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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Pre) 드레드노트 전함 === 가장 먼저 이 폐해를 알아차린건 가장 많은 전함들을 운용하고 있었던 영국이었다. 영국은 1889년 13.5인치 주포 4문을 탑재한 새로운 형태의 군함을 건조하니 세계 최초의 전함 로얄 소버린급의 탄생이었다. 뭐 장갑전함까지 포함한다면 다르겠지만 1889~1894년간의 초기 전노급 시기에는 아직 전함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다양한 전함들이 건조되었고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급같이 12인치 6문을 탑재하는 경우도 있었다. 1895년 영국의 마제스틱급 전함은 12인치 주포 4문이라는 프리 드레드노트의 기본적인 개념을 완성시켰고 이후 수많은 전함들이 마제스틱급을 모방해 전함의 교과서라 불리운다. 프리 드레드노트들은 주로 4문의 12인치 주포를 탑재하고 있었으나 9.4인치, 13.5인치, 10인치 등의 다른 구경들 역시 간혹 사용되었다. 당시 전함들의 명중률과 사정거리는 부정확해 순수 주포의 사정거리에서만 사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이에 따라 중구경의 부포들 역시 유용되었다. 후기 프리 드레드노트들은 부포로 152mm 이상의 중구경포를 탑재하는 일이 빈번했으며, 203mm 이상의 부포를 탑재하고 15,000톤 이상의 배수량을 가진 프리 드레드노트들을 세미 드레드노트로 구분하기도 했다. 방어력의 경우 엔진실이나 보일러 부위를 중장갑으로 무장하는 초기 형태의 집중방어 전략이 구현되었다. 초기 프리 드레드노트들은 복합장갑을 사용했으나 이후 미국에서 개발된 하비형의 강철장갑으로 곧 대체되었고, 종래에는 제국의 걸작 크룹플레이트로 교체되었으나 미국만은 하비프로세스를 고수했다. 장갑재의 상향으로 더 앏은 장갑으로 더 효과적으로 방어가 가능했다. 기동성은 대부분의 프리 드레드노트들이 16-18노트 정도의 속도를 내었다. 20세기에 다다르면서 주포와 사격통제장치가 계속 발전해 프리 드레드노트들의 교전거리는 계속 확대되었다. 1894년 발발한 청일 전쟁에서 평균적인 프리 드레드노트의 교전 거리는 1마일이었지만 1904년 러일 전쟁에서는 3.5마일로 급속히 확장되었다. ㄴ 그때 일본에 전노급 없었다 청나라만 있었다. 이는 더 이상 사정거리에서 열세를 가지는 부포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였고, 부포가 점차 도태됨에 따라 새로운 전함이 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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