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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론 == {{병림픽}} 조선을 '초기엔 그나마 정상이였으나 중후기에 좆병신 씹쓰레기된 나라'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여기 글들만 보아도 조선에 대한 패배주의 때문인지, 온갖 카더라들을 사실인양 싣는 경우가 많다. 왜란 호란이후로 조선은 오히려 그 전 시대보다 발전을 거듭한다. 자본주의 맹아론 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동법이라든가, 농업 생산력의 증가, 상평통보, 도시 발달 등이 있다. 문제는 옆 나라들은 이미 예전에 한 발전이라는 거다. 유럽의 미친 발전은 커녕 옆나라도 제대로 못 따라가서 하다못해 조선통신사가 왜놈들 더럽게 잘사니 분하다고 홧병 터뜨리는데 참 잘난 발전이다. 물론 중국은 이미 중세시대부터 상업적이 발전이 있었다.(사실 고대 중국이 상업적으로는 조선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일본이나 베트남 같은 경우는 조선과 비슷한 시기에 상업적 발전을 보여주었다. 가령 일본 같은 경우는 전국시대의 대혼란과 텐메이 대기근을 끝내고 에도막부의 평화 시대에 본격적인 포텐을 터트리며 발전을 한다. :이건 생산량차이가 큰거 아닌가 싶다. 조선 세율이 50퍼, 일본 세율이 90퍼였는데 쪽본 농민들은 이래도 먹고살았다. 게다가 조선통신사들의 기록 또한 한글판에서의 번역이 미숙하기 때문에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실제 제대로 번역되어 있는 통신사기록에서는 '우월한 나라의 입장에서 낮은 나라의 사치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나온다. 물론 이시기 일본이 크게 발전한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윗대가리들에 대한 인식도 해악을 끼쳤다거나 공자왈 맹자왈 하는 족속들이란 시각도 있지만, 노비오히려 기존 정치체계가 소멸하고 세도정치 시기에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종모법(엄마가 노비면 애도 노비가 되는 법)에 대해 논쟁하거나, 상업을 일으키기 위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등 민생에 엄연히 신경쓰고 있었다. 논의만하고 안 바뀐게 현실이라 까이는 거다. 뭔 헛소리냐. 엥? 이거 완전 [[탁상공론]] 아니냐!? :그 세도정치를 부른게 기존 정치체계라는 건 개무시하는 얘기이다. 그리고 기존 정치 체계에선 나라꼴이 제대로 된 줄 아나? 경신대기근으로 다들 뒈져나가는데 예송논쟁잼 ::기존 정치체계는 붕당정치이다. 붕당정치가 뭔지는 교과서 점만 뒤져보면 알테니 패스하고, 이 붕당정치가 세도정치를 부른건 아니다. 세도정치는 정조시대에 붕당정치를 개박살 내버린 여파로 발생했다. 붕당 대신에 일개 외척가문이 권력을 휘두른게 세도정치이다. 정조가 죽고나서 순조가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자연히 외척 가문인 안동 김씨가 권력을 잡고,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었다. 이 때는 붕당이 사라진 뒤라서 서로의 권력을 견제할 시스템이 없었단 탓도 있다. 영정조 시대에 설마 세도정치하려고 붕당 없앴겠냐. 다 좋으라고 ㄱ랬겠지. 그런데 결과적으로 세도정치를 불러왔다. 영정조시대는 이웃나라의 사정으로 평화가 주어진 시기일 뿐이다. 이 둘의 능력은 객관적으로 평가되고 격하될 필요가 있다 사실 조선 후기만 300년이다. 한나라가 생기고 멸망할 정도의 시간을 그냥 싸잡아서 '망해가는 시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19세기에 보여준 일들로 조선 전체를 싸잡아서 비판하면 안된다. :그 19세기 꼬라지가 실상 17세기에서 그대로 온거다.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어디 멀리 떨어진 섬나라라도 되는 건지 혼자 느린 시간의 흐름속에 있는게 조선이다. 자세한건 동시기 명나라, 일본, 베트남을 보면 알 수 있다. :17세기에 그대로 온거라니. 19세기의 꼬라지는 이전 시대가 아닌 홍경래의 난과 세도정치의 등극으로 나라가 개막장이 되면서 생겨난 암흑기이다. 실제로 19세기초 홍경래의 난 이후로 나라가 혼란스러워 지면서 인구가 크게 감소한걸 볼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초까지 꾸준히 증가하던 조선의 인구가 19세기들어 정체되었다. 19세기의 혼란이 17세기에서 유래되었다는건 어불성설이다. : 죄송한데 홍경래의 난으로 19세기 꼬라지가 만들어진게아니라 나라가 개망했으니까 홍경래의난이 일어난겁니다 :: 근데 딴건 몰라도 조선후기 300년동안 뭐하나 임팩트있는 개혁이 단 한개도 없다. 동시대에 다른 나라에서 했는지 나열하기엔 내 손만 아프고 순조 항목에도 있지만 19세기에 비안온다고 기우제 지내고 백성들은 왕이라는 새끼는 뭔데 나라가 비도 안오고 이꼴이냐고 개얨병이나 떨고있었다. :그나마 대동법,균역법,탕평책은 임팩트가 좀 있었다.->물론 세도정치 시작하면서 셋 다 씹창난다. 다시 말하는데 19세기다. 양놈들은 15세기부터 대항해시대 -> 18~19세기 프랑스혁명, 산업혁명 이러고 놀 동안 조선 정치인들은 지들 밥그릇싸움 한답시고 개혁이 안됐다. 그리고 선조새끼가 정철 불러다 바지사장 세워놓고 역적이랍시고 선비들 천여명이 넘게 쳐죽인 사건 이후로 선비들이 완전 씹선비로 탈바꿈하게 된다. 왜냐. 저 당시 급진적인 의견을 꺼냈다가 역적으로 몰려서 천명이 넘게 몰살당했는데 세월이 지나서 또 안그러리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중국 응딩이 뒤에서 형님형님 이러면서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받아먹던 짓을 수백년동안 한 나라다. 일본은 섬에 혼자 뚝 떨어진 나라라서 지들끼리 쌈박질하다 급진적으로 외세문물을 수용했지만 조선은 시발 그저 우리 중국형님만 믿고 갑니다! 이 지랄하면서 정작 독자적으로 뭘 한게 없다. 그래도 정신승리를 하자면 서양은 지리적 이점에 아프리카같은 나라를 존나게 조져서 부를 창출해 그걸 기반으로 엄청난 발전을 할 수 있었고, 일본은 조선 방어막 + 섬나라라는 지리적 이점 아래 중국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때마침 중국의 병신짓으로 시장도 만들어지자 나름대로 독자적인 문화도 만들고 서양과의 교류도 조선처럼 누구 눈치 안보고 할 수 있었다. 반면 조선은 500년 왕조 내내 중국 응딩이 걷어내기도 벅찼고 다른 시대처럼 중국이 쪼개져서 힘이 분산 된 시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지랄까다간 중국 내 어느 소수민족 23호로 전락할 수 있었음. 몽골제국의 화살촉 맛을 톡톡히 맛 본 한반도의 왕조 조선이 그걸 모를 리는 없었고 그래서 나름대로 살고자 선택한 것이 중국 후빨이었다. 어디서 금덩어리 나오는 땅도 아니고 주변에 조질 나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땅떵이도 존나 작고 인구도 경험도 기술도 중국에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고 세력 확장해보겠다고 괜히 전쟁 일으키다 민심 좆되기 십상이고 결국 한반도의 역사는 결국 중국 내 지역 1이던가 아니면 중국이란 대국 옆에서 형님형님하며 후빨하던가 둘 중 하나였음. 이런 상황에서 서양과 일본에 같은 잣대를 들이대며 비교하는 건 좀 그럼. 상병신 국가는 맞지만 동정의 여지는 있는 나라임. 세종대왕(+문종)이 조선의 기틀을 기껏 마련했는데, 직계 후손이 돌같은 머가리로 쳐말아먹고, 일제가 그걸 싹 다 없애려 하고, [[역센징]]과 [[국까]]에게 폄하당하는 걸 보면 진짜로 세종대왕이 하늘에서 울 법도 하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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