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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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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원인 == [[파일:가브릴로 프린치프.jpg|350픽셀]] 만화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한장면 {{인용문|"황태자 전하!! 합병을 대국적으로 하십시오!!"|세르비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를 쏘면서}} {{인용문|"조피(황태자의 아내:귀천상혼이라서 황태자빈이 못됨), 조피 죽으면 안되오 아이들을 위해 살아주시오"|황태자, 사망직전 마지막 으로 한 말}} 참고로 위 인용문은 드립이겠지만 사실은 황태자는 민족문제를 해결하고자 오헝제국을 해체하고 오스트리아 합중국으로 재편하려는 개혁 구상을 한 개념인이다. 개념인이라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제국내 범 슬라브 민족주의 열풍이 사그라들것을 우려해서 제거하려 한것. 실재로 황태자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네놈때문에 망했다고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옥중에서 욕을 쳐먹었다고 한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가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인에게 암살당한다. 이 사건을 [[사라예보 사건]]이라고 부른다.총을 쏜 자는 당시 19세였던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 안 그래도 슬라브 놈들이 거슬렸던 게르만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때다 싶어 독일의 지원을 약속받고 세르비아를 짓밟으러 떠난다. 그 배경에는 사라예보 사건이 절대군주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백지수표 지원이 있었는데, 개인적 감정으로 외교정책을 결정한 이 행동이 결국 1차대전을 일어킨 거나 다름없다. 이처럼 빌헬름 2세는 1차대전 전에 참 병신같은 행동을 많이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하긴 그러니까 독일이 개털렸겠지. 그런데 사라예보 사건은 직접적인 원인일 뿐이지 사라예보 사건이 아니었어도 독영 군비경쟁, 오헝제국 내 소수민족 분쟁, 독일과 러시아의 민족주의 국뽕선동 등 이미 이루어지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은 반드시 일어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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