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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성''' == 예로부터 인간성 하나만큼은 끝내준다는 평을 받던 사람이다.<br> 아래 사진은 365일 [[세이콘]]에게 혹사당하던 선수들을 구제하는 모습이다. 정작 본인은 현역시절 지독한 연습벌레였다는거. [[파일:쉬어.jpg]] 이 사진은 당시엔 무지몽매한 야알못 우민들에 의해 '[[김성근]]의 지옥훈련으로 다져진 [[SK 와이번스]]의 케미스트리를 무너트리는 일이다.'라며 매도당했으나, 후일 김성근의 한화 감독 경질과 더불어 김성근의 '지옥훈련'으로 대표되는 팀 운영 방식이 구시대의 유물임이 만천하에 드러남에 따라 재평가 받는 짤이 됐다. 야구 해설위원 [[이병훈]]과의 현역시절 인연을 소개한다. [[파일:이병훈이만수.jpg]] 이렇듯 부부 사이의 믿음을 위트 있게 전파하시는 사랑의 전도사이기도 하시다. {{~~|병훈아! 또속냐}} 아래는 제자들과의 모습이다. [[파일:이만수김광현.jpg|500픽셀]] [[김광현|7선발급 투수]]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 [[파일:갓동과경철이.jpg|500픽셀]] [[김광현]]과의 사제관계는 이미 야구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이야기이고, [[최경철]]과의 관계도 유명하다. 당시 1군과 2군을 전전하던 허접 포수에 불과했던 [[최경철]]은 갓동님의 가르침에 힘입어 이후 [[LG 트윈스]]에서 만개했지만 2015년 다시 망했다. 그러나 원래 좆노답새끼를 1년만이라도 터트린 갓동님의 위업은 머단하다 할 수 있겠다. [[파일:황금어장.E177.100303.HDTV.XViD-HAN™.avi 001654421.jpg]] 갓동님의 야구에 대한 신념과 열정,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면서 신나게 유망주들을 버리고 있는 [[세이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신다. [[파일:배신의대가1.jpg]] [[파일:배신의대가2.jpg]] 수석코치 시절 이만수 갓동님의 순결을 빼앗아놓고 감독이 되자 쌩까고 [[한화 이글스|똥칰]]으로 도망간 배은망덕한 [[정근우]]는.... [[파일:배신의대가3.jpg]] 결국 [[한화 이글스|똥칰]]에서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파일:스캇레기 지랄.jpg]] 메이저 물먹었다고 한국야구를 개 좆으로 보던 루크 스캇이 이렇게 모욕적인 언사를 날릴때도 웃어 넘기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파일:2013071920570415425 1.jpg]] [[전준우|타팀 선수]]라도 아낌없이 격려를 해주는 모습도 보여주셨다. [[파일:종신감독듀오.jpg]] [[김시진]] 前 감독하고는 삼성 시절 최고의 배터리로 이름을 날리던 사이였다. 둘 다 감독이 되서는 그 완벽함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우정만큼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감독생활을 빙시진하고 비교하진 말자. 2번의 한국시리즈 준우승감독과 감독생활내내 포시진출에 전부 실패한 빙시진은 넘사벽이다. [[파일:송은범 이만수.jpg]] 지금은 한화 최고의 먹튀로 거듭난 [[송은범]]도 SK시절엔 좋은 투수였다. 김성근 재임 시절 혹사당해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하고 돌아온 송은범을 선발로 믿으며 기다려준 이만수 갓동님의 전략으로 2012년 송은범은 부상 복귀 이후 윤희상과 함께 SK를 이끄는 원투펀치로 거듭나게 되고, 이만수 갓동님과 헤어져 KIA로 가자마자 바로 망했다. 역시 갓동님과 함께 있어야 선수들의 포텐이 터지는듯 싶다. [[파일:80년대 최고의 선수들.jpg]] 한국프로야구 초창기의 최고의 선수들, [[선동열]] 각동님, 이만수 갓동님, [[김시진]] 빙동님의 모습. 故 최동원의 모습을 볼 수 없는것이 정말 아쉽게 느껴진다. [[파일:이승엽 이만수.jpg]] 국민타자 [[이승엽]]하고도 절친한 선후배 관계이다. 이만수 갓동님은 현역시절 이승엽의 타격폼을 따라해보면서 연구했을 정도로 이승엽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사진도 이승엽이 먼저 갓동님을 찾아뵙고 인사하는 모습이다. [[파일:0000015455 001 20170914145508028.jpg]] 8월 8일 엠스플 뉴스가 폭로한 화순초 야구부 폭행사건. 심정진 감독이 겨우 초등학생밖에 되지 않을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결국 감독직에서 짤려나간 사건이다. 하지만 피해자측은 이후 지역 야구부 인사들과 일부 학부모들에게 심한 따돌림을 당해 2차 피해를 입은 헬조선스러운 결말로 끝날뻔 했으나 엠스플 탐사보도로 겨우 진상이 알려진 사건이다. 이에 이만수 갓동님은 “화순초 야구부 아이들이 전임 감독의 폭력과 폭언에 시달렸을 걸 생각하니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얼굴을 들기조차 창피하고 부끄러웠습니다.”라며 자책하셨고, 이후 [[최희섭]] 해설위원과 함께 직접 화순초를 방문하여 아이들을 위로하고 재능기부를 펼치셨다. [[파일:최만수.jpg|thumb|야갤러를 울린 그들의 우정]] 故 [[최동원]]과의 우정이 유명하다. 故 최동원이 암으로 투병하던 당시, 붓싼 싸나이의 자존심 때문에 남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했다. 그 탓에 친한 지인들에게도 암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혼자 쓸쓸히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평소 최동원과 절친했던 이만수 갓동님은 추석때면 최동원에게 안부 전화를 걸곤 했는데, 당시 병원에 있던 최동원과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최동원의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묻자 처음에는 말을 돌렸으나, 이상한 낌새를 느끼신 갓동님께서 계속해 이유를 묻자 최동원의 아내도 사실을 고했다. 이만수 갓동님은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을 정신도 없이, 추리닝바람에 맨 발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최동원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헐크라고 불리는 사나이, 이만수 갓동이 의식을 잃은 최동원의 옆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마냥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 때 기적적으로 최동원 선수가 잠시 의식을 차리고 이만수 갓동님의 볼을 만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사흘 뒤, 최동원은 임종을 맞이했다. 이만수 갓동은 처음 병원을 찾은 날부터 최동원이 임종을 맞이하던 그 날까지, 매일 병원을 찾아와 오랫동안 그의 옆을 지키다가 돌아오곤 했다. 이만수 갓동님께서 지켜주신 덕에 최동원도 쓸쓸하진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1179 출처] 다음은 [[삼성 라이온즈]] 강타자 계보를 이어가는 후배, [[이승엽]]의 통산 400 홈런 달성을 축하하며 보낸 메시지의 전문이다. 나는 지금 적도에 가까운 무더운 나라 라오스에 와 있다. 오늘도 올 해 내가 가져온 공과 방망이로 처음 야구를 시작한 라오브라더스팀을 지도하며 지칠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들어왔다. 샤워 후 핸드폰을 들려오는 잊지 않고 연락해주는 한 후배의 기쁜 소식에 마음이 동하여 글을 남기고 잘련다 이승엽. 두 말이 필요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타자이자, 내가 본 후배 중 연습을 가장 많이 하는 선수다. 내가 은퇴를 앞둔 첫 해에 이승엽 선수가 루키로 팀에 합류했다 나는 그가 처음 삼성 유니폼을 입고 프리배팅을 하는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의 스윙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힘이 느껴져 마치 대포알처럼 공을 야구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나의 타구와 너무 비교 돼 고참으로서 선배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그 감정이 400호의 홈런타구가 날라가는 장면과 오버랩 되었다. '''지금에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나는 루키인 이승엽선수의 배팅연습을 몰래 커닝하면서 따라해보기도 했었다.''' 그 시절 경직된 선후배 문화만 아니었다면 가서 물어보고 후배에게 배웠더라면 나도 홈런을 조금은 더 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기도 한다. 이런 완벽한 스윙을 가진 그의 최고의 장점이 연습량과 자기관리라는 것이 또 한 번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만족할 줄 모르는 성격 덕분에 그의 스윙은 계속 진화한다. 팀에서 최고 고참인 그가 동계훈련에서 보이는 모습, 시즌 중 시합 전 모습, 시합에 들어가서 보이는 정신력, 다음 시합을 준비하는 자세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삼성 라이온즈의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같이 성공하지 못한 지도자의 끊임없는 잔소리보다, 팀의 선배가 보이는 작은 정성의 모습들이''' '''열 배, 아니 스무 배 이상 팀에 공헌하는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4번타자이자 아시아의 4번타자가 보이는 그 겸손함은 앞으로 우리 프로야구 선수들이 더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시카고 화이트 삭스 배터리 코치로 있을 때 이승엽선수가 동계훈련차 지역 라이벌 팀인 시카고 컵스로 초대받아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모시고 있던 기옌 감독에게 저 선수를 빼앗기면 우리는 앞으로 지역 라이벌전을 더 힘들게 치뤄야 할 것이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 적이 있다. 기옌감독은 몰래 승엽이의 프리 배팅을 한참 지켜보더니, 어떻게 저런 선수가 아직도 한국에 있을 수 있냐고 꼭 데려오고 싶다고 흥분했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만약 승엽이를 일본에 빼앗기지 않고 우리가 데려왔더라면 그 해 메이저리그 홈런왕은 어쩌면 대한민국 4번타자의 차지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시 추억에서 나와 내일 훈련할 라오스 선수들을 위해 지도방안을 수정해야 한다. 그렇게 훌륭한 스윙을 가지지도 않았고, '''훌륭한 지도자의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항상 내 몸이 고생을 한다.''' 아직도 저렇게 멋진 스윙을 가진 승엽이가 이 곳에 있었으면 더 훌륭한 야구를 가르칠 수 있었을 텐데라는 말도 안 되는 아쉬움을 접어두고 '''나는 또 내일 자라나는 선수들이 이만수가 아닌, 더 멋진 이승엽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승엽아, 자랑스럽고 정말 축하한다. [[파일:승엽이와만수.jpg]] '''시카고에서 만난 선배 홈런왕과 후배 홈런왕''' 이에서 볼 수 있듯이, * 1. 후배에게도 배울 것은 배우자는 탈권위적인 시각 * 2. 일본에서도 온갖 조롱을 당하던 [[이승엽]]을 아시아의 4번타자, 메이저 홈런왕 감이라며 아낌없이 칭찬하는 배려심 넘치는 모습 * 3.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공경하는 이타주의적인 성격 * 4. 자신의 팀을 낮추고 타팀을 끌어 올려주는 공리주의적 성격 을 두루 갖춘 사람이시다. 팬 사랑이 각별하다. 위에 언급된 팬티 세레머니뿐만 아니라, 팬서비스가 가장 좋은 야구인으로 알려져 있다. [[파일:갓동팬서비스.png]] [[야갤]]에서조차 팬서비스 관련해서는 험담 하나 찾아볼 수 없이 모조리 미담이었다. 이런 분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정신적 지주로 있으신 덕에 삼성 선수들도 전 구단중에 팬서비스 잘 해주는 전통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승엽]]이 정신적 지주가 되자마자 구자욱을 비롯한 삼성 선수들의 팬 서비스가 개판이 되었다. 요번 챔필에서 한 올스타전 이였죠.. 3루 서프라이즈존(익사이팅존)에서 경기 보고 있었는데 아마 이재원 선수 타석이엇을 겁니다 이재원 선수가 친 파울타구가 엄청 높이 뜬 상태로 서프존으로 날아오길래 저는 피했지만 어떤 여성분이 뒷목부분을 맞으셨더라구요... 경호원도 달려오고 무튼 꽤 심각해 보였고 밖에 나가서 치료도 받고 들어오셨는데 그 때 3루베이스코치를 이만수 감독님이 하고 계셨는데 관중석 쪽으로 오시면서 몸은 괜찮으신지 먼저 물어보시면서 배트 하나 드린다고 하시더라구요.. 실제로 다음 이닝에 이재원 선수가 사용했던 흔적이 그대로 있던 배트랑 싸인볼 가져오셔서 그 여성분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이만수 코치에 관한 기분좋은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한국어로 이 이야기를 번역해준다면 참 고맙겠군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을 테니까요. A nice story about coach Lee. If somebody can translate this in Korean, I would appreciate it and many people can share... 중부 표준시각으로 2005년 11월 3일 오후 3시 30분 chicagosports.com 을 통해 보니 참 대단하더군요. 화이트삭스는 우리들 가슴을 무너지게 만들었지만, 저와 제 딸은 영원히 화이트삭스 팬이 되었습니다. From Chicagosports.com November 3, 2005, 3:30 PM CST Unbelievable class. The White Sox may have broken our heart, but my daughter and I will forever be White Sox fans. 제 딸 Carris는 8살이고 Astros를 좋아해요. 그 애는 저와 함께 시즌 내내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카디널스와의 18이닝 플레이오프 게임과, Astros가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오른 6차전 게임에도 함께 있었죠. (옮긴이 : 18이닝 플레이오프게임 상대는 카디널스가 아니라 브레이브스 였음. 쓰신 분이 실수하신듯...*^^*) My daughter Carris is 8 years old and loves the Astros. She has been with me through the entire season as well as the 18-inning playoff game against the Cardinals and Game 6 when the Astros clinched the National league championship. 월드시리즈는 저와 제 딸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경험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오후 4시 15분에 구장에 도착해서 월드시리즈 경기의 에너지를 보고 느껴보려고 했지요. 딸 아이는 엄청 좋아하는 제프 백웰의 사인을 무척 받고 싶어했지만, Astros는 연습하러 나왔다가 우리 쪽은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가버렸어요. The World Series offered me a chance to enjoy an experience with her that neither of us will ever forget. We arrived at the ballpark at 4:15 p.m. to see and feel the energy of a World Series game. She hoped and hoped that we would be lucky enough to get a Jeff Bagwell autograph (her favorite player). The Astros took the field and left without even looking our way. Carris는 약간 화도 났지만 Astros 선수들이 다시 와서 사인을 해주기 바라며 들떠 있는 상태였죠. 우리는 경기장 맨 앞줄쪽에 자리를 잡고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나와 몸을 푸는 것을 지켜보았어요. 그들은 여유있어 보였고 자신감에 차 보였죠. 선수들은 자신들을 향해 조롱을 하는 팬들 속에서 연습을 하며 쉴새없이 관중석에 공을 던져줬습니다. 곧 팬들은 화이트 삭스 선수들의 이런 모습을 즐기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자리로 돌아가 잡담을 나누곤 했습니다. Carris was slightly upset but stayed anxious and hopeful that the Astros would come back and sign autographs. We stayed positioned on the front rail and watched as the White Sox took the field to warm up. They seemed loose and confident. They played with the fans that razzed them and consistently threw balls to the crowd. Soon the fans were enjoying the White Sox players. Many came over to the stands and small-talked. 제 딸은 화이트 삭스가 계속 훈련하는 것이 영 못마땅했었나 봅니다. 우리는 구경하다가 파울볼을 잡으려고 했지요. 몇 개는 우리 쪽으로 날아오기도 했지만 대부분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떨어졌죠. 그리고 '쾅!!' 저는 제 뒤로 열 다섯줄쯤 뒤에 공이 떨어진 관중석쪽을 보고 있었는데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 주위 모든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어요, "여자 아이가 다쳤어요!!". 저는 가슴이 철렁하는 것을 느끼며 돌아봤어요. 저 사람들이 말하는 여자 아이가 제 딸인지 확인하려구요. My daughter still was not convinced the White Sox deserved any positive reinforcement. We then watched and now hoped to catch a foul ball. A few came our way although most landed well out of reach. Then, BAM. I was looking up into the stands where a ball had landed 15 rows behind me and then it happened. Everyone around me was yelling, "The little girl got hit". I felt my heart fall out of my chest as I turned to look and see if my daughter was the girl they were shouting about. Carris는 제가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이었어요. 딸 아이는 한 걸음 물러나 자기 뒤에 접힌 채로 있는 의자에 앉으려고 했지요. 저는 계속 물었어요, "어디에 맞았니? 어디에 맞았니?". 딸 아이는 손을 들더니 살이 많은 쪽에 벌겋게 붓고 멍이든 곳을 보여주더군요. 우리 앞쪽에 있는 안전요원들이 의사를 불렀어요. Carris는 놀라지만 않았다면 괜찮아 보였음에도, 눈에 눈물이 고여 있더라구요. Carris had a look on her face that I can not describe. She took a step back and tried to sit on the seat folded up behind her. I kept asking "Where did it hit you, where did it hit you?" She held up her hand and showed me a red, bruised spot on the meaty side of her hand. The security guard positioned in front of us called for the medics. Carris had a tear in her eye although she seemed OK if not in shock. 우리는 의사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화이트삭스의 불펜 코치 이만수씨였습니다. 그는 Carris의 손을 살펴보고 공 한 개를 쥐어줬습니다. 그러자 딸 아이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더군요. 그리고 저는 월드시리즈의 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만수씨는 그라운드에 내려가서 Carris를 안아올려 포즈를 위해 자기쪽에 세웠습니다. 그가 딸을 잘 달래고 있는 사이 의사가 왔습니다. Carris의 손은 약간 멍들었지만 괜찮았습니다. 우리는 앞줄을 떠나 우리 자리로 갔습니다. 딸은 그 공과, 벌이 그려진 풍선과, 글러브를 경기 끝날 때까지 꼭 쥐고 있었죠. We waited for the medics to come but the first person there was the White Sox bullpen coach Man Soo Lee. He checked on Carris and handed her a ball. This brought a small smile to her face and allowed me a chance to catch this World Series moment on camera. Man Soo Lee reached down and picked up Carris and held her close to him for the pose. He offered some sympathetic words and then the medics arrived. Carris' hand was a little bruised but will be fine. We then left the rail at the front row and found our seats. Carris held her ball, her bumble bee balloon, as well as her bumble bee glove for the rest of the game. 저와 제 딸은 계속 Astros를 응원했지만, 화이트삭스의 코치 이만수씨의 행동으로 인해 우리는 (적어도 아메리칸리그에서는) 화이트삭스도 계속 응원하게 될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야구가 팬들을 위한 경기라는 것과, 이만수씨가 우리의 영웅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군요. 화이트삭스, 애스트로스 화이팅!!! 텍사스 Baytown 에서 Stan Terry Even though Carris and I continued to root for the Astros, it's the little thing that White Sox coach Man Soo Lee did that will keep us pulling for the White Sox too (at least in the American League). I want to let everyone know that baseball is the fans game and Man Soo Lee is our hero. Go White Sox and Astros! Stan Terry, Baytown, Texas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영구결번이자, 439홈런(역대 통산 홈런 44위)이라는 대기록에 빛나는 [[폴 코너코]]는 갓동님의 가르침을 받고 각성하여, 2년 연속 40홈런을 기록했다. ㄴ 그리고 그가 2년 연속 40홈런을 기록한 그해, 화이트삭스는 88년만에 우승하였고, 그 이후 아직까지도 우승을 못하고 있다. 아직도 갓동님에 대한 전설적인 소문 때문에 그의 재림을 기대하는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많다고 한다. 결국 갓동님과 함께하던 시카고 시절을 잊지 못해 후에 한국 방송에서 인터뷰를 시도하자, '아 갓동님의 나라에서 온 방송국이냐, 그렇다면 당연히 인터뷰해야지. 무조건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받아주며 갓동님과의 추억을 언급하였다. [[파일:폴 코너코의 갓동님 사랑.jpg]] 야갤에도 갓동님한테 사인받은 놈의 팬 서비스 후기가 올라와있다. 볼 놈들은 봐라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seball_new4&no=798768&page=360&exception_mode=recommend 이렇게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 '''파도미남'''과 '''파도미'''이다. 이렇듯 모든 야구인과 팬들을 두루 사랑하시는 갓동님은 '''남을 사랑하기 위해선 나부터 사랑해야겠구나.'''는 신념 하에 자기 자신을 갈고닦는데 열심이시기로 유명했다. 중학교 1학년 후반기부터 야구를 시작하셨다고 하는데, 잘 따라가지 못해 2학년을 유급해 두 번 다니면서 중학교를 4년 다녔다고 하신다. '''아, 이러면 안 되겠다. 온누리에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선 세계적인 선수가 돼야 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으신 이만수 갓동께서는 이후 10년간 하루 4시간씩만 주무시며 야구에 매진하셨다고 한다. 그 덕에 크보 최강 타자로 군림하시던 갓동님께서는 그 곳에서 꿈을 멈추지 않고 [[메이저리그]]라는 목표를 세우셨다. 현역으로 메이저 진출은 실패했지만, 이후 마이너 코치 2년을 거쳐 메이저리그 코치가 될 수 있었고, 메이저 우승반지까지 끼셨다. 그렇게 꿈을 이루신 갓동님의 다음 목표가 바로 '''이 좋은 야구를 젊은 선수들에게 재밌고 즐겁고 신나게 오랫동안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2014년 라오스에 야구 재능기부를 시작하심으로서 그 꿈을 이루어 나가고 계시다. 김성근 감독과 인연이 있다. === [[김성근]]과의 악연 === [[파일:빛과어둠.jpg]] '''KBO 34년 역사를 관통하는 악연''' '''KBO의 어둠과 빛''' 이렇듯 훌륭한 품성으로 적이 없기로 유명한 갓동님이지만, [[한화 이글스]] 감독직을 맡고 있는 [[김성근]] 감독과는 30년에 걸쳐 쌓인 악연을 갖고 있다. 사실 악연이라고하기에도 웃긴게 갓동님은 넓은 마음씨로 무슨 일이 있어도 허허 웃고 넘기지만, 졸렬한 세이콘이 열폭해서 꼬장부리는거라서 일방적인 측면이 있다. 세이콘은 주로 갓동님이 야구를 못한다고 까는데, 실업팀에서 빌빌거리던 투수가 프로리그 타격왕 타점왕 홈런왕 선수한테 그런말하는게 좀 측은해보인다. 노망인듯. 30년동안 좆크보 우승 3번해본 인간이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있는 사람 깐다면서요? 구라치지마라 그런 병신새끼가 어딨냐 80년대 초반을 보면 앞서 [[삼성 라이온즈]] 선수생활 당시의 수비력 논란에 대해 얘기하며 언급했지만, [[김성근]] 감독이 '''"이만수는 팔뚝 힘줄만 봐도 구질이 보인다."''' 식의 얘기로 이만수 갓동님의 수비실력 저평가에 한 몫을 하였다. [[파일:삼성근.jpg]] 이렇게 악감 정이 있을 법 한 상황. 1991년에 [[김성근]]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부임한다. 이 글을 읽을 [[야갤러]] 여러분들도 아시다 시피 [[김성근]] 감독은 스타 플레이어를 필두로 한 빅 볼 야구가 아닌 [[벌떼야구]]라는 스몰 볼 작전야구에 특화 돼 있는데, 이에 대해 약팀 감독만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반론도 있지만 우스운 것은 [[김성근]]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같은 강팀을 가지고도 스몰볼 작전야구를 하겠다며 자기 판을 짠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 선수들을 홀대하고 자신의 제자들을 중용하고 [[류중일]] 이만수 등 기존 선수들을 홀대, 대우 문제로 기존 선수들과는 마찰을 빚었다. 게다가 2년 연속으로 가을야구는 했으나, [[삼성 라이온즈]]의 목표는 우승이었기에 3년 계약기간을 못채우고 잘렸다. 사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때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80년대 후반~90년대 초쯤 미국 LA 다저스를 통해 수입한 수비 시스템을 도입해 보완하고 시험하는 중이었다. 이 무렵 LG 이광환이 '스타 시스템'이라는 이름하에 분업 야구를 도입하기도 했으니 한국 야구는 바야흐로 새바람 혁명기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집 세고 굽힐 줄 모르는 김성근은 삼성 감독에 부임해 삼성 라이온즈가 미래를 보고 가다듬고 있던 수비 시스템을 뒤집어 엎으려고 했고, 선수단의 극렬한 반발로 이는 무산되었다. 그러나 기기묘묘한 언플로 오랜 세월이 지나기 전까지 이날의 투쟁은 단순한 선수들의 항명이요, 어른한테 대드는 호로자슥 짓으로 평가절하되곤 했다. 그리고 삼성 시절에도 수많은 선수들을 분질렀고 뽑을 풀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삼성에서 런했다. 그런 식의 인사가 성공했다면 모를까 실패까지 겹치며, 2년 뒤부터 [[삼성 라이온즈]]는 창단 이래 최고 암흑기라는 5-6-6의 성적을 거뒀다. 팬들도 특유의 노잼야구와 기존 선수 홀대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당시 삼성 빨던 고추 안서는 삼빠 아재들은 이런 탓에 [[김성근]]의 [[삼성 라이온즈]]를 최악으로 회상한다고 한다. 어쨌든 이만수가 이렇게 사랑하는 자신의 팀을 조져놓은 [[김성근]]에 대한 인식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을 것이다. [[파일:2011112101901 0.jpg]] [[파일:2011112201001464700127551.jpg]] [[파일:세이콘이만수.jpg]] [[김성근]]은 당초 2년 계약이 예정돼 있었고, 당시 헤드코치였던 이만수는 [[김성근]] 임기 종료 이후 감독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성근]]의 [[SK 와이번스]]가 2연패라는 돌풍을 일으키며 강팀으로 군림하게 되자 계약 연장을 하게 됐고, 이만수 갓동님도 안 그래도 [[김성근]]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은데 자기 앞길도 가로막으니 갈등이 있었다. [[김성근]] 감독에 대한 옹호 여론과 겹쳐 갓동님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고, 선수단도 [[김성근]] 감독이 아닌 갓동님의 통제에는 따르지 못하겠다 하며 디스하는 등, 역시 안 좋았던 감정이 악화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정도로 가는 곳마다 앞길을 가로막고 서있는 [[김성근]] 감독에게 감정이 좋을 수가 없다. 이 정도로 틀어지기도 힘들지 않을까 싶다. 김성근의 [[가네바야시 세이콘|또다른 인격]]이 있는걸로 봐선 사실상 2:1 매치이다 [[카더라]] 이후 김성근이 한화 감독이 되면서 새로 영입한 일본인 코치들이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이탈하자 그 밑에서 몇 년을 버틴 갓동님의 인성이 (또)재평가되었다. [[파일:일수만수.gif]] 또 다른 크보의 명장이자 팀메이트였던 [[송일수]] 감독과 랩배틀을 벌이는 장면 정말 못하는 게 없다. [[파일:춤.gif]] 심판과 춤도 잘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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