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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 젊은 시절에 깡패짓을 했으나 너무나 영화를 좋아해서 그런지 당시 영화계의 황태자로 불릴 정도로 연예계와 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적이 있었다. 또한 [[이정재]]와 [[곽영주]]의 빽으로 동대문파의 2인자격의 자리로 오른적이 있었다. 영화제작자라곤 하지만 당시 제작한 영화들은 대부분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 (1951년)|자유당]]을 찬양하는 프로파간다 영화들 밖에 없었다. 하지만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과 [[자유당 (1951년)|자유당]] 정권이 몰락하니 지 살려고 바로 [[김구]]를 찬양하고 [[이승만]]을 깟다. 아무리 영화인이라 그래도 깡패근성은 남아있었는지 연예계에서도 각종 구설수에 올랐는데 이중 당시 거물급 희극배우인 김희갑을 구타한 사건은 꽤나 유명했다. 뿐만 아니라 수십년간 계속된 연예계 성상납문제의 원흉이란 말도 있다. 이새키가 높으신분들과 유착하기 위해 연예인들에게 성상납을 요구했기 때문이란다. 부모님에게 잘해주고 사형이전에 눈물에게 어머니 부탁한다는 말 해준거 봐선 효자인듯 하다. 뭐 실제로 이런 비슷한 사례는 많지만.. [[파일:박지성임화수.png]] 둘의 얼굴 무엇? 임화수와 박지성이다. === 결국 === {{끝내기}}{{정의구현}} 결국 4.19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자 연예계에서 각종 구설수와 정치깡패짓을 이유로 [[이정재]], [[곽영주]], [[유지광]]과 함께 체포되었다가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박정희]]에 의해 사형을 선고 받고 감형된 [[유지광]]을 제외한 나머지들과 같이 형장에 이슬로 사라졌다. 눈물의 곡절(본명:차민섭)이라는 수행비서가 있었는데 어릴적 임화수와 인연이 있었고 수행비서가 된 이후 임화수에게 존나 갈굼당하고 쳐 맞았다고 한다더라. 그래도 충성심은 높았는지 사형 집행 이후 임화수의 시신을 직접 수습했다고 한다. 그나마 초등학교 몇년은 댕긴 김두한과 달리 리얼 무학에 문맹이라서 글배우기 전에는 눈물의 곡절이 신문을 읽어줬다고 한다. 시라소니가 글모르는것으로 놀리니까 빡쳐서 눈물의 곡절한테 글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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