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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현실 == {{더러워}} {{극혐}} {{강제개행}} {{미개}} {{정화}} <div align=center> [[파일:조선 시대의 불편한 진실.png|800px]]</div> * 쪽본이 패망하자 백성들은 임시정부와 광복군 등 독립에 힘쓴 지식인들과 군인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러나 정작 '''조선 왕족은 한국 정부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했다.''' 이는 당시 백성의 여론이 조선 왕조에 대한 반감이 큰 것을 이유로, [[이승만]]이 민심을 받아들인 갓-정책이다. 다만 이후 [[박정희]]가 입국 금지를 풀었다고 한다. 그래도 임시정부 시절에는 조선 황실 우대 조항이 (일단은) 있었다고 한다. * [[고려]]가 만든 '작지만 강한 나라' 이미지를 전부 깎아먹었다. [[임진왜란]] 전까지 명나라는 조선하면 고구려와 고려의 이미지를 떠올렸지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일본쪽바리에게 신 나게 얻어맞자 그때부터 '조선은 참 문약한나라구나'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피해를 따지면, 조선은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다. 일단 엄청난 학살과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들 때문에 인구가 급감했고 전쟁의 주된 무대가 한반도였기 때문에 땅은 황폐화 되어서 농사가 매우 힘들어졌다. 수많은 문화재도 불탔는데 고려 실록은 전부, 조선 실록은 판본 1부 빼고 전부 불탔다. 이후에 [[경신대기근]]까지 겹치면서 국력은 지구 내핵을 향해 드릴을 뚫고 있었다. 명이나 일본도 역시 피해를 입었으나 조선에 견줄 바는 아니었다. 명나라가 망한 이유는 [[만력제]]의 병신짓과 대기근 때문이지 임진왜란 때문이 아니다. * [[1897년]]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을 세우고 대외명칭을 'Dai-han'(대한)으로 정하여 외국 선교사들을 통해 이를 널리 알리려고 했으나 듣보잡 취급 당하고 전부터 부르던 Korea로 불렀으며, 지금도 Republic of 'Korea'를 영문 국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 '''[[중국몽|명이 있어야 조선이 있는 법]]'''...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사실 조선에 매우 어울리는 말이다. 빵셔틀로서 고통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러워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 제임스 팔레란 한국학 미국 학자는 조선을 '노예제 국가'로 규정하며 조선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국민을 노예로 만든 유일한 나라'''라고 평가하였다. 이 평가에 대해 국사학자 아무도 태클을 걸지 못하다가 유일하게 반박한 사람이 있는데, 뉴라이트로 유명한 '''이영훈'''이다. 다만 서구의 Slave와 조선의 노비를 같게 볼 수 있는지는 아직 논란이 좀 있다. 이 사람은 남북전쟁 당시 미국도 노예제 사회로 봤다고 한다. * 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전혀 없었다. 물론 고구려처럼 국력은 ㅅㅌㅊ 수준이였지만 지나치게 이전인 과거사는 몰라도 조선은 근대국가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였는데도 듣보잡 취급이다. 그래서 국내 반크나 사이버외교사절단 등이 유튜브나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홍보하고 있지만 여전히 효과는 미지근하다. 애초에 문화력이 우수한 나라였다면 17~18세기의 일본처럼 서구에서 자포네스크라도 유행시켰을 텐데, 그냥 문화가 평범하니 해외에서도 안 알아준다는 게 지배적이다. * 사실 조선 왕조가 일본으로부터 나라만 지켰어도 군대 갈 확률이 적었을 거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징병제는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일본 경제재건의 아버지 김일성 씹새끼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 보통 군사력이 약하면 문화적으로 발달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대표적인 게 [[송나라]]) 조선은 [[한글]] 말고 문화적으로 융성했던 게 한 가지도 없었다. 『일동장유서』에서 조선 사신단이 일본의 수치 사용을 보고 조선은 수치를 다루는 방법조차 모른다며 한탄하였으며, 위생의 개념이 없어 목욕을 하지 않았고 길거리에 용변을 보는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실제로 일제에 먹혔을 당시와 일제 패망 직후 해방 당시에도 문맹률이 90%에 달할 정도로 백성들은 글자를 몰랐다. 오직 양반만이 글자를 쓸 수 있고 양반만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그것을 본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만들어준 글자가 바로 [[한글]]이다. * 조선 시대 옹호자들을 보면 이들이 마조히스트가 아닌가 의문을 품게 된다. 신 나게 두들겨 처맞고 문화력도 융성하지 못했으며, 세계적으로도 변방으로 취급된 나라가 뭐가 좋아서 빠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꼭 마조히스트적인 면만 있어서 빠는 것만은 아닌데, 국내에 전주 이씨나 여흥 민씨, 안동 김씨 같은 조선 시대 이름 있는 명문세가 후손(이마저도 매관매직이지만)이 수백만에 이르기 때문에, '''자기 조상뽕'''에 맞아 빠는 경우도 많다. 족보 자랑 하는 놈들은 죄다 자기 족보 말고 자랑할 게 하나도 없는 병신들이니 그러려니 해라. * 보통 국까 카테고리는 역센징 일뽕만이 들락거리는데, 조선 왕조 카테고리는 역센징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일반인도 '''병신 같은 나라'''라고 기여하고 가는 유일한 문서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북한|휴전선 이북의 모 불법단체]]조차도 조선이란 이름을 계승했다고 자뻑하면서도 조선시대를 극혐하며 맹비난을 퍼붓는다 그래서 북괴에서 조선시대를 가르칠 땐 이조(李朝)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근데 어차피 지금 지들의 모습도 조선시대 그 이하이자 하위호환인 모습인데 결국 누워서 침뱉기 아닌가? * 한국 여성들이 제일 극혐하는 역사다. 대다수의 조선 혐오 증상은 한국 여성들에게서 발원되며, 대표적으로 성리학의 산물인 '''남존여비''', '''현모양처''', '''사농공상''', '''군인 푸대접'''(문과 중시, 무과 천시) 등이 대표적이다. 시집 가면 시어머니가 갈구는 풍습도 조선 남존여비-현모양처 단계를 타면서 깊숙이 뿌리내린 악습이다. 반면에 한국 여성들이 제일 호감으로 여기는 역사는 [[고려]]다. 아휴 진짜... 요즘 일부 여자들 무고 무섭다. 아니... 세모자 사건이나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을 보면 벌써 1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씨발 정말 전국적으로 [[남녀칠세부동석]]이라도 시행해야 하나? * 웬만하면 모든 한국 역사를 날조해서 [[미국]]으로 만들어버리는 [[환빠]]들도 혐오하는 나라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 환빠들은 조선이 아예 반도에 있지 않고 아메리카에 있었다는 '아메리카대조선'이라는 설을 퍼뜨리고 있다. * [[일본]], [[대만]], [[중화인민공화국]] 등 인접 국가 모두가 만만한 약소국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1800년대 이후에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도 조선을 만만하게 봤다. 한 나라도 아니고 여러 나라가 다 병신으로 본다면 그것은 상대가 우릴 비하하려 왜곡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업보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짱깨 새끼들은 청나라 시절 생각하면서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도 있다고 봐야한다. * 매년 미스코리아 같은 대회를 창설해 전국 8도에서 가장 이쁜 여자들을 뽑아 명나라에 처녀로 조공했다. 다만 처녀 조공은 세종 시기에 폐지되었다고 함. 세종이 너무한거 아니냐고 존나게 싹싹 빌어서 폐지함 ㅇㅇ * '''국가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서 백성이 나라를 지킨 유일한 나라'''다. 대표적인 게 임진왜란이다. [[고종]]은 아예 생판 다른 나라인 러시아 공사관으로 튀는 [[아관파천|기행]]을 보여줘서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에게 빅-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 '''국가가 다른 나라 군대를 불러서 자국민을 학살한 유일한 나라'''다. (1894년 9월) 제2차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고종은 이를 제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제1차 농민 봉기 (동년 3월) 때 전주성을 동학농민군에게 점령당했던 트라우마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10년 전 갑신정변 때 맺었던 톈진조약 핑계로 청군과 같이 한반도에 들어왔고 수많은 의병을 학살했다. 어찌 보면 청일전쟁의 실질적인 원흉이 바로 고좆이다. * '''국가가 자국민의 절반을 노비로 부린 유일한 나라'''다. 전 국민의 40%가 노비였다. 40% 노비의 대다수는 전쟁 포로가 아니고 자국민이었다. 다만 정석 노비로 부리면 세금 낼 놈들이 없어지니까, 봉급도 주고 땅도 빌려주는 일종의 노동자 개념으로 부렸다. 몰론 [[공무원|공노비]] 한정으로 [[좆소기업|사노비]]는 그냥 노예 그 자체였을 뿐이다. * 부민고소금지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백성들이 왕에게 상소문을 올리지 못하게 하였다. 오늘날로 치면 멀쩡하게 돌아가던 청와대 국민청원을 뜬금없이 섭종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 자국 역사 왜곡에 가장 앞장선 나라다. 정통성을 위해 고려사를 일정 부분 훼손 시도했는데, 세종과 정조가 이것을 금하여 그나마 〈고려사절요〉 같은 사서가 남게 되었다. 또한 발해를 '북적' 취급해서 고구려와 조선을 별개의 역사로 봤을 뿐만 아니라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기자조선'을 정통성으로 보았다. 현대 우리가 '단군조선'을 정통성으로 보는 것은 환빠 역사학자들이 그나마 조선의 악습 사관을 개선한 유일한 공으로(유일하게 환빠를 좋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은 '소중화 사상'을 외치며 중국인과 혈육적으로도 내선일체하려고 노력하였다. * 짱개, 쪽본 놈들도 조선이란 단어가 욕인 걸 아는지 서로 '서조선'(물론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북한이긴 하지만 어쨌든 짱깨국 내에서는 공산당 비판을 대놓고 하다가는 공안이 마라탕을 배달하러 오므로 잘 사는 것만 빼면 북한이랑 다를 게 없다고 돌려까는 의미로 쓰인다), '동조선' 거리면서 자국을 깎아내리는데 조선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 [[헬조선]] 단어의 아버지이다. 사실 헬조선이라는 것은 현대 대한민국의 단점이 조선 시대의 그 비참한 역사와 동질감을 형성한다고 생각하는 시각에서 온 비하 용어로, 결국은 조선의 병신 이미지를 한국 사회에 덮어씌우는 것이다. 물론 헬조선 이론에 일제강점기가 큰 영향을 주긴 했지만 일제강점기는 막타였고 1800년대 이후부터 내부에서 썩어간 나라가 조선이였다고 말해도 틀린건 아니다. * 나라가 너무 썩어문드러져 망해가던 시기인 개화기때 이것저것 개혁을 시도하려했으나 왕 자체가 유교탈레반 꼰대 틀딱이었고 뭐 좀 하려고하면 늘 왕의 헛기침 한방에 엎어져버렸다. 그나마 왕을 견제할 수 있었던 [[양반]]새끼들도 뭐 좀 하려고 들면 [[유교]]에 반하는 행위 운운하면서 단체로 반대했었다.<ref>실제로 한국사에서 종종 양반층이 단체로 왕한테 개기던 적이 몇 번 있었을 정도로 양반도 무시 못 할 권력계층이었다. 당장 그 유명한 안동 김씨가문도 이씨왕조한테 개길수 있을만큼 힘이 강했다.</ref> 반면에 당시 일본은 지금처럼 왕이 내각에다 통치권한을 신하들에게 위임하고 아무것도 안 했기 때문에 일본의 상징으로서 남아 있다. 그래서 개혁이 쉽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개화파]]들을 [[친일파]]로 흑화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그 후 [[한일합방]]이 일어났다. * 조선 말기에는 신분을 사고 파는 일까지 일어났다. 양반이 스스로 양반 직위를 포기해서 백성에게 매매하는거다 당연 백성은 나도 양반좀 되어보자며 좋다고 사들였다 이런 일은 나라가 망했을때 부자들이 빨리 현금화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개족보가 이때 나왔고 현시대에 뼈대있는 양반가문이라고 자뻑하는 가족들은 이때 양반 족보를 산게 아닌지 의심해봐야된다. * 한민족 역사속의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영토 전체가 외세의 '''직접통치로''' 넘어간 나라다. 고려시대에도 원 간섭기였지 언어를 지키려는 세력이 탄압받고 고려의 부유층이 원나라의 말단 공무원의 눈치를 보는 수준은 아니였다. 한민족 전성기라면 나름 전성기인 삼국시대 역시나 신라의 통수질로 만주땅 잃었지만 당나라와 당당히 싸워서 이기고 통일신라까지는 일본이 함부로 깝치지 못했다. === 어쩌다가 나라가 병신이 되었는가? ===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나라의 근간을 잘못 잡은 탓이 크다. 조선은 성리학을(조선 건국 당시에는 성리학이 최신학문이었다) 국가 이념으로 삼고, 유교 이상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인 국가였다. 그래서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는 것을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삼았고, 대대로 세금을 굉장히 적게 걷는 편이었다. 엥? 좋은 거 아니야?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국가가 제대로 안 돌아갈 정도로 세금을 안 걷으니까 문제지. 세금을 너무 적게 걷으니까 왕 앞마당인 서울은 몰라도 지방쪽에는 예산이 당연히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지방 지주인 향리층의 부정부패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백성들의 부담이 커지는 역효과를 낳게 되었다. 한국사를 조금만 봐도 알겠지만, 조선은 불과 개국 100년 후 쯤인 중종때 부터 방납의 폐단이니 뭐니 하며 수취제도의 부패로 민생이 어지러워진다. 조정이 이걸 해결하려고 내놓은 방법이 주구장창 세율을 낮추는 거였는데, '높은 세율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그러면 세금을 줄이면 되겠네!' 라는 1차원적인 발상에만 머문 것이다. 실제로 세율을 아무리 줄여도, 근본적인 것에는 손을 대지 못했기 때문에 지방 관리들의 수탈은 그대로였고, 조선의 이런 개혁정책은 대대로 삽질의 연속이었다. 이런 경제를 고려하지 않은 국가관 때문에 국가 재정이 만성적으로 가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중국 바로 옆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고려 때부터 대대로 익혀둔 체계적인 정치구조와 관료제 덕에 처음에는 그냥저냥 잘 굴러갔지만, 아무리 늦게 쳐줘도 연산군 때부터는 포텐이 다 바닥났다. 여기에 국가관에서 성리학만을 제일로 여기고, 정말 이걸 종교처럼 맹신하는 폐쇄적인 모습 때문에 내부적으로 곪아있는 나라가 외부와의 접촉도 안 되면서 북한처럼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해버렸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로 안 그래도 이미 중국에서는 한물 간 학풍이었던 성리학을 조선은 오로지 사대부들의 정신승리를 위해서 더욱 교조화되었고, 외국과의 교류로 문물이 실시간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던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조선은 어떻게든 무시하면서 입으로 쑤셔넣어지는 신문물과 시대의 변화마저도 온 몸으로 거부한 병신성을 보여주었다. 결국 거지인데다가 폐쇄적인 사회였다는 것=국가 전체가 수백년간 고인물로 남아있었다는 점이 조선의 병신성을 99%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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