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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가 나라가 병신이 되었는가? ===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나라의 근간을 잘못 잡은 탓이 크다. 조선은 성리학을(조선 건국 당시에는 성리학이 최신학문이었다) 국가 이념으로 삼고, 유교 이상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인 국가였다. 그래서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는 것을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삼았고, 대대로 세금을 굉장히 적게 걷는 편이었다. 엥? 좋은 거 아니야?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국가가 제대로 안 돌아갈 정도로 세금을 안 걷으니까 문제지. 세금을 너무 적게 걷으니까 왕 앞마당인 서울은 몰라도 지방쪽에는 예산이 당연히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지방 지주인 향리층의 부정부패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백성들의 부담이 커지는 역효과를 낳게 되었다. 한국사를 조금만 봐도 알겠지만, 조선은 불과 개국 100년 후 쯤인 중종때 부터 방납의 폐단이니 뭐니 하며 수취제도의 부패로 민생이 어지러워진다. 조정이 이걸 해결하려고 내놓은 방법이 주구장창 세율을 낮추는 거였는데, '높은 세율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그러면 세금을 줄이면 되겠네!' 라는 1차원적인 발상에만 머문 것이다. 실제로 세율을 아무리 줄여도, 근본적인 것에는 손을 대지 못했기 때문에 지방 관리들의 수탈은 그대로였고, 조선의 이런 개혁정책은 대대로 삽질의 연속이었다. 이런 경제를 고려하지 않은 국가관 때문에 국가 재정이 만성적으로 가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중국 바로 옆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고려 때부터 대대로 익혀둔 체계적인 정치구조와 관료제 덕에 처음에는 그냥저냥 잘 굴러갔지만, 아무리 늦게 쳐줘도 연산군 때부터는 포텐이 다 바닥났다. 여기에 국가관에서 성리학만을 제일로 여기고, 정말 이걸 종교처럼 맹신하는 폐쇄적인 모습 때문에 내부적으로 곪아있는 나라가 외부와의 접촉도 안 되면서 북한처럼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해버렸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로 안 그래도 이미 중국에서는 한물 간 학풍이었던 성리학을 조선은 오로지 사대부들의 정신승리를 위해서 더욱 교조화되었고, 외국과의 교류로 문물이 실시간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던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조선은 어떻게든 무시하면서 입으로 쑤셔넣어지는 신문물과 시대의 변화마저도 온 몸으로 거부한 병신성을 보여주었다. 결국 거지인데다가 폐쇄적인 사회였다는 것=국가 전체가 수백년간 고인물로 남아있었다는 점이 조선의 병신성을 99%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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