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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에 대한 선현들의 주옥 같은 옛 말씀 == {{일베}} {{병림픽}} 알아야 할 점은 신라-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고려 시대에는 후백제의 수도였다는 이유로, 조선 시대에는 기호학파와 영남학파가 기득권으로 있으면서 한반도에서 기호[경기 호서(충청)]와 영남 빼고는 다 욕먹는 대상이었고, 조선은 지금보다 10배는 더 심한 씹선비 국가에 성리학이나 받들던 전근대적인 봉건 국가라는 걸 고려해야 한다. 즉, 성리학에서 벗어나면 안 좋게 기록했겠지만 지금의 가치로는 오히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것일 수도 있다. 전라도에 대한 욕은 과거부터 넘쳤다. 혹자는 택리지 하나 들고 와서는 평안도 팔아먹는 개양아치 짓거리를 하고 있는데, 전라국 이 새끼들은 통일되면 평안도 새끼들 욕할 인간들이라는 걸 인증하는 것 같다. ㄴ 지랄 똥 싸고 있네. '탈북자' 소리만 나오면 제일 먼저 애액 빼는 새끼들이 [[일베충|누구]]인데? ㄴ 택리지는 쉽게 말해서 오늘날 여행 갔다오고 쓰는 기행문 수준에 불과하다. 내용들을 보면 평안도는 워낙 추워서 농사는 못 짓겠지만 그래도 기생이 이쁘니 가서 놀기엔 좋겠더라, 강원도는 여행 가기는 좋겠더라, 황해도는 중국과 한양 사이에 끼어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재물을 털려는 산적이 많이 나오겠더라, 경상도는 땅이 기름지고 태백 소백 산맥과 낙동강이 경치 좋아서 놀기에도 좋으니까 사대부가 정착하기 좋겠다, 전라도는 물산이 풍요로워서 먹고 살 만하고 좋은데 평야가 많아서 전쟁 터지면 제일 먼저 털릴 거 같으니 가서 살기는 안 좋을 것 같더라 등의 평범한 얘기들이다. 어느 지역이 욕을 먹어도 싸다는 소리를 포장할 근거로 쓰기에는 한참 부족한 책이다. 택리지로 지역 평가하는 것은 블로그나 커뮤니티 글 보면서 곧이곧대로 배우고 받아들이는 것만큼 위험한 짓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면 이중환은 생전에 전라도와 평안도를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해당 지역들은 기존의 다른 문헌들을 참고해서 작성했을 (아니면 그냥 베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이다. 한 예시로, [[남원]]과 [[구례]]는 살기 좋다고 썼는데(복거총론 - 생리 편) 좀 넘겨서 읽다보면 안 좋다(복거총론 - 지리 편)고 번복하는 등, 진풍경이 나온다. 일반화 어쩌고 타령하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평안도든 함경도든 어느 도와 비교해도 전라도만큼 압도적으로 욕 먹은 지역은 없다. 사서, 기록, 신문 등... 그리고 국왕들은 자기 조상이 전주 출신이든지 어디였든지 간에 반란을 일으키고 소란을 피워서 나라를 위험하게 한다면 자기 조상이 전라도 출신이라도 전라도를 욕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ㄴ 그래서 [[반역향]] 제도를 통해서 반란이 일어났던 모든 지역에 공평하게 철퇴를 먹였다. 그리고 어차피 조선 왕족들은 함경도 이주민인데다가 대대로 서울에서 태어난 인간들인데 전주 본관 이유만 가지고 조선 왕족들이 전라국 까는 걸로 패드립 타령하는 것 좀 봐라 ㅋㅋㅋㅋㅋ ㄴ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훗날 '목조'로 추존되는 이안사)는 함흥으로 거주지를 옮기기 전에 전주에서 살았다.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도 전주 사람이다. 참고로 이성계는 이한의 22세손이다. 전주는 택리지에서도 살기 좋은 동네라고 말한다. 더 무서운 건 조상님들이 언급한 전라국 특성은 현대인이 전라국 새끼들 까는 레파토리랑 거의 흡사하다는 거 ㅋㅋㅋㅋ 이 새끼들은 정말로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한 게 없어 ㅋㅋㅋㅋㅋㅋㅋ ㄴ [[풍수지리]]설은 미-개하다고 얘기하는 새끼들이 '풍수지리'로 인품, 성품, 능력을 평가하던 조선 시대 사료를 들고 와서 전라국 까는 걸 포장하려고 드냐? 이 새끼들 지능 수준은 진심 조선 시대에 멈춰 있냐? === 고려 시대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71112&cid=49632&categoryId=49632 전주는 바로 옛 후백제의 수도라 태조께서도 싫어하셨으니, 바라옵건대 주상(현종)께서는 행차하지 마소서.]<br> -고려사 지채문열전 물론 태조는 후삼국 전쟁이 일어나자 [[나주시|7시]]로 런했다. 이 말은 현종도 고려 혜종의 외가로 유력 종친이 있는 나주로 도망가는 중에 전주를 거치려다가 들은 것이다. 즉 결국 전라도로 런함. === 조선 시대 === ==== 국왕 ====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704012_003 우리 태조가 그때에 시중(侍中)으로 있었는데 말하기를 "우리 고향 전주(全州)가 백성이 많고 일이 번다하여, 재주 있는 사람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다." 하시고, 발탁하여 판관(判官)을 삼았더니, 부세(賦稅)가 공평하고 정치가 엄숙하였다.]<br> - [[세종]]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706029_002 오늘날 나라가 그나마도 믿고 나라다운 것은 호남이 있기 때문이며 호남의 근본은 전주에 있다. 그렇다면 전주 부윤을 제대로 얻느냐 못 얻느냐의 문제는 국가의 존망에 관계되는 것이니 신중히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br> - [[선조]] [http://sillok.history.go.kr/id/knb_11910001_004 이이가 이조 판서가 되어 향선(鄕選)을 천거하는 규례를 만들어 학문과 행실이 뛰어난 자는 천거케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타의 도(道)에서는 많은 인물을 얻을 수는 없지만, 호남은 인재의 부고(府庫)이고 아울러 선배들에게서 친히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있어서, 하나의 행실을 취할 만하거나 하나의 경서를 가르칠 만한 인물이 없지 않았습니다. 신이 정철의 막하(幕下)에 있을 때 서로 마음을 다하여 찾아내어 50여 명의 인재를 얻었습니다.]<br> - [[선조]]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911017_002 전라도는 임진년의 병란 이후로 국가에 공이 많거니와, 양반 중에서 근왕(勤王)한 자는 다 호남 사람입니다.]<br> - [[선조]] [http://sillok.history.go.kr/id/kra_10307006_002 국가는 인재를 중히 여겨야 합니다. 호남의 경우 충신과 의사(義士)가 예로부터 배출되었는데 그 기풍이 지금도 남아 있어 온통 의열(義烈)의 기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br> - [[현종]] [http://sillok.history.go.kr/id/kua_10109010_002 임진년의 변란(變亂)에 의병(義兵)을 일으켜 순절(殉節)한 선비가 호남(湖南)에서 많이 나왔으나, 그 중에서 가장 드러난 자는 김천일(金千鎰)·고경명(高敬命)·최경회(崔慶會) 이분들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이제 그대의 상소를 보건대, 두 신하의 충절(忠節)이 늠연(澟然)히 살아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은 해조(該曹)로 하여금 품처(稟處)하도록 하겠다."]<br> - [[영조]] [http://sillok.history.go.kr/id/kua_12105015_003 비록 양남(兩南)으로 말하더라도 명현(名賢)은 영남(嶺南)에서 많이 나오고, 충절(忠節)은 호남(湖南)에서 많이 나왔습니다.]<br> - [[영조]] [http://sillok.history.go.kr/id/kua_13204014_001 신이 그윽이 호남 한 도를 보건대, 토지가 넓고 비옥하여 해마다 들어오는 조세(租稅)가 경비의 반을 충당하니, 마치 중국의 강회(江淮)지방과 같습니다. 임진년 의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칠도(七道)가 판탕(板蕩)되고 삼경(三京)이 폐허가 되었는데, 밖으로는 천병(天兵)을 응접하고 안으로는 행재소(行在所)에 이바지하면서, 병졸을 조련하고 군량을 공급하여 중흥의 대업에 기업을 닦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 도에 의지했던 것입니다.]<br> - [[영조]] [http://sillok.history.go.kr/id/kda_12204004_002 전라도는 산수(山水)가 배치(背馳)하여 쏠리고 인심이 지극히 험하나, 인심이 험악하다고 해서 억지로 편복(鞭扑)을 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br> - [[세종대왕]]<br> ㄴ 일베충들은 억지로 다룰 수 없다는 부분을 때려도 답이 없다고 해석함. 어느 쪽이든 전라국 인성이 ㅈ같다고 언급한 건 맞음. [http://sillok.history.go.kr/id/kia_10605017_004 전라도는 고려조 이후로 풍습을 고치지 못하여서 심성이 완고하고 악랄하다.]<br> [http://sillok.history.go.kr/id/kia_12404024_005 본도(本道)의 풍속이 본래부터 강한(强悍)하다고 일컫는데, 비록 사명(使命)이 있다 하더라도 거의 두려워하고 꺼리지 아니하여, 전자(前者)에 여러 번 간사하고 난폭한 행동이 있었으니, 중전(重典)으로 다스려서 그 악한 짓을 고쳐서 없게 하라.]<br> - [[성종]] [http://sillok.history.go.kr/id/kka_11212104_001 전라도 인심의 완악함이 경상도보다 심하다는 것은 본시 말해온 바이지만,]<br> - [[중종]] [http://sillok.history.go.kr/id/koa_11007011_009 호남은 인심이 착하지 않아서 매양 근심스럽고 두렵다.]<br> - [[광해군]] [http://sillok.history.go.kr/id/kpa_10511023_001 호남(湖南)은 지나치게 강한 풍습이 있다고 한다.]<br> - [[인조]] ==== 유명 위인 ==== 호남은 국가의 보루이며 방벽이니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가 없었을 것입니다. (湖南國家之堡障 若無湖南 無是國家) - 충무공 이순신 사헌부 지평(持平)현덕승에게 보낸 1593년 7월 16일자 편지 [http://sillok.history.go.kr/id/kna_13306015_002 충청도의 인심은 전라도 같지는 않았습니다. '''전라도 사람은 본디 성질이 강한(强悍)하고 쉽게 동요될 뿐 아니라 물력(物力)을 쓰는 것이 심합니다.''']<br> - [[이항복]] [http://sillok.history.go.kr/id/kna_13410019_002 대개 경상도는 인심이 순후하여 전라도처럼 속임수가 많지 않습니다만]<br> - [[이덕형]] ㄴ 이 말 바로 다음에는 임진왜란 끝난 지 3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 임진란 때 제일 심하게 털렸던 영남에서는 정작 선비 새끼들이 국방 대책을 안 한다고 까고 있다. 전라도는 산수가 머리카락이 흩어진 듯 하여 인재가 나기 어렵다.<br> 전라도 사람들은 방술(方術 방사(方士) 술법)을 좋아하고 과사(큰소리치고 남을 속이는 것)를 잘한다.<br> 전라도는 풍속이 사나워서 나그네가 잠자리를 얻을 수 없는데, 전주가 가장 심하고, 기질(氣質)이 나약해서 추위와 주림을 참지 못하는 것은 도내(道內)가 모두 마찬가지다.<br> 추악한 말이 조종조(祖宗朝)에는 절대 없었는데, 연산(燕山) 말년부터 정국(靖國) 초년에 이르러 처음 호남(湖南)의 영광(靈光)ㆍ만경(萬頃)등지에서 시작되어 드디어 사방에 전습(傳習)된 것이라 하시더라.<br> - 성호 이익 호남의 풍속은 겉모습만 그럴 듯하고 경박하며 면전에서만 진실된 척하고 속마음은 다르니 마땅히 순후와 예교로써 교화해야 한다.<br> - 안정복 전라도는 오로지 간사하고 교활하여 나쁜 일에 쉽게 움직인다.<br> 전라도는 풍속이 노래와 계집을 좋아하고 사치를 즐기며, 사람이 경박하고 간사하여 문학을 대단치 않게 여긴다.<br> - 이중환 ㄴ 참고로 이중환은 전라도만 디스한 게 아니라 평안도와 경상도 빼고 다 디스했다. 정작 이중환은 전라도에 가본 적이 1번도 없었다. 우리 호남은 예로부터 충신과 의사가 많은 지역이다. 나라에 대란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창의하여 팔도에서 가장 먼저 분주히 힘썼으니 아름답고 훌륭한 일이 아닌가. 임진, 갑자, 이괄의 난, 정묘, 병자, 무신에 이르기까지 지난 사첩에 분명히 실렸고 유풍이 멀리까지 퍼져있으니 이는 여러 군자들이 함께 들은 말이다. - [[정약용]] 전라도 창의통문 호남은 풍속의 질박함이 없어 뛰어난 가문이 서넛밖에 없다.<br> - [[정약용]] ==== 사관 ==== [http://sillok.history.go.kr/id/kma_11811013_003 '''호남(湖南) 사람들은 대부분 기운을 숭상하고 이기기를 좋아한다.''' 유관(儒冠)을 쓰고 있는 자는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고상하게 여기고 벼슬길에 오른 자는 자랑하고 떠벌리며 서로 선동한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고 그들의 외모를 보면 너무도 당당하여 그들과 더불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일을 맡겨 그 실상을 책구(責求)해 보면 녹록하여 취할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그 허풍떠는 기질과 습관에 물들지 않은 자가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이번 일만 하더라도 어찌 그렇게 패려(悖戾)스럽단 말인가. 백의(白衣)를 입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은 청금 고협(靑衿鼓篋) 으로서 할 짓이 아니며, 유생들을 몰아 내고 관원을 협박하는 것이 어찌 글자를 알고 예를 배운 자들이 할 일이겠는가. 공명의 노예가 되어 '''장차는 국가도 안중에 두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니''' 그들의 심술은 벌써 그 가정에서부터 허물어진 것이다. 2백 년 동안 우리 나라에 이러한 변이 있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 발생하였으니, 어찌 선비들의 풍습만 불미스럽다고 하겠는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윗사람은 쇠약해져서 기강이 점차 산만해 질 것이니 한탄스럽다.]<br> - 명종실록 ==== 외국인 ==== "전라도는 남김없이 모두 한 번에 쳐라" -도요토미 히데요시 ㄴ 이건 그때 전라도만 함락 안되고 버텼고 곡창지대라 여기 점령해야 조선이 식량부족해서 끝나기 때문임 전라도 사람들은 사악하며 교활하며 잔재주가 있다.<br> - 명나라 장수 나학천 ㄴ 전라도 까자고 짱깨 말 믿는 [[일베충]] 수준^^ ㄴ 제3자가 보기에도 욕 먹을만한 수준이라는 건데 왜? 저 사람도 명예일베충 시켜줘야지? ㄴ 근데 짱깨들이 할 소린 아니지않냐? ㄴ 전라도 지역감정은 없는데 왜 명이랑 중공이랑 같게보냐? 그렇게 따지면 조선 고려 사람들도 지금 북괴처럼 난폭하냐 ㄴ 일제시대때 일본 위인이 중국인들이 더럽고 바퀴벌레라 신민으로 삼을가치도 없다 말할때도 중공 아니었습니다만 ㄴ현대시대에서 잔재주라는건 큰 장점이될수가있다 도덕윤리에 대한 이들의 시각은 별로 엄격하지 않은데, 이들은 서로를 믿지 않으며 남을 속이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하는 것을 대단한 능력으로 여긴다.<br> - 헨드릭 [[하멜]] ㄴ 팩트를 말하자면 이거 전라도에 대해서 말했던 게 아니라 [[조선 왕조]]에 대해서 말했던 거다. "'''조선인'''들은 훔치고 거짓말하며 속이는 경향이 강하다." 전라도에는 양반이 적다. 그 주민들은 다른 조선사람들로부터, 버릇없고 위선적이며 자기들의 이익만 구하고 덕만 볼 수 있다면 언제고 가장 침맞을 만한 배반행위도 서슴지 않고 할 사람들이라고 간주되고 있다.<br> - 샤를르 달레 ㄴ 이거 마치 전라도만 깠다는 식으로 [[일베충]]들이 이거 가지고 선동하는데 다른 지역들도 다 디스했다. * [[평안도]]와 [[함경도]]. 특히 평안도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더 굳세고 사납고 미개하며 양반과 벼슬아치들이 매우 적다. * [[황해도]] 사람들은 매우 옹졸하고 융통성이 없다. * [[경기도]] 사람들은 경박하고 지조 없고 사치와 쾌락에 빠졌다. * [[충청도]] 사람들은 모든 점에서 경기도에 비해 그 정도만이 적을 뿐이다. 참고로 샤를르 달레는 조선 땅에 1번도 방문한 적이 없으며 이런 기록은 다블뤼라는 선교사가 적었는데 다블뤼는 [[경상도]] 남부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남인 계열과 많이 만났었다. 그나저나 우리나라에서 조선시대를 이조 시대라고 부르는 곳이 딱 [[북한|한 군데]] 있는데? 혹시 이거 처음으로 쓴 새끼 고향이? ㄴ이거 쓴 넘아 어디서 발췌한 거냐 진짜 개 이렇게 개븅신 지역인지 궁금해서 다 찾아봤는데 저런 거 기록되어 있는 게 아예 없는데? 혹시 조선 시대 때부터 살았냐? ㄴ친절하게 링크 달만큼 달았으니 눈이 있으면 들어가서 확인하도록 ㅋㅋ === 일제 강점기 === 재일 한국인들은 천민이라 불렸던 동포, 전라남도 출신자들을 경멸의 대상으로 삼는다.<br> - 재일 한국인들의 저력(우에다 다카히코) ㄴ재일 한국인들의 대부분은 경상도 출신이다 [http://d.hatena.ne.jp/hannitigaku20/touch/20120618/p1 ロサンゼルスに行くと沢山のコリアンがいて、コリアンタウンが出来ている。'''彼らに出身地を聞くと、異口同音に「ソウル」と言う。それはウソで、大方は全羅道あたりの人たちだ。なぜなら彼ら全羅道の出身者は、本国では差別され出世ができない。だから、「ソウル出身」と偽る。'''日本に密航や渡航をしてくるコリアンたちも、ほとんどが全羅道の出身者だ。彼らはまず日本に来て、運がいいとそこからアメリカに渡っていく。国を捨てたくなるほどの凄まじい差別があるからだ。]<br> (해석)→<br>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많은 코리안들이 있어서, 코리안타운이 만들어졌다. '''그들에게 출신지를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경성" 이라고 한다. 그것은 거짓말로, 대부분은 전라도 쯤의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 전라도 출신자는 본국에서는 차별받아 출세를 할 수 없다. 그래서 "경성 출신" 으로 가장한다.''' 일본에 밀항이나 도항을 하는 코리안들도 대부분이 전라도 출신자다. 그들은 우선 일본에 와서, 운이 좋으면 거기서 미국으로 건너간다. 나라를 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심한 차별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것도 거짓말이다. 자신의 나라를 버린 사람이 양심을 버리지 않는다고는 믿기 어려운 것이다.<br> - 아사히 신문(누가 출처 좀) === 1950년대 === 전라도인은 주머니가 둘이고 능글맞다<br> - 중앙대학교 학보(1955) <자유결혼을 방해하는 자에게 고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애인(모니카 다방 레지)과 함께 정사(?)를 하려고 권총을 난사한 청년. 유서의 사연인즉 짝사랑의 비련이 아니라 양인은 물론 양편 부모까지 결혼에 합의를 보아 약혼식 날짜까지 잡았다가 돌연 약혼일 며칠 앞두고 여자측 부모가 반대한 데서 빚어진 비극이었다고. 그런데 그 결혼 반대를 한 이유 중의 하나는 <하와이(전라도)> 남자라는 것이었다나.<br> -경향신문(1956) 100에 99명은 전라도라면 <아이고 말도 말라>며 손을 홰홰 젓는다<br> - 신태양 12권 7호(1958) <팔도인 성격에 관한 선입관념><br> 전라도<br> 1위 간사하다(61.1%)<br> 2위 인색하다(18.0%)<br> - 이진숙(1958) ㄴ 전라도 뿐만아니라 서울 경기도도 간사하다 ( 다른말로 깍쟁이다 ) 가 1위를 차지하고있다 전라도는 간휼과 배신의 표상, 인류권에서 제외해야<br> - 시인 조영암(1959) 우리 전라도 놈들에게 대하는 서울주민들과 타도인종들의 태도란 도리어 전라도놈인 내가 몸서리날 정도다. 동좌석을 하고 앉아서 놀다가도 이러서서 나가는 뒤꼭지에 손까락질을 하며 또하나 전라도놈 내가 남어있는 줄도 모르고 전라도넘 중상이 화제로 꽃을 피운다.<br> - 유엽(1959) === 1960년대 === 소년은 복덕방 할아버지를 찾았을 때 청천벽력을 만난다.<br> "학생, 안되겠어. 다른 방을 알아봐야겠어. 전라도사람이라 안된대 주인이..."<br> - 오홍근(1961) 오늘에 와서 '하와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권 투쟁에서 전라도 사람들에게 뒤진 서울 사람들이 자기들의 열등 의식을 다분히 내포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br> - 학원지(1964) (호남 사람들을 향한 차별에 대해)서울사람들은 나라 망해먹을 곤쇠아범, 구리귀신.<br> - 광주 조대부고 2학년 학생(1964) 전라도 기생은 창을 잘 하고 인간성이 고운데, 어쩐 일인지 서울에서 파래가 푸대접 받듯 전라도는 무시당한다.<br> - 화가 천경자(1965)-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서문리 출신이시다. 전라도사람하면 '개땅쇠'니, 요새는 '하와이'니하고 전라도사람하고 사귀면 손해본다느니 해서 집세놓을때도 꺼리고 경계하는데 그 원인을 나도 모르겠어요.<br> - 경향신문(1966.10.6) 이발소에 가서 머리감겨주는 일을 구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이발소를 가게 되었죠. 그런데 이발소에서 전라도 놈들은 도둑놈이라고 안 써주는 거예요.<br> - 검찰사무관 정병산(1967)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2187641 중학교 때 전북 군산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다. 친구들이 쟤 전라도라면서 막 나를 놀리더라.]<br> - 김수미(군산시 신흥동 출신이시다.) === 1970년대 === 젊었을 때 사귀던 남자와 결혼까지 못간 이유가 조실부모에 대학도 못나오고, 전라도출신에 연예인이라며 결혼을 못하게 된 적이 있었다. 전라도가 죄인이냐, 조실부모가 내 죄냐면서 내가 결혼을 안하겠다고 했다.<br> - 김수미 전라도 사람은 표리부동하고 신의가 없다. 배신을 잘한다. 욕이 어느 도보다 풍부하고 다양하고 지능적이다.<br> - 오영수 === 1990년대 === 호뽑뽑요 -> “호남사람은 뽑지 말고 뽑아도 요직엔 앉히지 말라”<br> - 이병철 전 삼성회장 ㄴ실제로 말했다는 증거가 없다 === 2000년대 이후 === 김대중 대통령은 전라도 출신이라 참 집요하군요<br> - 뽀글이 (2000) ㄴ참고로 이뒤에 슨상님이 자기 본관은 김해고 너새끼 본관은 전주니까 니가 젠라디언 아니냐면서 역관광을 보내븠다. 무조건 호남 뭉치자, 호남 뭉치자 하는 머리 나쁜 호남의원들이랑 일 못해먹겠다 <br> - 노무현 아버지가 전라도에서 장사가 잘 안된 이후로 전라도 출신 정치인들을 보면 악담을 했다<br> 호남 사람 하나를 죽이면 쌀이 서 말<br> -문재인 ㄴ 진보 대통령도 일베충이었냐 ㅋㅋㅋㅋ 뭐 북쪽에는 홍베충도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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