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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 내력 == 가계도가 상당히 애미없는 편인데 일단 이 사람의 증조 할배가 누구인지 모른다. 일단 원덕대왕이라는 좆간지 나게 왕으로 추존하긴 했으나 누군지는 모름. 훗날 당나라 선종 아니면 숙종이라고 구라를 치기도 했지만 당연히 말도 안되는 개씹소리. 할배는 작제건이라는 인물로 이 사람도 존나 애미없이 의문 투성이 새끼다. 대충 전설이나 이런저런 기록을 보면 가장 먼저 계보에 잡히는 인물이 강호경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신천 강씨<ref>후일 [[이성계]]가 개경에서 세력을 키울 용도로 경처로 들인 [[신덕왕후]] 강씨가 이 가문 출신이다, 고려 왕실과 조상이 같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존나 명문가였는데 이성계가 얼마나 야심에 가득찬 인간었는지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ref> 의 시조이다. 편년등록에 따르면 강호경의 출신을 고구려계라 하였다. 고구려계 출신인 호경은 성골장군(聖骨將軍)이라고 자칭하며, 혹은 성골장군이라 불렸다 하며 그가 백두산에서부터 유람을 시작해 송악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편년통록이 여기서부터 구라를 치는데 이후 손보육이라는 사람이 강씨 집안이랑 결혼해서 딸을 낳았는데 이 딸이 당숙종, 당선종이랑 원나잇해서 작제건을 낳았단다, 근데 씨발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오죽했으면 원나라 한림학사가 [[충선왕]]더러 '님 조상이 당숙종이라는데 이거 존나 말이 안되는거 아님?' 이라고 했는데 충선왕이 할말이 없어서 어버버 거렸다고 한다, 그래서 충선왕 옆에 있던 고려 역사가 민지가 대충 둘러 대서 "당숙종이 아니고 사실 당선종임 ㅇㅇㅋㅋ" 라고 했다. 당선종은 원래 당헌종이 절도사 반란 진압하면서 절도사 첩도 빼았아서 그 사이에 낳은 자식이라 황족이긴 하지만 황제랑은 거리가 먼 쩌리 개좁밥이었고 젊은 시절 존나 싸돌아다녀서 기록도 없고 나중에 황제 되고나서도 꼐임을 존나게 좋아하는 쎾쓰킹인지라 당장 그 자리에선 "뭐 씨발 당선종이면 그럴 수도 있겠군"하고 넘어가긴 넘어갔던 모양. 왕도 지네 조상 얘기를 제대로 모르고 옆에있던 꼬붕이 대충 둘러 댄거 보면 즉 왕씨 왕가 내부에서도 이거 구라인거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꽤나 높다. 오죽했으면 고려왕조의 신하인 [[이제현]]도 존나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아니 씨발 '왕대종족기(王代宗族記)'에 왕국조라는 인간이 왕건 증조부고 그 당숙종이랑 결혼했다는 딸이 왕국조랑 결혼한거라는데? 거기다 '성원록(聖源錄)'엔 보육성인(寶育聖人)이라는 자는 원덕대왕(왕국조)의 외조부라고 했는데 구라 존나 까네"라고 깠다. 하여간 족보가 하도 꼬여있어서 작제건 이상 계보를 세세히 찾는다는거 자체가 힘들다. 하여간 의문 투성이 가계도를 대충 뒤져보면 고구려계 유민 출신으로 어찌어찌 남쪽으로 흘러들어온 가문이라는걸 대충이나마 알 수 있다. 해서 지역 호족 대부분이 다 고구려 유민 출신이라는걸 생각하면 사실 이게 가장 신빙성 있다. 물론 제대로 된 성이나 족보가 없었으므로 그냥 선대에는 뭣도 없는 흙수저였다가 점점 세력을 키운 고구려계 신흥호족이라는게 가장 이 집안 내력에 부합한다. 여튼 설화에 따르면 작제건은 당나라 황제라는 애비 찾으러 서해바다 건너는 길에 우연히 서해용왕을 만나서 부탁하나 들어주고 그 덕으로 서해용왕의 딸이랑 결혼했는데, 생각해 보니 어짜피 당나라 가봤자 원나잇스탠드로 생긴 자식을 당나라 황제가 기억이나 할 까 해서 그냥 한반도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장인인 서해용왕 빨로 서해바다 해적일 시작함. 여튼 작제건 부인이 용왕의 딸=용이라 고려 왕씨는 용의 후손이라는 개드립을 500년동안 치고 다녔다. 그래서 나중에 우왕이 이성계한테 죽을 때 난 용의 후손이라 비늘이 있다. 드립과 일반 칼로 안죽어서 이성계 아버지가 전해준 전어도로 댕강 했다는 드립이 나왔다. 그리고 서해 용왕이 작제건한테 니 이름이 마침 건(建)인데, 자식들 이름을 계속 건으로 지으면 언젠가 왕이 나올 수 있다고 하니까 아들 이름을 마누라 종족인 용(龍)과 자기이름 건을 합쳐서 용건(龍建)이라고 지었다. 근데 나중에 이름을 왕륭으로 바꿈. 이 사람이 왕건 애비인데 역시 아들한테도 건이라는 이름 지어준다. 결국 이 왕씨라는 것도 왕건이 고려를 세운 후 왕이 되고 나서 정한 것으로 쉽게 말해서 왕건이 씨발 내가 왕인데 성씨도 왕으로 해야지 데헷~ - 이랬을것이다. 실제 왕륭도 살아있을 땐 그냥 용건으로 살다가 나중에 추봉했을 가능성이 존나 높다. 이는 당시 개성의 위치가 신라 경주를 기준으로 봤을때 존나 애미없이 미-개한 지역이라서 (통일신라 최대 영토가 대동강까지였다. 그나마도 점점 중앙정권이 약해져서 통일신라 하대로 가면 소백산맥 너머로는 통치권이 못 미쳤다. 그니까 말로만 신라 땅이고 실제로는 권력공백지역) 이곳 호족들도 성씨 따윈 없거나 지 꼴리는대로 썼거나 둘중 하나다. 쉽게 말해 말로만 호족이라는 말이지 실상은 도적떼나 다름없었다는 말. 작제건 때 부터 예성강, 임진강, 한강 부근에서 교역으로 부자가 됐다는데, 해적질로 먹고살았을 가능성도 존나 높다. 뭐 솔까 두개다 했겠지. 애초에 신라 정권의 지배력이 없는 치안 공백지역인데 순수하게 상업으로 세력이 유지 되겠냐? 물건 실으면 무역선, 무장 병력 태우고 다니면 군함, 그러다가 다른 무역선 만나서 털어먹으면 해적선. 나중에 이게 기반이 돼서 [[수달|수]][[능창|달]]이도 좆바르는 동시대 최강 해군참모총장이 된다. 그리고 후백제 뒤치기 ㄱㄱ. 그래도 나름 그 지방에서는 잘 나갔던 모양으로 도읍 정할 곳이 없어서 빌빌대던 궁예가 송악에 도읍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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