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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고려 중기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곳이라 하여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남경(南京)이 만들어지기 전까진 양주에 속한 시골이었다. 하지만 [[조선]]이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조선의 중심지가 되었다. 종로구의 '종로'는 現종로1가에 도성의 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려주는 종루가 있었기에 따온 이름으로, 운종가라고도 불렸는데, 상평방에 속했던 부암동, 구기동, 평창동, 숭신방에 속했던 창신동, 숭인동은 성저십리에 속했고 나머지는 사대문, 그것도 북촌에 속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주지였던 남촌(現 중구)를 푸시해주면서 중구가 아닌 종로구로 명명되었고 지금까지 그대로 전해내려온다. 아 그리고 모든 동이 정으로 바뀌고 이름도 일본식 이름으로 바뀌었다. 30년대부터 일본아해들이 종로일대로 상권을 확장시키자, 깡패새끼들이 상권수호라는 이름아래 둥지를 틀고 살기 시작하기도 했다. 이들중 [[구마적]]과 [[신마적]]이 종로를 나눠서 차지했는데, 둘다 만주로 빤쓰런하자 [[김두한]]이 이곳을 상납받고 전국구 주먹으로 떡상했다. 광복이후 일본식으로 바뀐 정들은 모두 원래이름의 동으로 개명되었고 당시 한국의 중심지였다보니 좌우익의 정치싸움도 활발히 일어나고 [[6.25 전쟁]]때 [[북괴군]]의 포격+반달과 [[미군]]성님의 폭격에 시달리기도 했던 지옥이기도 했다. 종로를 장악한 김두한은 6.25때 부산으로 이동하면서 패권을 듣보잡 조직 아오마스에게 내주게 되었고 전후 김두한이 국회로 무대를 바꾸면서 김두한의 우미관패는 막을 내렸다. 결근ㄱ 혼자 남게 된 아오마스는 명동파와 합병되었는데 이때 동대문구로 세력권을 확장하고자 그곳의 동대문파를 공격했다가 갈려나가면서 이지역의 깡패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후 약간의 세월이 흐르고 [[반인반신]] 시대가 되면서 반인반신이 주도하느 강남개발과 함께 수많은 알짜배기들이 강남으로 런하면서 삼청동, 평창동을 제외한 전지역은 아파트는 물론이고 빌라나 자잘한 집조차도 보기 힘든 빌딩만 가득찬 슬럼가로 전락한다. 1975년 10월 1일 [[동대문구]]에 속했던 창신동, 숭인동이 종로구로 이관되었던 이래 구 지도는 그대로였고 대신 행정동만 자잘하게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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