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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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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토 슨상님의 사회주의 락원(쑻) == 이후 나치가 좆망하고 물러나자 기존의 세르비아 왕실보다 반나치 활동에 앞장서서 영국군에게 많은 지원을 받은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정권을 잡게된다. 티토는 일단 정권을 잡자마자 소련군이 유고에 남아서 내정간섭을 하면 선전포고를 하겠다고 해서 스탈린의 뒷통수를 후려쳐갈겼다. 이로서 유고는 다른 동구권 국가와 달리 소련 응딩이 뒤에 숨지 않는 자주 국가가 되었다. 이어서 세르비아 왕실 친위세력과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을 족쳐서 조또 좁은 나라에서 민족가지고 싸움질 안하게 하여 이후 다민족국가로의 기틀을 마련했다. 웃기는 건 서로 합치기 싫다는 놈들을 강제로 합쳐놓은 꼬라지라 소련 붕괴 이후 이 나라는 독립국가연합이 되었다가 결국 전부 분리된다. 그는 [[스탈린|꽉]] [[마오쩌둥|막]][[김일성|힌]] 여느 [[빨갱이]]들과는 다르게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경제정책을 제시하여 후진국이던 유고를 공산권에서 잘 사는 국가들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다른 공산 국가들은 국가가 기업을 통제해 온나라가 공무원판이 되었지만, 티토는 기업 경영권을 노동자에게 넘기고 국가는 이들 기업을 조정하고 지원하여 진짜 노동자 인민의 나라를 만들었다. 거기다 필요하면 서구권과의 투자와 무역도 받아들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7-80년대 유고슬라비아, 특히 크로아티아는 유럽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였다. 요새 꽃할매 코스라고 가는데들이 다 이미 70년대에 개발된 거 또한 외교적으로도 [[스탈린]]같은 병신이 국가 머가리로 앉아있던 [[소련]]과 국뽕의 폭풍에 휩쓸려있던 [[미국]]의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실시하여 많은 이득을 보았다. 스탈린이 빡쳐서 유고를 공산권에서 내치자 소련, 미국 다 마음에 안들던 국가들과 함께 제3세계권을 형성, 인도, 스위스 등과 함께 제3세계의 주도국으로 우뚝 선다. 국가 내적으로도 다민족 국가였던 유고가 붕괴하지 않도록 민족주의적 교육을 제거하고 여러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수있는 나라를 만들었다. 실제로 미국 다음으로 다민족 정책이 성공한 나라로 평가 받'''았다'''. 게다가 사회적으로도 유연한 정책을 펼쳐 1984같은 공산주의를 비판하던 서적들도 자유롭게 출판을 허용할 수 있게 하였다. 문화면에서도 유고 출신 밴드가 유럽 경연대회에서 우승하고 80년대에는 수준급의 펑크밴드가 있을 정도였다. 같은시기 닭대가리 애비나 땅크문어가 지배하면서 지들 불편한 노래 가위질하던 '자유'대한보다 더 자유로웠다. 1984년에는 사라예보에서 동계 올림픽도 열면서 유고의 전성기를 널리 알렸다.<ref>여담이다만 여기서 사용된 경기장들은 이후 내전때 작살이 나버리고 지금은 공동묘지로 쓰이고 있다.</ref> 전성기에는 군사력도 무시못할 수준이었다. 실제로 2차 대전 시기 독일군 노획장비 개조해서 연방군 개인장비로 활용하고 공산권이지만 3세계 비동맹이라 자처하면서 동구권 무기랑 서방 무기도 혼용해서 잘 써먹었다. 거기다 직접 전투기를 개발해서 쓸 정도로 기술력도 충분했다. 캬~~ 빨갱이란것 외에는 깔수 있는게 없구몬!<ref>같은 빨갱이래도 티토는 스탈린이나 뽀글이(사실 이새끼는 사회주의자도 아니고 그냥 주체교 교주다)과 격이 다른 인물이었다. 그들과 달리 티토는 시장을 인정하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기업을 경영할 수 있게 한 탈권위적인 사회주위자였다. 어찌보면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처럼 민중이 직접 생산과 분배를 관리할 수 있게 하려 했던 진정한 사회주의자요 위대한 빨갱이다. 정알못 새끼가 티토를 사민주의자라고 적었었지만, 사민주의는 선거에서 이겨서 사회주의를 하는 사상이고 티토는 게릴라 활동으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했으니 전혀 다르다. 게다가 기업 운영은 북유럽이나 아르헨티나와 유사하다고 했는데, 좆까는 소리다. 노동자가 기업을 운영하는 노동자 자주관리는 스웨덴이 시도하다가 저지당한거나, 스페인 내전 중에 아나키스트들이 한 것을 빼면 유고만 실제로 이를 시행했다. 티토에게서 사민주의적인 점은 시장을 인정한 것과 미국,서방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 둘뿐이다.</ref><ref>허나 말 그대로 '''빨갱이'''였던 것만 빼고 였지, 결국에는 사회주의 국가의 한 독재자였다. 그 일례로 국제사회주의자였던 반대파 세력 중 수장을 해외로 쫓아내 버린 것이 있다. 또 티토주의라는 노선이 기존 사회주의 성향보다 좀 더 온건했다지만 카톨릭이랑 정교 사제 탄압 오지게 했다. 내로남불인 면을 소개하자면 티토는 스탈린을 오지게 싫어하면서 스탈린 시절 소련이 한 짓을 그대로 했는데 타 자치 공화국 영토를 다른 공화국에 넘겨주거나(예로 크로아티아의 해안선 일부를 보스니아에게 넘겨준 것 때문에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영토 분쟁이 현재 진행형이다.) 타 민족을 다른 곳에다 이주, 특정 민족을 암암리에 차별하는 등(주로 세르비아인이 타겟이였는데 과거 체트니크 활동으로 파르티잔과 경쟁하던 것도 있었고 유고 왕국 시절에 세르비아인 중심 정책을 펼쳐서 민족뽕이 오지게 넘쳤다. 또 종교적으로는 크로아티아인도 같이 조짐. 아이러니한 것은 티토는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혈통이다.) 결국엔 빨갱이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마지막으로 티토주의 노선은 지금이라면 모를까 당시 서방이나 동구권 모두에게 안 좋게 찍혔었는데 서방에서는 결국 저 새끼도 빨갱이라며 거리를 두었으며 동구권에서는 서방과 타협한 박쥐새끼라며 존나 까였다.</ref> ㄴ 빨갱이면 어떻냐 나라만 살리면 됐지 근데 [[보스니아 내전|이후에 일어날 일]] 생각해보면 종교는 때려잡아야 했다. 뭐 소련도 개방하자마자 바로 신천지 진출한거 보면 의미 없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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