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역대 조선 대한제국 군주}} {| class="wikitable" border="1"table align=center {| class="wikitable" border="1"table align=center |- |align=center| '''[[묘호]]''' ||colspan=3 align=center| '''[[진종]](眞宗)''' |- |align=center| '''[[시호]]''' ||colspan=3 align=center| 온량예명철문효장소황제(溫良睿明哲文孝章昭皇帝) |- |align=center| '''휘''' ||colspan=3 align=center| '''이행(李緈)''' |- |align=center| '''부왕''' ||colspan=3 align=center| 아버지: [[영조]] |- |align=center| '''왕후''' ||colspan=3 align=center| 정비: 효순왕후 |- |align=center| '''왕가''' ||colspan=3 align=center| [[전주 이씨]] |- |align=center| '''왕조''' ||colspan=3 align=center| [[조선]] |- |} </onlyinclude> 영조의 장남으로 시호는 효장. 흔히 효장세자라 불린다.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9살의 나이에 병으로 일찍 죽어 그의 이복동생 [[사도세자]]가 세자로 책봉된다. 참고로 사도세자는 효장세자가 죽은지 7년 만에 태어나 형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살아있었다면 두 형제의 나이 차이는 16세. 후에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죽자 영조는 정조를 효장세자(진종)의 양자로 입적시켜 정조는 효장세자를 추존하여 효장세자는 진종이 되었다. 무덤도 그냥 묘에서 영릉으로 승격. 단, 정조의 우대는 여기까지. 이후론 닥치고 친아버지를 우대했다. 게다가 죽은 나이도 정조가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을 나이보다 1살 어렸으니 더욱. 이후 나라가 망할 즈음(1908년)에 황제로 추존되었다. 사도세자는 장조라는 묘호를 받고 황제 추존. 알고보면 상당히 안타까운 왕자로, 이 세자가 오래살았다면 동생인 사도세자가 아버지 때문에 그런 고생을 덜했을 것이고(세자 대신 그냥 평범한 왕자로 일생을 마치는 것), 또한 자식까지 잘 둔다면 19세기의 세도정치 같은 일은 최대한 방지했을 것이다. 다만 아버지 영조가 오래 살았기에(82세) 왕위를 계승했다면 57세로 건국자 이성계와 같이 최고령 즉위 임금이 됐을 것이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색 (편집) 틀:역대 조선 대한제국 군주 (편집) 틀:조선 국왕 (편집) 틀:크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