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북청 케첩 파티 == 6월 19일 이시애를 추격하던 진압군이 함흥을 수복, 홍원으로 나아가서 서쪽 함관령<ref>함경남도 [[함주군]] 덕산면과 [[홍원군]] 운학면 사이에 있는 고개다.</ref> 아래 신원(新原)에 사령부를 세웠다. 구성군은 북청에 주둔한 반란군 뚝배기를 부수기 위해 강순을 선봉으로 보내고 종개령, 산개령에 진지를 구축했다. 이에 강순은 박중선, 허종, 어유소와 함께 종개령을 넘어 북청근처 평포(平浦)에 진을 쳤다. 근데 이시애 이 새끼, 6월 19일에 또 런한 다음 지 동생에게 2만을 주고 북청 근처 여주을현(汝注乙峴)에, 지는 단천 북쪽 군머와 [[야인]] 500여 명을 이성 고사리포(高沙里浦)에서 북청어소로 나아가 공격을 시도했다. 결국 진압군은 반란군이 만든 올가미에 걸리고 말았다. 강순은 김교의 건의를 수용, 나무와 대나무를 늘어놓고 참호를 파서 공격에 대비했다. 6월 24일 새벽 반란군의 공격을 받았지만 진압군은 아닥으로 일관했다. 해가 떠오르자 함길도 사람을 시켜 이시애에게 사탕발림을 시전하니까 반란군의 기강이 해이해지기 시작했고, 이시애는 10여 차례 진압군을 공격했지만 쳐발렸다. 진압군은 이시애에게 [[경복궁|대궐]]에 나가 자수하고 [[앙망문]]을 쓰라고 권유했으나 이시애는 씹었고 재정비를 했다. 7월 14일, 이시애의 사위 이명효가 홍원, 북청, [[갑산군|갑산]], [[삼수군|삼수]]의 주민들을 모아 탕구령(湯口嶺)을 넘어 홍원서쪽 신익평(申翌坪)에 주둔, 진압군이 보급로로 사용하던 함흥 - 북청 통로를 차단했다. 그리고 이시합은 이성 이북의 주민들과 함께 마어령(磨於嶺)을 넘어 2개진을 형성, 이시애는 [[육진]]의 주민들과 함께 대문령(大門嶺)을 넘어 열여문평에 진을 쳐서 진압군이 말라 죽기를 기다렸다. 진압군은 이를 위해 북청 주둔군의 일부를 홍원으로 보내서 1, 2, 3진으로 나눴고 이시애는 이때를 노려서 북청을 점령했다. 회유책? 이제 할 만큼에서 깔끔하게 족쳐버리기로 결정했다. 7월 25일, 진압군은 야간에 몰래 강순의 1진으로 산개령, 어유소의 2진으로 종개령을 넘어 북청으로 들어가고 구성군은 평포로 들어갔다. 진압군은 산개령, 종개령에서 반란군을 격파, 이시애의 얼굴 마담이었던 유사 부절도사 유득지(劉得之)를 후드려팼고 이를 들은 이시애는 1만을 이끌고 북청 동쪽 만령(蔓嶺)으로 들어갔는데, 결국 반란군을 묶어버리는 병신짓이 되고 말았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