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천안시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연혁 == === 고려이전 === 본래 천안부, 풍세현(現 풍세면), 목천군(現 목천읍을 비롯한 舊 목천군지역), 직산현(現 직산읍을 비롯한 서북구 대부분)의 4개 마을이 있었는데 여기선 천안부에 대해서만 설명하겠다. 광덕면 대평리에서 동검, 병천면 봉황리에서 소형마제석부, 두정동에서 마제석검 유구석부(有溝石斧)등이 발견되었다. 이후 [[원삼국시대]]엔 [[마한]]에 속했는데, 마한의 주인님이던 [[목지국]]이 이 근방에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아 어떤새끼들이 백제의 위례성이 여기에 있다고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다. [[백제]]가 세력확장을 함에 따라 문제의 위례성이라 불리던 성은 환성(歡城)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중 옛 천안, 직산지역이 [[신라]] [[진흥왕]]의 세력확장시기에 편입되었는데, [[불교]]에서 아이디어를 따온듯한 도솔(兜率)이란 마을이 만들어졌고 뒤에 동도솔과 서도솔로 분리되었다. 930년, 술사(術師) 예방(藝方)은 이지역을 방문한 뒤, 삼국의 중심으로 왕자산을 중심으로 발원하는 5개의 강이 마치 5마리 용이 구슬을 다투는 형세와 같은데, 이곳에 큰 고을을 설치하면 [[후백제]]가 스스로 항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왕건]]이 직접 왕자산에 올라 직접 살펴보니 그러하다고 하면서 '''천안부(天安府)'''를 설치했다. === 고려 === 995년 백제시기 지명인 환성의 이름을 따 환주(懽州)로 개명되었고 도단련사가 파견되었다. 1005년 단련사가 폐지되었고 1018년 천안부로 복구, 지부사가 파견되었다. 리즈시절 천안부는 속주로 [[아산시#舊 온양군 지역|온수군]], [[아산시|아주]], [[아산시#舊 신창군 지역|신창현]], [[동남구#풍세면|풍세현]], [[평택시#팽성읍|평택현]], [[예산군#舊 예산현 지역|예산현]], [[서북구#직산읍|직산현]], [[안성시|안성현]]을 속주, 속군, 속현으로 두었다. 1172년 온수군과 안성현, 시기미상이지만 예산현, 직산현에 감무가 파견되었다. 1256년, [[몽골 제국]]의 침공이 일어나자, 천안부의 치소를 선장도(仙藏島)로 옮겼다. 이후 육지로 돌아와 천안부를 재설치, 1310년 여러 목과 부가 폐지되면서 영주(寧州)로 개명되었다. 이후 1362년, 다시 천안부가 되었다. === 조선 이후 === 1413년 영산군(寧山郡)으로 개명되었다가 1416년 천안군으로 개명되어 인접한 풍세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잘나가던 고려때와는 달리 조선전기에는 청주 계수관에 속했다. 하지만 [[하삼도]]와 [[경기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 중 하나였기 때문에 조선후기 상업이 발달하면서 나름 잘나갔다. 1895년 23부제가 실시되면서 공주부에 속했다가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충청남도 천안군이 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해 직산군, 목천군이 천안군에 통폐합되었다. 1920년 영성면(寧城面)이 천안면으로 개명되었고 해방이후 1963년 1월 1일, 천안읍, 환성면이 합쳐져 천안시로 분리되었고 나머지는 천원군이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천원군이 천안군으로 개명되었고 1995년 5월 10일 도농복합이 실시되면서 도농통합 천안시가 만들어졌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