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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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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술 == ===서부전선=== {{발암}} {{인간도살자}} 서부전선에서는 중반~후기까지 참호전이 이루어진다. 참호전은 벙커짓고 들어가서 싸우는 전술이다. 참호는 포탄의 파편이 튀는걸 막기위해 지그재그로 설계되었으며 서로 상대방 참호를 포위하기 위해 빙빙 둘러 만들었다 결국 프랑스 북부랑 네덜란드 지방은 완전히 참호밭이되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서 전술을 보자면 1. 포탄을 쏟아붓는다. or 독가스로 씹창내기→ 2. 우라!!!! → 3.방어측 카운터로 패배 혹은 상대 참호 점거 → 4. 패배했을때는 1번으로 돌아가고 점령시에는 다음 참호를 1번으로 공격 결국 포탄 쏟고 병력갈아서 참호를 점령하는 방식이란것이다. 이런 전투가 대표적으로 벌어진게 뇌브사벨전투이다. 근데 아무리 힘들게 참호 점령해도 뺏기고 점령하고 뺏기고 점령하고 이게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반복됐다. 벼룩이나 구더기 등 온갖 해충이란 해충과 쥐들이 들끓었고 가뜩이나 비까지 내리는 날엔 바닥이 질퍽질퍽해지거나 꾸정물이 차오르는데 또 거기다가 시체와 인분까지 동동 떠다녔다고 한다. 적의 참호로 돌격, 침투했을 때 근접전도 빈번하게 벌어졌는데 이때 트렌치 나이프(trench knife)라고 단검 손잡이에 너클이 융합된 괴랄한 무기가 나오기도 했다. 존나게 무식한 전술이긴한데 서부전선 전체에 도로가 존나 잘 되어있어서 양측 둘 다 전선 전체에 보병을 콩나물 시루처럼 처박아놓았다. 참고로 전차는 1915년 프랑스에서 샤네다르 CA1을 만들었고(물론 실제로 투입된 최초의 전차는 영국의 Mk.1 전차 이다.) 비행기는 1899년부터 있었다. 헌데 저딴 전술을 전차 뜨기 전까지 아니 전차 떠도 썼다. 독일은 강습전술이라는걸 선보였는데 이건 기존의 방식에 조금 변화를 줘서 어차피 돌격 전에 포격해봤자 참호 안에 숨으면 무쓸모니까 + 적이 포격을 한다 = 곧 공격들어옴 →방어측에서 미리 준비. 이러면 공격하기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사전포격을 생략하고 돌격대라고 불리는 공격 제대는 꼭 필요한 장비 외에는 놓고 진격해서 기동성을 극대화한다라는 전법이다. 결국 이것도 1번을 뺀 기습 공격형태라 병력을 무쟈게 잃는다. 심지어 이것도 전쟁 다 끝날때 만든 전술이다. 반면 영국은 탄막전술이라 불리우는 걸 쓰는데 이건 공세 시작 전에 화포를 존나 끌고와서 특정지점에 포탄으로 막을 만들고 거기 바로 앞까지 보병 투입. 다시 탄막을 조금 더 앞 지점에 형성 그리고 보병 투입을 반복하는 전술이다. 대전 전에는 영국애들도 기껏해봐야 총 몇정 꼬나든 떼떼떼 거리는 아프리카 흑형들이나 창칼 들고 칭챙총 거리는 에이시안쉣들을 상대하기에 아주 적합한, 즉 대인살상력이 끝내주는 유산탄을 자주 썼기에 이번에도 그러겠거니 하고 똑같이 쏴제꼈지만 조그만 쇠구슬 수백개를 흩뿌려대는 유산탄은 사람은 찢어발기기에 충분하나 참호나 철조망 같은 구조물엔 좆도 쓸모가 없기에 별 효과가 없었고 멋모르고 포병이 다 조졌으니까 우리는 가서 깃발만 꼽으면 되겠지라 생각하고 걸어나간 보병들은 죄다 벌집핏자가 되버린거다. 이때부터 영국이 포병교리를 다시 정립해서 이 전술을 완성시키고 대전 내내 줄창 써먹었다. 근데 딱히 참신한 전술도 아니고 어느 나라나 할 법한 발상이기에 딱히 전선에 변화는 없었다. ===동부전선=== {{창렬}} 동부전선은 중반부터 진지전과 기병대 중심의 기병전이 이루어진다. 진지전은 강력한 요새형태의 진지를 구축하고 그곳에서 화력전을 펼치며 적을 제압해나가는 방식이다. 전술은 대강 이렇다. 1. 공세 → 밀림 → 진지로 박힘 → 방어 →재공세 → 상대팀 진지에 도착 → 공세 → 밀림 →진지로 박힘....이거나 상대팀 진지에서 공세가 성공하거나..뭐 이런 형태 참고로 동부전선은 서부전선에 비해 길었고, 도로사정이 존나 씹개판인지라 서부전선 마냥 병력이동이 한순간에 이뤄지는게 불가능했다. 근데 러시아 애들 무장과 훈련도가 쓰래기같아서 독일이 꾸역꾸역 열심히 밀어낸다 그리고 참호전이아니니 기병대가 보병대 양학하고 다녔다. 참고로 기병 병과 중 하나인 흉갑기병이 이때까지 남아있었다 결국 러시아가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모조리 끌어모아다가 오헝 제국에게 한방 제대로 먹이지만, 그에대한 반동으로 내부 불만이 폭발해 혁명 터지면서 동부 전선은 끝을 맡이한다. ===이탈리아 전선=== {{산잘알}} 이탈리아전선은 중~후반까지 산과 언덕을 끼고 주로 산악,고지전과 참호전이 벌어진다. 산악전은 산 중턱 혹은 정상쯤에 진지를 구축하고 공격자는 그 방어선을 열심히 산을 타며 돌파해야 한다. 혹은 고원을 점령하거나. 근데 이 산맥이 하필이면 알프스 산맥이라 공격자 방어자 할것없이 추위와 고산병에 시달렸다. 그래서 양측은 온갖 산악부대를 동원해서 해발 몇천미터에서 싸우는건 밥먹듯이 했었고 겨울쯤 되면 산 위쪽으로 갈수록 추운 기후와 칼바람 그리고 험한 지형에다가 얼음,눈때문에 지옥이 따로없었다. 따라서 전쟁이라기보단 생존싸움에 가까웠다. 전쟁 초기(1915년쯤)에는 이탈리아군이 영토 확보 야욕때문에 오헝제국에게 먼저 선빵을 날렸으나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산을 넘어 가야 했기 때문에 그를 이용한 오헝제국이 효율적인 후퇴전을 벌이면서 큰 피해를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는 끊임없이 온갖 부대를 동원하여 오헝제국이 방어선을 친 이손초 강을 뚫기 위해 11차례나 어택땅을 벌여 소모전을 걸었고 결국 오헝이 먼저 지치면서 뚫리는 각이 보이자 보다 못한 독일이 직접 캐리해 카포레토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을 개박살을 내놓고 전장을 베네토로 옮겨놓는다. 하지만 이탈리아도 카포레토에서 제대로 두들겨 맞고 정신차렸는지 그라파 산과 피아베 강에서 오헝군의 대공세를 막아냈고 결국 전쟁 막판 비토리오베네토에서 카포레토의 복수를 배로 갚아주면서 이탈리아가 승리한다. 전쟁 중에 보급도 문제였는데 광산의 점령과 높은 산에 있는 병사들에게 수월한 보급을 하기 위해서는 터널을 뚫어야만 했다. 근데 이 터널 만드는게 쉽지 않는데 만들다 산사태 혹은 낙사와 매몰등으로 공병들만 죽어나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는 무려 52개의 터널을 뚫는다. 미친놈들;; 이 터널들은 물자 보급과 통신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오헝제국이 나중에 공세를 할때 먹으려고 애썼던 곳이였다. ===아라비아 및 아프리카 전선=== {{인간도살자}} {{망함}} 아라비아에선 [[갈리폴리 전투]]에서 다 처말아먹은 영국군은 대규모 작전을 펼치지 않기로 했다. 그 후에도 계속 수에즈 운하를 지키고 있었기에 오스만 제국의 공격에 항상 주시했고 제일 쉬운 방법인 오스만 지배하에 있던 베두인족 및 아라비아를 선동하기 시작하려한 것이다. 이들은 독립열기에 휩쓸려 순식간에 예루살렘까지 점령하는 쾌거를 이루고 오스만제국이 박살난 후 지금의 중동 국경선을 이루는 전쟁이었고 참고할만한 작품은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있다. 아프리카는 동맹국과 연합군간의 식민지 점령전이 계속 이루어 졌다. 물론 이쪽 지역에도 제대로 된 철도망 같은게 있을 리 없으니 사막에서는 대규모 기병전이 펼처졌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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