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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원은 왜 비슷한 폭군들보다 욕을 덜 먹는가? == === 학살은 의외로 많았다 === 왕자의 난 일으켜서 이복형제과 아빠의 [[정도전|친구]]도 운지시켰지만 여러 좋은 정책들을 펼쳤고 정적들도 싹 다 부엉이바위 쪽으로 보내주셔서 갓종머앟님이 정치를 잘할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고 세종 즉위 이후에도 세종대왕님을 도와주셨다. 그러니 세좆, 연산군, 능양군에 비유하는건 큰 실례다. 게다가 형제들 쳐죽인것도 역사적으로 왕, 황제들에게는 생각보다 흔한일이었다. 당나라를 발전시키고 강한 나라로 만든 당태종도 지 형제들 쳐죽이고 황제됐다. 심지어 얘는 동복형만큼은 살려줬다. 그리고 다른 왕들은 기축옥사부터 해서 여러 사화같은 대규모 사람 잡는 짓을 해댔는데 조사의의 난 때도 딱 조사의와 휘하 장수들만 처형했다. 뭐 이건 주동자가 이성계라 몰아세운거지만.. 쉽게 연좌제로 수백명씩 단체로 죽이는 짓은 안했다. 딱딱 주동자들만 죽이는 걸로 끝낸 게 이방원이다. 왕씨 학살만 빼고. 그리고 개성으로 잠시 옮겼던 수도를 한성으로 다시 되돌려놓은 것도 잘한 일이다. 개성이 쭉 수도였다면 수도의 정통성을 북괴가 가져가 몇백 년 후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늦어졌을 수도 있다. 물론 자기 아버지랑도 전쟁하고 특정 성씨를 몰살시키는 싸이코성, 그리고 그 막장짓을 같이 즐기고서 다른 사람들과 자기 아버지한테 뒤집어씌우는 철면피짓은 흔한 경우는 아니라지만. === 자식바보였다 === 어떻게 보면 '''이방원은 600여년 전 먼저 태어난 아재 판 [[맘충]]'''이었다. 남들에겐 내로남불하고 통수치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사는데 방해가 될 것 같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썰어댔지만 자기새끼들한텐 예외였다. 그래서 까이는 사람들에겐 사람 잡아먹는 짐승새끼 소리를 들었지만, 만약 이방원이 자식들한테까지 자기보다 똑똑하다고 찌질거렸으면 마귀새끼소리를 더 들었을거다. 조선왕조에는 자기 아들한테까지 시샘하거나 찌질거려서 애를 망친 놈이 최소 3명은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자식한테까지 찌질댄 ㅄ찌질이 - 선조, 인조, 영조 등이 있다.) 이방원은 '''아들한테 찌질거리지는 않았다. 반대로 [[영끌]] 몰빵 올인을 쳤다.'''<br /> 한반도에서 자기 권력에 마이너스가 될 만한 놈들은 다 죽이고 절대권력을 잡고 휘두르다가보니까 살짝 이 저지른 판을 어떻게든 업적으로 덮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권력을 잡고 노력을 해 보아도 사람 써는건 잘 했을지언정 생산적으로 국가와 미래를 설계하는 그 능력이 안되었다. 장남은 자기랑 똑 닮아서 양아치였다. 물론 원조 맘충답게 내로남불로 엄청 쉴드치고 다 덮었지만, 얘한테 물려주면 진짜 좆망할것같았다. ㄴ 그래도 장남이란 놈이 아빠한테 대드는 편지까지 썼음에도 불구하고 존나 챙겨줬다 영조였으면 당장 뒤주에 쳐박았겠지만 이방원이 얘 낳기 전까지 3명의 아들이 요절한 탓에 4번째 얻은 아들이 정말 소중했던 거 같다. 안 그래도 4번째. 死가 연상되지 않냐? 어찌보면 집안의 재앙이지만 아빠 입장에서는 아들이 진짜 죽을까봐 노심초사했을거다 세 아들이나 보내고 또 아들을 그렇게 보내긴 싫었겠지 ㄴ 자기 닮아서 양아치라는 것도 좀 실례다. 이방원이 첩을 많이 들인 건 맞지만 양녕처럼 남의 집 여자를 강제로 끌고오지는 않았다. 어쨌든 혼기가 된 여자 중에서 선발한거지. 둘째인 효령대군은 조용하고 스스로 왕위 포기했으니 패스하고 그런데 셋째가 존나 똑똑했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원조맘충 이방원은 애비형제한테까진 칼침놓아도 일단 자식에겐 자식바보였기 때문에 이 기회를 살릴 수 있었다. 자식들 중 천재로 나온 한명. 여말선초 기간동안 벌인 이 사태를 수습해 줄 만큼 똑똑했고, 남은 집권층인 유교 사대부들에게 똑똑해서 장래가 기대된다며 인기스타였던 세종한테 운명을 걸고 모든것을 올인하는 인생 최후의 영끌 도박을 했다. 그렇게 성공한 도박꾼이 되었다. 양아치 장남 말고 역대급 천재인 3남에게 인생몰빵한다는 이방원의 영혼을 건 한타 도박은 알다시피 [[세종]]과 [[문종]]으로 이어지는 성군을 낳으며 100만배 보상으로 돌아온다. 근데 도박이라고 하기엔 뭐한 게 당장 장남 양녕은 남의 집 여자를 NTR까지 하고 상왕 정종이 가까이하던 기생에도 손대는 아주 짐승새끼나 다름 없는 새끼였다는 거고 충녕은 어릴 때부터 책 열심히 읽는 똘똘한 아들이라는 명백한 큰 차이가 있다. 이걸 도박이라고 하기엔 너무 실레되지 않나? 참고로 저 때 남의 집 여자. 어리 사건은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는 세자궁에 데려오는 걸로 순화된 거지 실제로는 장인어른 김한로 집에서 임신시키는 개막장짓을 벌임. 캬. 마누라까지 있는 남자가 장인어른 댁에 남의 집 여자 끌고 와서 NTR 임신시킴. 무슨 야설에서도 나오기 힘든 전개를 씨발 ㅋㅋㅋ 세종이 왕이 되기 전에도 책 열심히 읽는 왕자님이라고 다 소문이 날 정도고 첫째는 성인이 되니 이런 짓 하는 게 일상임. 이건 도박이고 뭐고 할 거 없이 셋째에게 주는 게 맞았다. 둘째가 있긴 한데 둘째는 술도 못 먹고 애초에 왕위에 대한 욕심도 없었다. 실제로 세종은 왕위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고 함. 그럼 왕 하고 싶고 능력도 되는 셋째 주는 게 맞지. === 아들 세종이 너무 효자여서 자기아버지를 최대한 미화했다 === 사실 그가 욕을 덜 먹는것도 아들인 세종대왕이 잘하고 자기 아버지도 띄운 것이 가장 크다. 그리고 이런 유교적 전통을 아는 사람들과 당시의 사람들은 태종같은 폭군을 어떻게든 미화하려고 건수만들어가며 실록에 포장해 온 모습을 보며 태종 자체보다 아들 세종의 효심을 칭찬해 왔다. 그나마 태종은 조선을 어떻게든 잘 이끌어갔지. 인좆은 조선을 ㄹㅇ 좆망하게 했는데 그 아들 효종은 이런 인좆에게 왕에게 붙히는 큰 글자인 인을 붙혔다. 솔직히 세종도 효자는 맞는데 태종이 한 일과 태종이 만든 조선이 잘 된 것도 맞다. 인조와 효종과 비교하면 존나 실례되는 거. 그래도 태종은 미화할만한 부분이 있으니까 다른 위키에서는 이렇게까지 까진 않음. 다른 위키도 인좆 항목 보면 다들 뒷목 잡는다. 이 새낀 진짜 이방원 핏줄 맞나 유전자 검사가 필요한 새기. === 아들 세종이 천재에 성군인 덕을 본다 === 만약 이어받은 아들이 [[정원군]]같은 인간말종이었다면, 역사는 몽고 출신 무지랭이 건달새끼가 왕위를 찬탈한 다음에 3대 째 사람 죽이면서 현생지옥을 만들었다고 기록했을 것이다. 효심가득한 아들이 사실상 과로로 인한 건강악화 사망으로 보일 정도로 일을 열심히 했고 통치를 너무 잘 했기 때문에 그 반사이익을 보는 면도 강하다. 디씨에서는 수저등급표를 말하면서 부모덕을 이야기하지만, 이방원은 반대로 자식 세종 덕을 엄청 본 인물이다. 이것도 그래서 결과지향주의임. === 일반 백성들, 하급 공무원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 언제 한번 애들이 공에다가 이방원 이라고 적고 공놀이 하다가 걸려서 체포당한 적이 있었는데 "애들이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라며 쿨하게 넘어가 주셨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을 만드는 사관들중 한명인 민인생이 스토커 마냥 몰래몰래 계속 따라붙고 심지어 사냥할때, 방에서 누구랑 얘기할때도 와서 성가시게 굴었는데도 유배 보내는 걸로 끝내셨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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