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뉴딜 === {{빛과어둠}} {{오른쪽}} 나쁜 말로 제 살 깎아먹기, 좋은 말로 공적 자금 투입. 하지만 적어도 검은 목요일이후 되도않는 금리인상과 긴축재정으로 몇년동안 미국 gdp의 25%가 감소한것을 회복시킨것을 보면 적어도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게 한 정책은 맞다. 뉴딜 정책에 대해서는 후세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우파 쪽에서는 민간 부문 경제를 공공 부문으로 전환하는 데 그친, 일종의 예산 낭비였다고 비판하고, 리버럴보다 더 왼쪽인 진영에서는 아직 충분히 경기 부양이 안되었는데 2기 때 예산을 깎았다가 효과가 줄었다고 평가한다. 산업부흥법 재정으로 정경유착과 노동자들의 집단파업, 그리고 기업카르텔을 조장하였다. 사실 후버 행정부로부터 시작됐던 개입주의<ref>기업들의 고용에 대한 각종 간섭, 높은 관세장벽, 대폭적인 세금 인상</ref>가 뉴딜의 모티브가 된 탓이기도 하다. 이후 1937년 Court Packing 파동 터지고 미국내 반뉴딜, 반독점, 반카르텔 여론이 형성되어 뉴딜 민주당은 38년 중간선거에서도 참혹한 패배를 얻어 맞게 되었다. 이후 뉴딜 정부는 이전의 컨설베이션 카르텔 조업단축 생산통제 정책을 종료하고 '시장경제, 경쟁체제' 경제로의 회귀, 자유시장체제 복귀를 공식 선언하게 되므로서 개입주의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민주당계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1937년 경제가 후퇴한것은 뉴딜정책의 한계가 아닌 재정지출의 감소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후 뉴딜정부의 루즈벨트는 이전의 코포라티즘, 혹은 비즈니스 콜렉티비즘(우파 집산주의), 빅 비즈니스 콘트롤(카르텔 기업집중 Broker State 정책, Swope Plan, 상공회의소 플랜) Price Controls 지지가격, 독점가격 정책을 공식 종료하고 '미시경제학' 경쟁시장, 시장자유 확대 정책으로의 회귀를 천명하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뉴딜의 국가산업부흥법과 같은 독점법 재정에 [[존 메이너드 케인즈|케인즈]] 또한 이를 '투자제한'이라 하여 공개성명으로 강력히 비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전세계에 만연하던 극단주의, 이를테면 파시즘이나 볼셰비즘에 의해 사회가 매몰되지 않고 자본주의를 지켰다는 의의도 있다고 한다. 당시 대공황이 일어나자 온갖 미친놈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해서야 극단주의자들의 양산을 막을 수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 사실 후대 학자들도 미국이 대공황에서 탈출한건 뉴딜 정책보다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전쟁 특수라는 분석이 더 많다.단 효과가 없었다는것은 아니고 대공황에 버틸수 있는 힘을 회복할 시간을 최대한 끌었다는것에 의의를 두는편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