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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예로부터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모이는 고장이었다. 요즘은 [[부산광역시|부산]]이 주요 무역 도시로 꼽히지만 아주 옛날에는 중국이 주된 무역 대상이었기에 전라남도, 그 중에서도 [[나주시|나주]], 영암, 해남, 완도 같은 서남부 해안 접경 지역이 주요 무역 도시였다. 그래서 여러 세력들이 거쳐간 곳이었다. 산지보다는 비옥한 평지에 논밭을 갈아서 인구 부양 측면에서 식량 생산도 면적 대비 많았고, 물류 지리적 측면이나 공단 기술 수준 등이 중요한 산업화 이전에 농경 시대에는 인구 많고 경제력 있는 지역이었다. [[원삼국 시대]]에는 대략 [[마한]], 일부는 [[변한]]이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삼국 시대]]에는 근초고왕의 마한 정벌 이후로 [[백제]]에 속했다. [[마한]]이 [[백제]]에게 5세기 동안 항쟁했다는 기록과 그 시기까지 마한식 옹관묘가 떼로 나오는 걸 봐선 [[전남]]은 [[백제]]라고 함부로 단정하기 어렵다. 결국 문화 자체는 백제화 되긴 했지만 머가리까지 완전 백제화된 건 아니라서 [[견훤]]이 [[후백제]]를 세울 때도 자신들을 백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견훤이 [[광주|무진주]]에서 후백제 세우려고 했는데, 이거 때문에 백제 땅이었던<ref>[[경기도]]+[[충청도]]+[[전라북도]] 일부(익산, 군산 제외한 나머지는 다 마한)</ref>[[전주|완산주]]에서 왕을 칭한 것이다.<ref>그러나 백제의 발상지였던 경기도는 고구려가 먹은 후로는 고구려화가 진행되었다. 지금이야 전라도 출신 이주민들에게 역으로 동화되어서 그렇지, 원래 [[경기도 방언]]은 고구려가 있던 [[평안남도]] 지역과 방언이 매우 유사했다.</ref> [[남북국시대]]에는 [[신라]]에 속했다. 신라가 망하고 나서는 [[견훤]]이 다 먹...을 뻔하다가 [[왕건]]에게 [[나주시|나주]]를 털린 덕분에 몇 번이나 후장 뚫려서 후백제가 망할 뻔했다. 결국 후백제는 [[구미]]에서 왕건에게 복날 개 패듯이 얻어맞고 멸망한다. [[고려]] 시대에 전국을 5도 양계로 정비한 이후 전라도라는 이름이 지도에 새겨졌고, 1896년에 전라남도로 분리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다. 광복 이후 전남 + 전북의 친일 지주들이 주축이 되어서 생긴 [[한국민주당]]의 나와바리였고 [[반인반신]] 이후에는 [[민주공화당]]이 60년대에는 눌러앉았다가 [[슨상님]]이 7대 대선(1971년)에서 등판하면서 민주당이 어느 정도 주도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래도 반인반신에 대한 지지율도 굉장히 높았기에 슨상님이 의외로 뭣대로 나대기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29만원]]이 [[5.18 민주화 운동]] 때 양민학살을 하면서 민주당이 완벽히 장악하게 되었다. 김영삼이 하나회 감빵 처넣고 5.18 유족 보상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때 1회 지선이 있었는데 이때 민자당 지지율과 득표율이 전남에서 20~25%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기회를 살렸더라면... 물론 지금은 두 번 다시 보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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