕 유욱은 가장 뚱뚱해서, 살인왕 유후인은 인상이 가장 험악해서, 유후우는 가장 욕심이 많아서, 유의는 가장 멍청해서였다. (실제로 유의는 평상시에도 어리석어서 다른 황족들에게도 무시당했다) 이 자의 최후도 매우 황당했는데 계속된 폭정에 버티지 못한 삼촌 유욱과 신하들이 몰래 손을 잡고 유자업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이 당시 유자업은 죽림당에서 궁녀들과 '''나체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는데(거부한 궁녀 1명을 참수한 건 덤이다), 유욱과 신하들의 지시를 받은 환관 수적지와 그 일당들이 호위병들이 없는 틈을 노려 살해당했다. 처음에 수적지가 바로 숨겨놓은 칼을 꺼내 유자업을 죽이러 했으나 유자업이 도망쳤는데 수적지의 부하들이 붙잡았고, 칼 들고 쫓아온 수적지에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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