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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과정== 1905년 11월 이전. 일본은 러일전쟁이 대한제국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고종이 러시아를 한반도로 안 끌어들였으면 대한해협의 안전도 위협받지 않았을 것이고, 러일전쟁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고종이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일본에 대들고 영국과 미국의 이익을 침해했기 때문에, 일본이 동양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창과 방패를 들고 있어났다고 했다. 그러자 미국의 태프트는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한국이 외세에 의존하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며 거들었다. 미국, 영국, 일본은 고종을 전범과 비슷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1905년 11월 5일 - 이토 히로부미 입갤 이미 일본 정부는 대한제국 정부에 조약의 초안을 보낸 상태였고, 이토 히로부미가 외교권 박탈을 매듭짓기 위해 한양으로 들어왔다. 이 자리에서 고종은 나라를 빼앗으러 온 이토 히로부미에게 성대한 만찬을 베풀었다;;; 당장 이토 히로부미의 입국을 거부하고 의주로 피난을 가서 싸우다 죽어야 하는데 ㅋㅋㅋ (싸워봤자 바뀌는 거 없다? 그러면 같은 논리로 이완용도 커버쳐줘라) 1905년 11월 15일 - 이토 히로부미와 고종의 독대 고종은 먼저 한일관계가 나빠진 이유는 일본의 강압적 태도와 황후 시해에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자 이토는 "오늘날 한국이 누구 덕분에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지, 시험삼아 묻고 싶은 것이 오직 이 한 가지다. 그걸 알면서도 내 앞에서 불평하는 것인가"라고 말하며 고종을 구박했다. 고종은 "친러정책을 펴서 일본을 곤란하게 만든 점은 사과한다면서도, 외교권의 형식만은 보전해달라"고 이토 히로부미에게 구걸을 했다. 이토는 한국이 외교권을 가지면 러일전쟁이 또 일어난다며 고종의 요구를 거절했다. 고종이 "백성들에게 물어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하자 이토는 "당신은 독재자라서 백성한테 물어볼 필요가 없다. 한국은 헌법도 없는 독재국가가 아니냐"고 말했다. 더불어 "독재자가 백성에게 물어보는 것은 백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며 필요할 때만 백성을 앞세우는 고종의 비열한 태도를 대놓고 비난했다. 말미에는 "당신이 백성을 선동하는 것을 일본군이 탐지하고 있다"며 무력행사도 불사하겠다는 뜻까지 밝혔다. 겁을 잔뜩 먹은 고종은 "대신들과 협의해서 잘 처리하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1905년 11월 16일 - 이토 히로부미와 대신들과의 간담회 11월 17일에 어전회의가 열리기 전,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의 대신들을 불러 정신교육을 시키려 했다. 이 자리에서 이토는 시간을 끌면 참고 있지 않겠다고 공언한 후, 대한제국의 백성들은 무식하기 때문에, 백성의 여론을 살필 필요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독재국가이며 독립에 필요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고, 궁중에는 잡다한 음모가 끊이지 않아 외교권을 가지면 러일전쟁이 다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한규설이 "제발 형식만이라도 보존해 달라"며 애원했지만 이토는 "도대체 너희 한국인들이 최근 10년간 나라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쐐기를 박았다. 이 자리에서 이토는 "대한제국의 황실을 보전해주겠다. 외교권만 일본이 맡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토는 "일본은 한국을 병합할 마음이 없으며, 한국이 러시아에 의존하지 않도록 발전시켜 일본의 국경선을 안정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당연히 지켜지지 않았다. 1905년 11월 17일 - 어전회의 고종은 대신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물었다. 이 자리에서 8명의 대신들은 을사조약이 부당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완용이 "폐하께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이 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면, 그때는 어찌합니까"라는 놀라운 발언을 했다. 다시 말해, 고종 당신이 이 조약을 체결하기 싫은 건 알겠는데, 목숨을 걸고라도 막아볼 생각이 있는지를 물어본 것이다. 이 말에 고종도, 대신들도 모두 침묵을 지켰다. 잠시 후 이완용, 권중현 등을 비롯한 대신들은 "통감의 권한이 불분명하다는 점, 조약의 유효기간이 없다는 점, 황실을 보전해주어야 한다는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는 점" 등의 건의사항을 말했다. 고종은 "이제 경들이 알아서 하라"며 발을 빼려 했다. 그러자 대신들은 "건의만 했을 뿐, 조약에 찬성한 적은 없다"며 일제히 퇴청해버렸다. 고종은 "죽어도 안 된다"고 말하지 않고, 알아서 잘 하라는 말을 남김으로써 대신들에게 "나 대신 나라를 팔아달라"는 메세지를 전달했던 것이다. 1905년 11월 17일 - 이토 히로부미가 주재하는 회의 궐밖으로 나온 대신들은 하야시 공사와 마주쳤다. 하야시 공사는 어전회의의 결과를 물었다. 그러자 한규설 참정대신은 "폐하께서 협상하라 했으나 우리는 이 조약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야시 공사는 "황제는 협상하라고 하는데, 대신들은 불가하다고 말하는 게 무슨 경우냐"며 싸움이 벌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군을 이끌고 궁궐로 처들어왔다. 황제와 대신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이토는 고종 황제를 다시 만나서 윽박을 지르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고종은 목구멍이 아파서 목소리가 안 나온다는 핑계를 대며 "이토 당신이 알아서 잘 협상해달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했다. 기세등등해진 이토 히로부미는 대신들을 모아놓고 각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먼저 한규설에게 이 조약에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고종 황제 앞에서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어봤다. 한규설은 "별다른 이유는 없고, 이 조약에 반대한다"는 말만 남겼다. 그 다음에는 박제순에게 물었다. 박제순은 "나는 이 조약에 반대하지만 명령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답을 내놨다. 이토는 즉시 "그 명령이란 고종 황제의 명령을 말하는 것이냐"며 추궁했다. 박제순은 뒤늦게 변명을 하려 했으나 이토에게 허를 찔렸다는 것을 알고 침묵을 지켰다. 다른 대한제국 대신들은 다음과 같은 건의를 했다. 이완용 - "통감의 권한을 외교에 한정하면" 조약에 찬성하겠다. 이토 - OK 권중현 - "대한제국의 황실을 보전한다는 문구를 별도의 조항으로 추가하면" 조약에 찬성하겠다. 이토 - OK (권중현의 제안 때문에 을사4조약이 을사5조약이 됐다) 그 외의 건의 사항 조약에 유효기한을 부여하라. 이토 - NO 통감은 "온통 스스로" 외교에 관한 사무를 담당한다는 문구에서 온통 스스로라는 표현은 삭제해달라. 이토 - OK 그리고 마지막에 고종이 건의를 했다. "대한제국의 실력이 부강해지면 외교권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라" 이토는 화답하며, "일본은 원래 대한제국을 멸망시킬 의도가 없고, 실력이 부강해지면 당연히 외교권을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물론 개쪽본죄국은 미국한테 원폭 개쳐맞고 패망할 때까지 안 돌려줬다. 한규설은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반대하다가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쫓겨났다. 그리고 조약이 체결된 후, 이토는 한규설을 직접 찾아가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대궐을 나왔다. 그때가 11월 18일 새벽 1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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