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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공 관련 논쟁 == {{병림픽}} {{병쟁}} 조선이 중국에게 조공을 바쳤다는건 부정할 수 없다. 이제와서 보면 좀 부끄러울 수 있지만, 중국이라는 강대국을 상대로는 적당히 꼬리 흔들어줘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삼국시대부터 그랬던 어쩔 수 없는 생존전략으로 이해해야지. 여하튼 당시 조선 내부에서 조공&사대에 대한 태도는 시대마다 다르다. 적어도 관학파가 주도하던 조선 초기는 '씁 어쩔 수 없지' 수준이었지만, 진심으로 중국을 떠받들던 사림이 주도하는 조선중기로 들어서면서 정말로 간 쓸개 다 대주는 태도로 변하게 된다. 이런 사림애들도 정작 청에게 개털리고 청에게 조공하게 되자 속으로는 존나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바친다는 티를 팍팍 냈지만, 현실을 점차 깨닫게 되는 조선 후기로 가면 이제 그러려니 하는 수준으로 생각하는 걸 그만두게 된다. 여하튼 가면 갈수록 열화되는 걸 알 수 있다. 국뽕들의 조공 무역 관련한 주장들은 일반적으로 조공 개념을 부끄러워 하는 한국인들의 변명섞인 주장일뿐이다. 실제로 말 가격이 세종때와 태종때의 기록으로 동시기의 기록이 아니며 조선이 명나라에 조공으로 바치던 말수량에는 턱없이도 못미치는 수량이었다. 특히 명나라는 당시 여진족과의 무역이 조선보다 훨씬 활발했는데 그러한 여진을 놔두고 조선에게서 훨씬 비싸게 말을 구매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말 관련 조공으로 이익 봤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 역시 존재하는데 실제로 가격을 비교하려면 동일시기의 가격을 비교해야하는데 비교하는 말 가격이 세종때와 태종때의 기록으로 동시기의 기록이 아니며 조선이 명나라에 조공으로 바치던 말수량에는 턱없이도 못미치는 수량이었다. 특히 명나라는 당시 여진족과의 무역이 조선보다 훨씬 활발했는데(누르하치가 큰 힘을 얻게 된것도 아버지의 죽음값으로 명나라 무역권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여진을 놔두고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조선에게서 훨씬 비싸게 말을 구매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조공 무역으로 큰 이익을 얻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시기가 다른 내용의 기록을 무리하게 엮어서 지나친 민족주의 사관적 관점으로 풀어낸 주장이라고 지적 하는 의견도 있다. 조선이 명에게 조공을 함으로 '이득을 보았다'라는 말은 사실이나 '물질적 이득'을 보았다라는 것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임진왜란때의 명나라의 지원과 같이 명을 상국으로 삼고 조공을 보냄으로써 명으로 부터 조선이 자주국임을 보장받고 타국의 침략으로 부터 지원 받을수있다는 이점은 있으나 흔히 인터넷에서 떠도는 하나를 주면 3~4배를 돌려받는다는'물질적 이득'을 본다는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역사 기록에도 조공을 바치는 내용물과 횟수가 명으로 부터 하사를 받은 내용물과 횟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예를 드는 내용도 조선과는 전혀 상관없는 중국 왕조와 타 국가와의 예들 뿐이며 실제 조선에 사신으로 오는 명나라 사신들은 태감들로써 입찰을 가장 많이한 태감들로 선정되는데 이러한 태감들은 입찰비 이상을 조선으로 부터 뽑아내기 위해 많은 내용물을 조선으로부터 조공 받아갔다. 하지만 명나라 조공에 관한 조선의 '1년 3사'명의 '3년 1 사'를 바탕으로 조공이 조선에 '꿀조공'이니 '물질적 이익'이 있었다고 결론내리는건 억측에 불과하다고말 할수 있다.일단 조선이 주장하는'1년3사'때의 1회 조공의 량 명이 주장하는'3년1사'때의 1회 조공의 량과 같다는 내용이 없으며 실제 역사 기록에 조공으로 힘들어 하는 기록은 있어도 조공을 통해 하사품을 받는다고 좋아하는 기록은 찾아볼수가 없으며 실제로 조공을 하는 횟수와 조공의 량에 대한 기록이 명나라로부터 하사품을 받은 량과 횟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면 그 이상의 하사품을 받는 다는 소위 말하는 '꿀조공'이 사실이라면 조공에 관하여 부담스러울 이유가 조선입장에서는 전혀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에는 명나라의 조공에 대한 부담감에 관한 기록을 여러곳에서 찾아볼수가 있다 또한 명나라에서 가져왔다는 조선에서 구하기 힘든 희귀물품의 대부분은 조선사신이 명나라에 조공을 하러 간김에 명나라에가서 구매를 해서 가져온 물품이 대부분이다. 과거 명나라에 조공을 했다는 내용을 부끄러워하여 이런식으로 조공에 관하여 은근슬쩍 왜곡과 날조를 하는 내용들이 사실인양 인터넷 공간에서 떠돌고 있는데 역사적 사실이 부끄럽다고 왜곡 날조하는것이야말로 부끄러운일임을 "꿀조공"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직시해야할 것이다 참고로 나무 위키에서는 위 조공 무역 내용에 대해서 일괄 삭제하는 병신 짓을 저질렀다. 이쯤되면 역사를 믿는건지 판타지를 믿고 싶어하는건지 모를 수준이다. 나무 위키에서 특히 국사 관련 편은 절대 믿지 말아야 한다. 국뽕 몇명이서 죽치고 있으면서 자기들 맘에 안드는 유저 나타나면 돌림빵해서 날려보냄. 그나마 중기 들면 명나라도 길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부담을 줄여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임란 이후 [[광해군]]이 뜯긴 거 보면 장난 아니다. 후에 청나라한테 처발리고 뜯긴 것도 장난 아니다. ← 이건 솔직히 [[인조]] 새끼의 삽질 때문이지 조공으로 이득 본 건 정말 잠깐이고 나머진 그냥 삥뜯겼다고 보면 된다. [[국뽕]]새끼들은 현실을 무시한다. 명나라의 영락제-선통제 이후부터는 삥뜯긴건 오히려 중국 측이다. 조공을 무슨 힘 센 나라가 약한나라 쥐어 박는걸로 착각하나 보다. 조공으로 준 것보다 반대급부로 더 많이 받았다. 괜히 조공 뒤에 무역을 붙히는게 아니다. 이전시대인 고려시대에는 송나라를 상대로 조공을 빙자한 삥뜯기 하시었다. 당시 이런 현실을 본 [[소식(시인)|소동파]]는 "맥적이 들어와 조공하는 것은 터럭의 이득도 없고, 다섯가지 손해만 있습니다."라 한탄하였다 쿠데타로 등극한 조선왕조 또한 이런 이득을 알고 명나라에 3년에 한번오라는걸 굳이 1년에 3번 오겠다고 하자, 거의 외교 단절 수준까지 간적도 있었다. 만약 조선이 손해를 보았다면 미쳤다고 조공 많이 하겠다고 하려고도 안했을 것이다. 게다가 조선으로서는 조공무역으로 중국의 기술을 뒷주머니로 빼돌릴 수도 있었다. 만약 명나라가 조공으로 조선을 뜯어먹던게 사실이라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조공을 하라고 요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가 오히려 필사적으로 주변국들에게 조공횟수를 '몇 해에 한번' 씩으로 제한한 걸 보면 무작정 중국이 삥뜯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몽골때문에 말을 제때제때 급하게 얻어야 해서 비용을 먼저 지급하고 말은 나중에 받아갔으니까 이득은 더 큼 게다가 같이 따라간 사무역 상인들도 말 열필에 인삼 가득 실어 가지고, 중국 건너가서 비단이랑 기름진 말 40필로 바꾸고 들어옴. 필수품 부분에서도 당연히 이득. 요즘으로 치면 러시아산 무기 가지고 미국한테 바가지 씌워서 팔아치우는 꼴. 퍽이나 이득이니 조선이 1년에 3번 조공한다고 생난리를 피우지. :이건 또 뭔 헛소리야. 조선 군마 역시 조선 토종말 질이 병신같아서 여진족한테서 구해썼구만. 본인이 급한데 상국이 요구하니 바치는 클라스 캬. 여기까지 좆문가 목록이고 결과적으로 따지자면 이득 본 때도 있고 손실 본 때도 있으나 어쨋건 '조선 윗대가리들은' 이득이라고 생각했기에 조공을 계속한거다 보통 조공으로 가는 물품은 말이나 인삼같은 특산물이고 오는 물품은 사치품이나 예술품 서적 등등인지라 조선 금수저들은 천민들 특산품 가거나 말거나 자기네 사치부릴 수 있는게 들어오니 좋아라하고 조공했다 가격만으로 따져보면 보통 손해를 좀 많이 본 편이나 금수저들은 사치품 들어오기에 우리 이득봤다고 생각해서 계속 조공했다. 물론 백성들은 자기 딸을 조공으로 바쳐야 하는 괴로움에 몸서리를 쳤다. 역사씹덕후새끼들이 경제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헛소리들을 많이 썻는데 조공무역의 핵심은 북경의 시장을 이용하는데 있었다. 조선왕조가 초반에는 정통성도 부족하고 그래서 명으로 부터 상당히 삥도 많이 뜯기고 처녀도 바치고 그랬지만 후반으로 가면 이런 상납의 형태보다는 역관+상인들의 무역행태가 주를 이룸. 조천일기같은거보면 잘나와있는데 실제 명의 황제가 하사하는 물건은 비단 몇필+식량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중간에 삥뜯는게 많아서 사신단이 굶는일도 발생함. 대신 밑에 애들이 가지고간 조선의 토산물이 북경에서 잘팔려서 이득이 남았음. 이런 무역형태는 당시 일본,베트남은 물론 유럽국가들도 포함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우리가 미국의 똥꼬를 빨아주고 그 댓가로 미국의 거대한 시장을 이용한거와 비슷하도 보면 된다. 이런 국제교역은 비교우위가 나타나기 때문에 누군 손해고 누군 이익이다 할수없다. 물론 어린 처녀들을 정액받이로 바치는 것과 미국 시장에 접근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물질말고 의학,미술,건축을 명에서 가르쳐주는 경우가 많았다. 한의학 관련자들은 모두 알《본초강목 》도 명 태조의 친척이 지은 책이다 참고로 청, 일본 같은 오랑캐 성님들은 준 것도 없이 좆같게 존나게도 뜯어갔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1&cp_code=cp0301&index_id=cp03010473&content_id=cp030104730001] 10배 이상 이익을 보신 만주족 성님들. 일본도 도자기, 은광 개발 등 ㅆㅅㅌㅊ로 이익 존나 보고 조선에 준 건 거의 없었다. 가끔 왜구 보내서 지나가는 배를 털거나 조선땅에 놀러와서 약탈을 저지르는 등 오히려 피해를 많이 줬다. 당연히 조선 후기 국력은 손해를 존나 봐서 폭망했으며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조상 성님들도 오랑캐 성님들을 존나게 증오했다. 사실 명한테 존나게 뜯기다 청은 나름 잘 막아서 잘 뜯기지 않았던 베트남을 고려하면 청 이후 조선이 몰락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명 멸망 이후 오랑캐 성님들이 조선 삥 좀 뜯는 동안 베트남은 우왕ㅋ굿ㅋ을 외치며 부유해지고 인구도 크게 증가하며 군대도 뇌관식 머스킷, 증기 군함 등 ㅅㅌㅊ로 무장하고 근대화를 나름 잘 진행하다 망했는데 조선보다 씹넘사벽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베트남이 존나 성장하는 걸 보면 초반에는 조선이 분명하게 베트남보다 강한 것 같은데 어느 시점부터는 조선이 ㄹㅇ루 개쳐발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이후는 공산화로 좆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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