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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백년전쟁의 승리 이후 1500년대에는 프랑스 토지의 대부분이 국왕의 소유가 되며 중앙집권 체제가 강화되었다. 비옥한 토지와 많은 인구에서 나오는 국력을 바탕으로 강국이 된 프랑스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주도권을 넘보게 된다. 마침내 기사+스위스 용병+대포 조합으로 [[스페인]]한테 승부를 걸었으나, 스페인 최전성기 [[테르시오]]의 화승총맛을 보고 쳐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빨로 간신히 버티는 듯 했지만 16세기를 강타한 종교개혁 열풍이 프랑스를 덮치며 위그노<ref>프랑스 내의 칼뱅파 신교도를 일컫는다. 참고로 같은 부류를 영국에서는 퓨리턴(청교도(, 네덜란드에서는 회센(고이센)이라고 불렀다.</ref> 전쟁이라는 [[헬게이트]]가 오픈되었다. 이후 1589년 앙리 4세라는 대국적인 군주가 등판해 신교도 주제에 "파리는 (가톨릭의) 미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외치고, 낭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대국적으로 정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광신도에게 칼빵을 맞고 죽었다. 17세기 프랑스는 낭트 칙령을 바탕으로 가톨릭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신교도 편을 드는 박쥐짓을 하며 30년 전쟁에 개입했다. 30년 전쟁에서 스페인, 오스트리아를 털어버리는 데 성공하고, 마침내 '''[[루이 14세]]'''때 유럽 전체와 맞다이깔 수 있을 정도의 강국으로 성장했다. 이 시기의 번영을 상징하는 것이 베르사유 궁전이니 프랑스를 여행한다면 하루 잡아서 꼭 보도록 하자. 그러나 루이 14세 시대(1643-1715)와 루이 15세 시대(1715-1774)까지 전쟁을 너무 많이 벌인 나머지 재정이 거덜났고, 루이 16세때 자신들의 숙적 영국을 엿먹이고자 미국을 존나게 지원하면서 재정난은 절정을 찍었다. '''이에 성난 국민들이 봉기,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일으켜 세계최초로 주욱창질에 성공, 국왕을 포함한 [[금수저]] 무리들을 쓸어버렸다.''' 고 생각하는데, 사실 살아남은 귀족 등 부유층들은 많았고 혁명을 응원한 자도 많았다. 미국의 주요 계층들과 국민들이 영국왕 몰아내면 자신들의 기득권(권리)가 증대될 것을 기대한 것과 마찬가지의 관계였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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