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택견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역사 == 조선 정조 시대 간행된 이상지의 저서 재물보에 탁견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바 있다. 즉 택견의 역사는 아무리 보수적으로 산정해도 220년이 넘는다. 택견은 탁견, 탁견희의 서울 사투리였고, 일본 고류 유술, 검도도 지역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처럼 지역별로 사실상 완전히 다른 무술들이 택견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활동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름을 바꿨지만 과거 동이택견이라는 명칭을 썼던 수밟기의 경우 자기가 쓰는 무술이 택견이라고 뻥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 지역 선대 스승한테 전승받을 때 택견이라고 배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즉 함경도-강원도식 택견) 우리가 알고 있는 택견은 단체마다 다르긴 해도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송덕기 옹이 배웠던 한양식 택견에서 갈라진 단체들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현재로서, 택견은 격투 무술로써의 택견보다 놀이로써의 택견 경향이 좀 더 강하다. 이걸 바꾸고 싶다면 택견 원로라는 새끼들이 택견단일 무술대회라든가 열어야 하는데 절대로 그렇게 못한다. 왜? 지들의 권력을 빼앗기기 싫어서. 일제가 금지한 전적이 있다. 딱히 택견을 말살하려한건 아니고 한 동네에서 택견판 벌어지면 조선인들이 모인다고 금지시켰다. 현암 송덕기 선생이 없었더라면 이미 잊혀진 무술이 될 뻔했다. ㄴ그것도 있긴 한데 당시 택견판은 맨날 유도나 검도만 하고 (심지어 제대로 스파링도 안하고 카타나 슨도메만 하던) 가라테도 천시하던 일제 눈엔 단순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편갈라서 순서대로 1:1 맞짱 뜨는 걸로밖에 안 보여서 그랬던 것도 있다. 심지어 경기가 과열되면 돌 던지며 석전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왜본징들 눈엔 그야말로 컬쳐쇼크였겠지.... :ㄴ 사무라이가 길거리 지나가다가 단순히 지 칼 잘드는지 보려고 백성들 아무나 칼로 죽여대던 타메시기리, 츠지기리 풍습이 있던 왜본이 컬쳐쇼크 운운할 얘기인가? ㄴ 그건 전국시대 같이 치안이 안좋을 때 많이 있던 일이고, 에도막부 시절에는 치안유지를 위해 도시 안에서 칼을 뽑기만 해도 살인미수로 보고 처벌 했었다. 아주 없었던건 아닌데 정부에선 철저히 금지했고, 실제 하는 놈들에 대한 시선도 미친놈 취급이었다. 게다가 착취해서 쥐어짤 농민을 함부러 죽이면 세금은 어디서 걷냐? 혐한 못지 않게 국뽕들이 헛소리를 자주하는데, <<일제 시대 일부 택견 수련자들은 외국으로 나간 듯 하다. 1900년대 하와이에서 있었다고 하는 카더라인데, 사람들 몇 명이 깡패들한테 얻어맞고 있을 때 어떤 조선인 한명이 달려들어 깡패들을 정체불명의 권법으로 때려잡고 사람들이 무슨 무술을 쓰는거냐고 물어보자 택견이라고 했다 한다.>> 이게 전형적인 헛소리다. 또 국내부처에서도 택견에는 별다른 무술로서의 형(품새)이 보이지 않는다며 문화재 신청을 기각했을 정도. ㄴ 그건 문화재청이 빡머갈들이라서 순전히 가라데, 유도, 태권도 이런걸 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것에 불과하다. 형(품새)이 없다고 무술이 아니면 [[복싱]]이랑 [[레슬링]]은 무술이 아니게? 오히려 당시 문화재청은 "쌈수가 있었으나 체육적 놀이로 가치가 없는 것 같아 생략한다"라며 안면타격, 턱 타격 등 각종 타격 기술들을 지맘대로 일부러 빼고 문화재로 등재했다. 즉 원래 무술인 것을 무술 요소를 꼴리는대로 대거 빼버리고 등재시킨게 문화재청. 아무튼, 문화재청이 택견에 품새가 없다고 신청을 기각하자, 이에 빡친 신한승 옹이라는 신진파가 택견을 지 맘대로 품새를 집어넣고 무형문화재로서 인증을 받았다. 이들이 바로 한국택견협회(충주택견). 다른 택견 단체에서는 그들을 마구 까는데, 사실은 신한승 옹이야말로 한국 택견판의 최대단체인 2대 세력을 탄생시켰고, 인구수가 수십명도 될까말까 해서 송덕기 옹의 이름값만으로는 유지하기 힘들었던 전통택견을 지금의 규모로 불려놓은 2세대 공로자이다. 물론, 신한승은 현재는 또다시 새로운 택견을 위해서 까이고 계시다. 신한승도 평생과 전재산을 들여 택견판을 늘리는데 인생을 바치고 돌아가셨다. 송덕기 옹과 마찬가지로, 키보드나 두드리는 병신들한테 고인드립을 받을만한 분은 아니다. 1950년대 태권도인들 중 그나마 박철희나 최홍희, 황기는 택견에 관심이 많았다. 박철희 사범을 제외하면 나머지 태권도 관련자들이 택견을 배웠다고까진 뭐하지만,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에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내려차기, 나래차기, 뒤돌려차기 전부 이 시대에 택견의 독특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발기술을 모티브로 탄생시킨 것이기 때문에, 택견이 외국으로 퍼지지 못했다는 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오늘도 전세계의 태권도 도장에선 택견의 발기술을 (근본적으로 원리를 뜯어고친 다른 무술이 됐지만) 전세계의 태권도장에서 가르치고 있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