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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의 국력 역전== 조선의 국력이 일본에게 밀리기 시작하는 점에 대해서는 1600년대론(에도시대 개막)과 1800년대론(활발한 난학 수입 및 연구)으로 나뉜다. 국력을 단순한 인구수와 생산력으로만 판단하면 1550년 이전에도 일본이 조선보다 더 유리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 왜구 정벌에 적극적이였고 왜구가 초기에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눈치를 봤다는 점에서 생산력과 인구수는 우위였지만 고차원적인 과학 기술이나 문화 측면에서는 조선 초기까지는 일본이 약간 밀렸다고 볼 수 있다. ㄴ 근데 조선 이전의 고려말기에도 정식군대가 아닌 유사군대 왜구들한테 개털리지 않았노 에도시대에 일본의 권력을 쥐었던 도쿠가와 막부는 천하보청제도, 참근교대제도를 통해 상공업을 크게 발전시켰고 도로의 정비도 촉진하였다(그 과정은 위의 책에 잘 나와있음). 그것은 곧 서민생활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난학에 대한 대중들의 높은 학습의지가 더해져 이후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 1700년대부터 여기저기에 이름있는 난학자들이 세운 '주쿠'(학원이라고 보면 된다)들이 생겨나 난학이 널리 퍼졌다. 도쿠가와 막부는 대중들이 난학을 배우는 것을 은근 꺼렸지만 그것은 난학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지식을 막부가 독점하고 싶어서 그랬다. 확실한 것은 일본의 성장력이 1600년대부터 터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br>국력이 역전된 시기가 정확히 언제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br/> 하지만 역전의 시기가 빠르고 느리고를 떠나서 일본은 '근대화' 라는 숙제를 풀어나갔으며 조선은 해당 숙제를 풀어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1890~1960년대 까지는 일본에게 삼일한 수준으로 당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북괴가 남한에게 국력이 따라잡히는 과정이랑 비교해봐도 상당히 유사하다. 우선, 일제의 만주지역 짱깨들을 겨냥해서 군수공장을 북괴에게 몰아준 탓인지 북괴가 1948년에 창설된 직후에는 남한보다 더 잘 살았고 전후복구도 더 빨랐다. 그렇게 1955~1970년까지 남한에게 형님 노릇을 하며 살다가 1973년부터 급격히 남한의 포텐이 터져서 1980년이 지났을때는 이미 어느정도 따라잡혔고 격차도 커져가고 있었다. 그래도 1990년 이전까지는 군사력만큼은 남한에게 밀리지 않고 대등하거나 이상이였지만 그것도 결국 소련이 폭망한 이후에는 좆망해서 현재 재기불능인 봉건제 왕국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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