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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예 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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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초창기~올드 칸예(1~3집) 시절=== 90년대 후반부터 프로듀서로써 활동을 시작했으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1년 발매된 [[JAY-Z]]의 5집 '''The Blueprint'''를 프로듀싱하면서 부터이다. 이 앨범에선 [[붐뱁|90년대 동부 힙합]]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비트에 화려함을 더하고 칸예 웨스트의 장기인 소울 하이피치 샘플링(칩멍크 소울)을 내세운 프로듀싱을 보여주었고, 90년대 힙합의 틀을 바꾼 앨범이자 말 그대로 2000년대 힙합의 청사진이 된다. 이후 자기도 랩을 하고 싶어 해서 많은 사람들의 불신과 교통사고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1집 [[The College Dropout]]을 내서 래퍼로도 커리어를 시작함과 동시에 대성공하게 된다. 당시 힙합씬에선 대부분의 래퍼들이 갱스터, 마약상, 게토 출신으로 힘겨운 삶을 살다가 래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칸예는 대부분의 방구석 디시인들과 비슷하게 평범한 중산층이었고 어머니가 대학 교수에 미국 명문 미대 중에서도 탑으로 꼽히는 시카고 예술대학을 나왔다가 교통사고로 중퇴했기에 칸예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경멸의 시선도 많았지만 대학교 나온 순둥이가 사회비판적이고 다양한 주제의 랩을 하면서 힙합을 듣는 계층의 범위를 넓히고 힙합씬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 앨범 자체도 순딩순딩한 사람이 랩을 하니 그전에 나온 힙합앨범들에 비해 부드러운 편이었다. 넷플릭스 다큐에서도 1집 시절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정신이 '''멀쩡했다.''' 오히려 순수하게 힙합으로 성공하고 싶은 꿈과 열정이 넘치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칸예가 힘들 때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이자 유일한 가족인 돈다 웨스트였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칸예의 노래엔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많이 들어가게 된다. 넷플 다큐에서도 어머니 돈다가 칸예한테 하는 말 하나하나가 다 명언이다. 칸예 주변인들이 칸예에게 한 말들도 그렇고. 1집 내고 바로 다음 해에 낸 2집 [[Late Registration]]은 1집과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영화 음악 작곡가와의 협업을 통해 더욱 풍성한 사운드는 물론 1집에는 없던 사운드들도 보여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Common]]의 6집 Be도 프로듀싱을 맡았는데 이 앨범은 2000년대 힙합 명반 중 하나로 꼽힌다. 2007년에 나온 3집 [[Graduation]]은 [[일렉트로니카]] 장르의 영향을 받아 신디사이저와 오토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앨범커버도 일본의 앤디 워홀이라 불리는 [[무라카미 다카시]]를 기용해 힙합앨범 치곤 다채롭고 색다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50 센트]]의 3집 Curtis와 같은 날 발매되어 경쟁 구도가 되었고, 칸예의 3집도 호불호가 갈렸으나 평가는 칸예 쪽이 훨씬 더 좋았기 때문에 50 센트가 내세운 [[갱스터 랩]]의 몰락을 가져오게 된다. 뮤비에선 대놓고 일본애니로 제작된 뮤비를 선보이고 [[AKIRA]]를 오마주하는 등 일뽕 묻은 힙합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칸예의 대학교 3부작은 잘 마무리 된다. 이렇게 창의적이고 잘나가던 그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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