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정철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조선시대의 정치가이자 문인 == {{혐오|한양 버리고 도망간 선조를 빠면서 [[관동별곡]] 쳐쓰고 자빠진 정철 개새끼|고등학교 학생들}} {{고인드립허용}} {{고지 상자 |배경색=#FFFFFF |제목색=blue |제목=경축!!!! 이 문서는 잘 뒤진 고인에 대해 다룹니다. |내용= 이 문서는 꼭 뒤져야만 하는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인간이 뒤짐으로서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팍 줄었음을 생각해보면 이 인간은 지구 온난화 방지에 제대로 기여한 것입니다! }} {{정알못}} {{고인}} {{인간도살자}} {{인용문|'''정송강은 술에 취해 있어 나랏일을 돌보지 않았다.'''|류성룡, 운암잡록(雲巖雜錄)에서}} '''鄭澈''' 1536년 12월 18일(음력 12월 6일) ~ 1594년 2월 7일(1593년 음력 12월 18일 수험생들의 친구다. 성격 드러운 건 기본이며 하성군 빠는 [[관동별곡]]이라는 희대의 좆같은 시를 싸놓은 탓에 후대의 수험생들과 [[문과]]들에게 잊지 못할 자살 동기를 부여해준다. 실제로 15년도 문과 수험생들 대다수에게 엿을 먹인 적이 있다. 성산별곡, 사미인곡도 쓰면서 수험생들의 멘탈을 제대로 강간하고 있다. 이 새끼는 진심 강호에 병이 기퍼서 그냥 뒤졌어야 할놈이다. :ㄴ죽림에 누웠다니까 죽창으로 찌르자! 정몽주와 더불어 연일 정씨의 조상이며 연일 정씨 문과충들을 조상님이 지은 시도 모르는 호로 새끼로 만들어버렸다. 이 새끼는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똥을 세 개 싸질렀는데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이다. 특히 《관동별곡》은 술 처먹고 지은 시로, 아 술 맛 조타! 임금님 다이스키! 라고 말하는 것 뿐인데 개같이 표현해서 현재 문돌이들을 고통 받게 하고 있다. 《속미인곡》은 임금을 지나치게 사모하다가 임금에게 버림받자 자신의 기분을 두 여자에게 빗대어 표현한 시다. 《사미인곡》의 속편이며 이 시 역시 임금을 사모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실 '''정'''치 '''철'''새라는 의미로 정철이다. 《관동별곡》을 간단히 현대에 빗대어서 생각해보면 한 정치인 또는 공무원이 세금으로 여행이나 다니면서 차마 [[문재인|말로 표현하지 못 할 그분]]을 찬양하는 글이다. 강을 봐도 임금새끼 산을봐도 임금새끼 바다를 봐도 임금새끼 달을 봐도 임금새끼. 역사 기록을 보면 권력에 눈이 먼 전형적인 또라이로 지금은 거의 [[선좆]]의 자작극으로 취급되는 [[정여립 모반 사건]]때 완장차고 동인들을 몇 천 명씩 쓸어버린 인간도살자새끼다. 특히 '이발'이라는 양반은 이새끼한테 모가지가 따인 뒤의 자기 가족은 물론 [[노비]]들까지 같이 모가지가 썰려버렸다. 암튼 정철 이새끼의 케찹파티로 인해 동인은 완전히 끝장났고 동인의 연고지였던 [[전라도]]도 같이 망해버렸다. 물론 이런 데만 잔머리 오지게 돌아가는 선조는 나중에 "이게 다 성혼, 정철이 날 꼬드겨서 벌어진 일이다."라면서 거짓 눈물 찔끔하고 밑에 있는 놈들에게 책임 떠넘긴다. 하지만 실제 흑막은 선좆이라는 게 팩트. 거기에 이런 또라이짓을 하고도 마지막엔 선조한테 버림받아서 조회 자리에서 대놓고 씹새끼라고 까이는 굴욕을 당했다. 훌륭한 예술가가 훌륭한 정치인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훌륭한 예. 사실 훌륭한 예술가도 아니다. 권력자 빠는 문학 만드는 게 예술이냐? '''충무공 갓순신 모함에도 가담했다고 한다. 연일 정씨들은 웁니다ㅠㅠ''' ㄴ[[이일]] 그 원균보다 더한 새끼가 주도한 모함 말하는 거구나. 왜냐 하면 정철 얘는 임진왜란 시작하고 얼마 못 가 죽었기 때문에 원균표 모함은 그가 죽은 이후의 일이다. 그러니 얘가 이순신을 모함하는 데 가담했다면 분명 이일표 모함이다. '''[[게이]]다.''' 임금의 엉덩이를 빠는데 도가 텄다. 웬만한 [[고딩]]들은 언어 영역 공부 하면서 정철의 시를 읽으면 알겠지만, [[헬반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후빨러]]임이 분명하다. 결론은 능력은 좆도 없으면서 아부만 존나 잘하고 성격도 더러우면서 욕심만 많았던,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히는 개씨팔 새끼다. 임진왜란 터지기 1년 전에는 왕세자 책봉 문제로 광해군 올리자고 동인의 이산해와 함께 건의하기로 했는데 이산해가 통수를 쳐서 정철 혼자서 건의하게 되는 일이 있었다. 덕분에 [[명천군|명천]]으로 유배, 3일 만에 [[진주시|진주]]로 이배(유배지 옮김)됐고 다시 3일 만에 [[강계군|강계]]로 이배되고 위리안치<ref>가시가 많은 탱자나무 같은 걸로 집을 둘러싸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형벌이다. 오늘날의 가택연금 같은 것.</ref>되었다. 그리고 왜란이 터질 때까지 강계에서 혹한기를 보냈다. 안 죽은 게 용하다. 임금밖에 모르던 바보 병신 정철 그립습니다 ㅠㅠ 임금 밖에 몰라서 선조와 같이 도망갔다. ㅋ 고니시나 가토가 죽여줬으면 했다. 솔직히... 시 역시 정철의 인생을 이해한다면 의외로 쉽다. 어차피 임금 후빨러라서 '좋은 거 = 임금'으로 해석하면 알아서 풀린다. 정철을 풍류 즐기면서 안분지족하는 고상한 선비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욕심만 많고 잔머리 굴리는 돼지 새끼였다. 위에서 서술하고 있듯이 선좆에게 구라를 까서 1000명 정도 저세상 보낸 건 물론이고 강원도지사(관찰사) 지낼 때는 수탈이 너무 심해서 강원도 백성들이 정철만 보면 죽여버리고 싶다고 치를 떨었다고 한다. 참고로 관동별곡 내용이 강원도지사로 임기 지낼 때 강원도 여행 다니는 내용이다. 요즘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어학원을 운영 중이라고 한다. ===죽음=== 전란 당시 명나라에 보고서를 올리는 사신으로 갔는데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611019_001 왜병이 모두 철수했다, 전쟁 끝!]'''이라는 어마어마한 구라를 치는 바람에 모든 관직에서 영구제명당했고 이후 강화도로 가서 살았는데 그것 때문에 백성들이 정철에게 밥을 안줘서 정철이 굶어뒤졌다. 향년 58세.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임진왜란]] 관련 업무를 하면서 장난을 친건 백성들의 관점에서 보면 극에 달하는 괘씸죄'''였다. 일단 동인들에게 개새끼라고 욕 먹었으니까 자연스럽게 작위를 잃었다. 근데 중립충 광해군답게 특별 배려로 1차적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훗날에는 서인(노론)이 차츰 집권하더니 참된 선비 같은 이미지가 쓰이더니 현재 그의 묘비는 충북 기념물로까지 제정되었다. ===위백에서=== {{극혐}} {{위백}} {{인용문|강원도·전라도<ref>호남의 동인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생긴 빈 자리는 서인으로 대신 채우게 되었고 결국 서인의 터로 자리매김한다. 정작 웃긴건 정철 본인도 전라도 출신임.</ref>·함경도의 관찰사를 지내면서 지방 장관으로서보다는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그의 천재적 재질을 나타낸 작품을 썼다.}} ㄴ 시 만 잘쓰면 뭐하냐 어차피 임금새끼 똥꼬빠는 시인데 임금새끼한테 시 쓸시간에 백성들이나 챙겨주시지. 읶백 보니까 어떤 씹새끼가 자꾸 이딴 식으로 정철 찬양하고 있다. 이런 새끼는 관동별곡 받아쓰기 시켜서 한 글자 틀릴 때마다 싸다구를 한 대씩 갈겨줘야 한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