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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 동남아의 아파트 경비 수준의 유사 군대, 헬짱깨의 유사 군대에게 여포짓을 하며 중국 북부와 동부, 동남아를 석권한 일본은 이렇게 처먹어도 자원이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석유가 후달려서 빌빌댔다. 그나마 여포짓도 동남아 경비대가 열전하면 탈탈 털리거나 비등한 결과를 냈고, 중국도 민족주의, 공산주의 버프로 때려도 때려도 완전히 KO되지 않고 게릴라와 인민 웨이브가 좆되게 밀려왔다. 그래서 점점 병력 밀도가 낮아지다 못해 전선도 이상해지고, 나중에는 화북의 도시 하나를 일개 중대한테 점령하고 명령을 내린다. 이러자 일본군도 피해, 부상이 좆되게 쌓이기 시작하고 빡친 일본군은 장기적 안목이고 뭐고 일단 이기고보자는 생각으로 도시, 인프라 등등 다 박살내고 학살을 숨쉬듯이 해댄다. 이게 나름대로 먹혀서 공산당의 수치상 인구가 4천에서 2천만으로 반토막나는데, 마오쩌둥은 여전히 2천만은 남아있으니까 괜춘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작 이 일을 직접 수행하는 알보병들은 여간 좆같은 게 아니었다고 한다. 시팔 시간이란 시간, 고생이란 고생, 캐바캐지만 죄책감 등 좆같음 그 자체인 이 짓을 하는데 보상 좆도 없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전쟁 끝나면 고향 가서 밭갈거나, 일해야 하는데 금방 이긴다는 전쟁은 끝나지가 않는다. 적은 죽여도 죽여도 내일이면 수 배는 되어가지고 쳐들어오는데 상부에서는 추가업무 시키는거다. 좆간 피로도가 심하다 못해 머리 끝가지 차오른 중국, 동남아의 좆본군 사정은 나몰라라 하고 잘나신 대본영의 장군 나리들은 '요오시! 남방 작전이다' 하면서 인도네시아도 가고, 버마로도 가고, 호주로도 가즈아아! 해댔다. 물론 이때쯤 중국군 보급사정은 일본군과 비교도 안되는 수준으로 더더욱 병신이되어 병사들이 북한군마냥 굶어 죽지 않으려고 민가에서 식량을 턴다던지 굶주림에 못 버티고 무단탈영으로 도망간다던지 하는일이 각지에서 빈발해 결국 몇몇부대에서는 못 도망가게 행군할때는 병사를 죄수후송하는 것마냥 포승줄로 1줄로 묶기도 했다. 차라리 이 때가 일본군 리즈시절이라면 몰라도 미드웨이에서 좆털리고 "미국이 너무 강한데" 하던 상황이라 대체 이새끼들은 뭔 생각인지 알 수 없다. 어쨋던 대본영의 해답은 '우덜식 총력전'이었다. 장애자, 정신지체 등 있어봐야 솔직히 마이너스 요소뿐이 안되는 사람들도 마구잡이로 끌고와서 총을 쥐어줬다. 물론 민간 수탈은 전과는 비교도 안되는 수준으로 탈탈탈 털어갔다. 참고로 식민지 아니고 본토인한테까지 이랬다는 거다. 애초에 식민지인은 옛저녁부터 걍 처죽이고 뺏어갔다. 근데 이젠 내지고 뭐고 군대 늘리고 총한정 더 만들고 전투기, 함선 하나 더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웬만한 거 다 긁어다가 쪽쪽 빨아먹었다. 이에 지식인들은 '이러다가 나까지 좆되는 거 아니냐?'하는 생각에 빤스런 할 준비를 착착 해댔다. 실제로 나중에는 웬만하면 봐주고 서류작업 같은 거 시키든 인텔리든 지식인이던 뭐든 간에 걍 국가가 시키면 막노동이든 전선가든 뭐든 간에 해야했다. 결굴 육군을 시작으로 해군에까지 외지인(식민지인)들을 들이기 시작하고 한민족의 경우 인구 1할 정도가 강제로 끌려갔다고 한다. 당시 조선계 군인들은 나름 일본인들 시키는대로 잘 했다는데 이걸 뭐라 할 수 없는 게 일단 뒤에서 총구 겨누고 시키는 대로 안하면 뒤진다는 데 어쩔 거냐? 게다가 대부분의 반일, 민족주의자들은 [[남한 대토벌]]로 뒈지거나 만주, 중국으로 런한지 오래라서 조직적으로 저항하거나 뭘 할 인프라도 인재도 없었다. 반례로 중국은 중앙정부가 건재하고 그게 좆같아도 선택할 대안도 있었기에 현지 저항 좆됐다고 한다. 실제로 싱가포르에서 일본군이 학살을 벌이기도 했다. 근데 전에 서술에서는 '중국인들은 저항했는데 왜 조센징들은 저항 안하고 순응함?'이딴 병신같은 말이었는데 중국은 아예 친일파들이 일본 지원 받아서 괴뢰 정부 세우고 반일 중앙정부랑 맞다이 뜨던 동네다. 특히 전쟁 말기에는 군비가 GDP의 6할 정도에 달할 정도라 일본 국민들도 엄청나게 궁핍했기에 그런 전쟁을 더 길게 만드는 짓거리들에 일본 국민들도 졸라 빡쳤다고 한다. 배신자니 뭐니 그랬다. 1944년에는 중국군의 고문관이자 명예 일본군으로 유명한 좆틸웰이 장제스가 일본군 공세 대비하자는거 씹고 정예 예비대인 X군과 Y군을 지 전선인 버마로 빼버렸다가 대륙타통작전 얻어맞고 빡친 장제스에게 잘리고 유능한 웨드마이어가 새로 들어왔다. 웨드마이어는 그동안 좆틸웰이 싸지른 똥을 치우고 미국이 좆만하게 주던(수백만 병력으로 일본과 맞짱까던 중국군에게 가던 지원이 땅도 없던 자유프랑스군에게 가던 지원보다 5배넘게 적었다) 지원도 제대로 늘려주는 등 중국군의 현대화를 가속화시키고, 그 결과 1945년 4월에는 일본군이 즈장, 랴오허커우를 공격하자 미군 무기를 받은 중국군이 쉽사리 막아내고, 이에 고무된 중국은 곧바로 작년 대륙타통작전때 상실한 영토를 모두 되찾는등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 일본군은 점점 더 상태가 병신되는 반면 중국군은 빵빵해진 미군 지원으로 갈 수록 무장이 좋아지고 있었으니 어찌보면 예견된 결과다. 다만 그 와중에도 중국의 몇몇 지방군들이 ㄴㄷ인건 여전해서 1개 사단으로 일본군 4개 대대를 못 밀거나 군단 2개 가지고 일본군 1개 사단+2개 여단의 공세에 털리기까지 하는 일도 있었다. 하여튼 위의 선전에 중국군은 마침내 카보네이드 작전이라는 대반격 작전을 입안하기에 이르는데, 이 작전의 골자는 쓰촨, 구이저우쪽의 중국 정예군을 동원래 광저우등 화남지방의 항구를 되찾고 동시에 화북에는 무려 패튼을 파견해 만주방향으로 공세를 가하는 한편 산둥에 미 해병대 5만명을 상륙시키는 엄청난 규모의 작전이었다. 이 작전의 실행일자는 1946년으로 되어있는데, 1945년 8월 옥쇄를 부르짖던 일본이 미국한테 원폭 2발 쳐맞고 GG침으로써 실제로 이뤄지지는 못했다. 이런 와중에도 일본군 내부에서는 신이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기고 있다는 광신도 + 정신병자들의 설침 때문에 슬슬 주작질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주작하고 그걸 진짜 사실로 믿었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일본이 항복할 때, 중국 현지에선 "우리가 이기고 있는데 왜 항복해야 함? 항전하자!!" 하는 병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한다. 물론 히로히토 새기가 "닥치고 꿇어 새꺄" 하니까 아닥했다. 어찌 됐건 미국한테 항복하는 그 순간까지도 중국 상대로는 계속 공세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그런데 본토가 불바다가 되는건 몰랐고, 그래서 왜 항복하냐 이런 반응이 나왔다. 적 군함 2척 격침한 걸 적 항공모함 11대 전함 2척 포함 28척 격침 등으로 주작하는 덕분에 적 해군력이 운지했다고 믿고 있다가 레이테 해전에서 개박살났다. 중국 전선에서도 그런 개소리들을 믿고 적의 전력이 완전 개박살났다고 여기고 병참 부대에게 죽창을 줘서 보내서 당연히 적의 습격에 두려움 때문에 보급에 차질을 겪었다(중국 공산당 멀쩡히 살아있고 오히려 세력이 증가하고 있는데 서류상으로는 갑자기 거의 죽었다). 무려 1년 동안 보급이 끊겨서 사실상 전력을 엄청나게 상실한 부대도 있었다. 전사자 70만 명 중 절반이 사실상 굶어서 죽었는데, 당시 일본군 식인 썰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중국 지역에서도 일본군에 의한 대규모 식인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와중에 원자폭탄으로 미군이 본토를 강간했고 소련도 100만 대군을 움직이자 좆본은 결국은 무조건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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