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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감동}}{{혐오|혹부리를 데려온 [[이반 치스차코프|루스끼 곰탱이]]|조만식 슨상님}} 근데 소련군정이 들어서면서 인생이 막장으로 치달았다. 해방 직후에는 친구이자 조선공산당 평남지구 대장이었던 현준혁과 함께 조만식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건준) 평안남도 지부와 조선공산당에서 각각 16명의 위원을 선정하여 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현준혁이 백의사에 의해 살해를 당하고 소련군이 데려온 [[김일성|웬 병신]]이 갑자기 정권을 장악해나가더니, [[신탁통치 오보사건]]이 터지고서 반탁운동을 하기 위해 [[조선민주당]]을 창당하고 당 총재가 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소련 빽을 믿고 조만식을 가택연금을 시켜버리고 도청했다. 때문에 [[여운형]], [[이승만]] 같은 남한의 정치인들이 월남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사양하며 거부했다. 결국 1950년 김일성에게 죽임을 당했고 심지어 친일파라고 매도당했다. 여담으로 이 분이 현준혁과 함께 만든 평남 인민정치위원회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평남지부에서 준비위원으로 김병연, 노진설, 김광진, 지창규, 김동원, 한근조, 총무부장에는 이주연, 재무부장에는 박승환, 선전부장에는 한재덕, 산업부장에는 이종현, 지방부장에는 이윤영, 교육부장에는 홍기주, 섭외부장에는 정기수, 치안부장에는 최능진 등이 각각 선임되었다. 이 사람들 중에서 일부는 월남을 해서 정부 수립에 기여했다. 김일성이 죽였다는 설과 함께 소련으로 끌려가 굴라그에서 죽었다는 설도 있다. 이게 유력한 게, 굴라그는 상당히 혹독한 추위와 열악한 시설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당시 노인이었던 조만식이 거기서 버텼을지는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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