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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 ==== 조선에서 내릴 수 있는 법정 최고형벌, 전근대 시대임에도 인권의식이란게 눈꼽만큼은 있었던 조선이었기에 앵간해선 사형이 떨어지지 않았다. 생살여탈권이 왕한테만 있는 조선에선,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지방의 수령들이 서류를 올려보내 왕의 재가를 받아야만 이루어졌는데, 당연히 세월내월 걸리다 보니 많은 범죄자들이 감옥 안에서 병걸려 죽어버림... 엥? 당파싸움에선 잘만 처죽이지 안음? 이라고 생각할수 있을텐데 그 앵간치 안은 일이 바로 역모라서 그렇다. 전제왕조인 조선에서 역모뜨면 걍 인권이고 나발이다... 사형은 위에서 나와있듯 역모죄와 패륜범죄, 살인죄 에 한해서 내려진다. 이웃나라 중국, 일본을 비롯해 동시대 지구상의 대부분의 국가들과 비교할시 조선인의 극형률은 상당히 완화된 수준이라 볼만하다.(유교 근본주의의 순기능인듯) 중국은 말할것도 없고(사실 중화권 자체가 형벌이 매우 강하다. 타이완조차도 흉악범은 사형을 집행하며, 대만 4세 여아 참수 사건의 범인처럼 종신형으로 감형한 게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욕하는 나라다), 조선통신사 기록을 보면 일본은 정말 가벼운 죄에도 밥먹듯 효수형을 남발했으니... ===== 요참형 ===== 허리를 끊어 죽이는 것이다. 한신이 여태후한테 이걸 당한걸로 유명하다. 존나 서서히 죽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조선에선 시행되지 않았다.''' ===== 팽형 ===== 삶아죽이거나 기름에 튀겨 죽이는 것이다. 탐관오리에 한해서 자결과 팽형 두가지 선택지를 줘서 후자를 선택하면 빈 솥에 들어갔다 나오는 쇼를 한뒤 죽은 사람으로 가정해 살아있는 귀신 취급하면서 모두가 그사람을 영영 왕따시키고 쌩까는 형벌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조선에선 시행되지 않았다. ''' ===== 교수형 ===== 도적등 일반범들에게 주로 집행했다. 목아지 매다는 그거 맞다. ===== 참수형 ===== 목아지 댕겅시키는 그것이다. 사극에서 칼춤추시는 그 망나니 아재들이 집행했다. 주로 역모죄인, 살인범, 군인들에게 집행되었다. 군인의 집행은 도부수란 보직에 있는 자가 시행했다고 한다. 하는 법은 사극처럼 걍 막자르는게 아니라 일정한 규칙이 있었는데 일단 얼굴에 허연 가루를 발라 이 새끼 사형수래요 라고 표시한뒤 조리돌림 한판 한후 뒷짐 결박을 시키고 목아지를 평평한 나무도막에 올려놓고 귀에 화살을 꿰어 놓는다. 이건 좀 독특하다. 그리고 상투끝을 도르레 달린 장대에 묶어서 잘리자 마자 바로 올라가서 효수되도록 장치하고 망나니 칼이 아니라 창에 가까운 언월도로 내려친다. 이때 망나니가 서툴거나 지나치게 술에 취하면 엉뚱한데를 찍기 때문에 사람이 받을게 못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망나니 입장에서도 직업이긴 해도 맨정신으로 사람죽이기 힘들어서 만취한경우가 많아서... 그래서 가족들은 뇌물을 줘서 한방에 죽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한다. ===== 사사 ===== 임금께서 하사하시는 약, 사약을 먹여 죽이는 그거 맞다. 유배갔다가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며 임금님이 친히 내리시는 약. 이 테크를 탄 사람으로 조광조, 송시열 이 유명하다. 신 러시아 제국엔 홍차가 있다면 조선엔 이것이 있었다. 단 조선쪽은 암살이 아니라 어엿한 정규 형벌이다. 신체보존을 효의 시작으로 보는 씹선비의 나라답게 양반들에게 주로 실시되었다. 양반이 아니라면? 위에 써있든 민간인 절도범은 교형, 살인자 군인은 참수형. 재료는 짐새 깃털로 담근 술 어쩌고 하는데(여태후가 즐겨 섰다.) 이미 조선때엔 짐새는 중국에서도 씨가 말랐기에 걍 독극물인 비상(비소)을넣어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짐새도 말이 짐새지 씨발 저런 새가 있을리가 있나? 그냥 여태후가 자기가 주로 쓰는 독 까발려지는게 싫어서 (해독제라도 나오면 좆되니깐) 둘러댄게 짐새독이다. 하여간 사약은 제조법에 대한 보안이 어찌나 5백년간 철동같았던지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재료는 아는데 그걸 어떻게 얼마만큼 넣고 어떻게 조제해서 먹는지 현대엔 모른다고 한다. 일단 이것도 임금께서 주시는 약이라 당근 의관을 갖추고 임금이 계신곳에 명예롭게 죽여주셔서, 마지막까지 성은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라면서 절을 해야 한다. 이것도 약은 약이라 조선 명종때의 권신이었던 김안로는 쓰다고 밤을 달라고 해서 먹고 죽었다고 한다. 숙종때 대 정치가이자 거유 우암 송시열은 한잔 퍼먹어도 아무 이상없는데? 라고 해서 한잔 더 먹이고 어때요? 라고 물어보니 별로..?라고 해서 사형 담당자를 애간장 타게 만들었다고 한다. 어떻게든 오늘안으로 안죽으면 가져온 사약이 동나기 때문이다...결국 세잔먹고 죽었다고 한다. 근데 이양반 평소에도 비상이 엄청 들어간 정적이 보내준 약먹고도 멀쩡하게 살아남았고 병도 나았다는거 보니 비상자체에 내성이 있었던 듯하다. 근데 저렇게 사약다 먹고도 안죽으면 그땐 야 신난다 형집행 정지가 아니라 그날안으로 자결해서 끝장을 봐야했다. 한약이 다 그렇듯이 이것도 약은 약인지라 체질이나 그날 컨디션, 혹은 다릴때 뭘 잘못 다렸는지 한두 사발로 끝장이 안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장희빈 마냥 사약마시길 거부하면 억지로 퍼먹이는게 아니라 목졸라 죽여버렸기 때문에 사실상 교형이다. 송시열의 경우가 특이 케이스인데 야당의 영수이시자 대 유학자이며 80먹은 정치판에서도 구를때로 구른 정객이라 반대파들도 마지막 가는길 배려차원으로 선배님 목졸리는것만은 면하게 해주려고 저런 특혜를 인정해 주었던것이다. ===== 능지처사 ===== 능지형, 능지처참의 그 능지처사다. 능지란 낮은 언덕이란 뜻으로 낮은 언덕에 오르듯 서서히 고통도 그렇게 줘서 죽인다는 의미다. 중국이 오랑캐에게 점령당하면서 오랑캐의 형별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 시행국가는 오랑캐 왕조인 요나라였다. 북방 오랑캐 왕조는 피를 보는것을 전통적으로 기피하여 죽여도 교형정도로 그치는데 사람을 포를 뜬다는것은 엄청난 형벌로서 영혼까지 발기발기 찢어 죽이겠단 의미의 최고 극형이었다. 이때문에 황족을 살해했거나 대를 이을 아들을 살해하여 그 집안의 대를 끊어버리거나 3명이상을 살해한 패륜범죄자등 사회적으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만 집행되었다. 그리고 요나라와 금,원나라까지 이어지다 정통 한족왕조인 명나라로 넘어와서도 시행되었다. 근데 문제는 이것은 명의 헌법이라고 할수 있는 대명률에 기록되지 않은 형벌이다. 그러나 신하를 너무나 사랑하신 주원장께서 친히 이것을 내려주셨다고 한다. 근데 문제는 주원장 께서 이거보다 더 센거도 많이 내렸다고 하는데... 명나라 말기 명장 원숭환이 이것을 당한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명나라가 망하고 청 말기까지 존속되어 중화민국 초까지도 집행되었고 이게 마지막이었다. 이형벌은 인간을 산채로 수천조각 포를 뜨고 회를 뜨는것이다. 능숙한 집행관은 도합 6000번까지도 칼질을 했다고 한다. 방법은 신체 말단부터 조급씩 예리한 면도칼 같은 전용 집행도구로 살을 발라내 마지막엔 뼈와 장기가 드러날때까지 칼질하며, 사형수가 도중에 사망하면 집행관이 사형에 처해진다. 그덕에 마취약으로 아편을 먹이기도 했다. 최후는 갈비뼈를 도끼로 부순뒤 심장을 칼로 찔러 마무리했다. 그나마도 청나라땐 너무 잔인하다고 2000번을 한계로 정했고 평상시엔 3번만에 목을 치도록 하기도 했다. '''조선에선 너무 잔인하여 형벌로 집행되지도 법제화 되지도 않았으나''' 연산군때 목숨걸고 직언을 하였다는 내시 김처선에에게 한정해서 딱 한번 시행된적이 있다고 한다. :형벌이라기보다 그냥 사이코패스한테 살해당한 피해자1로 해라 ::연산군이 즉흥적으로 칼들고 자른거라 형벌이라 하긴 미묘하다, 술먹고 당한거라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듯 능지처참이라고 흔히 나오는 것은 거열형이다. ===== 거열형 ===== 이게 흔히 말하는 능지처참이다. 능지형에 비하면 심플하게 팔다리목아지 사지만 뜯고 치우는 형벌인데 사람이 아니라 소를 이용해 5방향에서 찢어버리는 것이다. 근데 이것도 '''너무 잔인하다고 하여 대부분 교형하고 나서 뒷풀이로 실시'''했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당한 인물 중 세종대왕 치세 때 강상인이 있다. 상왕이던 태종의 속을 읽지못한게 이유다, 문제는 알쏭달쏭한 문제로 테스트친 후 우디르급 변환으로 역적으로 물으니,어벙벙해진 무인 강상인은 자백하지 않으려 빠따질을 제법 견뎌낼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조선초기는 사약마저 잘 주지않고 역모는 걍 최소 참수형감이다)끝내 거열을 당하고 거열직전 "난 죄가 없는데 매를 이기지 못해 죽는다!!" 외치며 사지가 잘라나와서 죽게된다 ===== 부관참시 ===== 죽은자의 죄를 물어 시신에다 고인드립에 그치지 않고 물리적 능욕을 가하는 것이다. 무덤은 파헤치고 관은 빠개고 뼈는 부스러뜨려 흩어버린다. 유교 탈레반으로 시신마저도 조상님이 주신 몸뚱이라며 애지중지 하는 조선으로선 줄수있는 최고의 고인드립이었다. 하지만 정육점 상한고기에 죄를 묻는것과 비슷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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