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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후반=== 1990년대 초반까지도 영화관=폭력물과 선정물이 넘치는 위험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1990년대 중반에 쥬라기 공원, 라이온 킹, [[포레스트 검프]], 타이타닉 등등 갓띵작 헐리우드 영화에 의해 빠르게 사라지며 청소년층이 영화관으로 유입되는 풍토가 조성되었고, 이는 한국 영화 시장의 확장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1993년 [[투캅스]]로 출세한 [[강우석]], [[박중훈]], 1995년 닥터봉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한석규]], 1996년 블록버스터 [[은행나무 침대]]로 성공한 [[강제규]], 1997년 [[초록물고기]]의 [[이창동]], 초록물고기+[[넘버3]]로 출세한 [[최민식]]과 [[송강호]]등 지금도 한국 영화판을 지배하는 본좌들이 데뷔하면서 떡상각이 제대로 잡히기 시작했다. [[박찬욱]]도 이시기 데뷔했지만 [[달은...해가 꾸는 꿈|폐기물을]] [[3인조|내놔서]] [[공동경비구역 JSA]]가 흥하기 전까지 무명감독을 전전했다... 근데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1996)라는 엄청난 물건이 등장해서 햇병아리 감독들이 좆망할뻔하기도 했다. 1996년엔 [[애니깽 사건]]이라는 전설적인 대참사가 발생하면서 이전까지 활동했던 원로 영화인들 대부분의 커리어가 끝장나고 이 때 두각을 보였던 [[386 세대]] 출신 영화인들이 영화판을 완전히 점령하게 되었다. 1998년엔 은행나무 침대로 머박을 터뜨린 강제규 감독이 전설의 띵작 [[쉬리]]를 만들면서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신호탄을 날렸다. 2000년, 임권택옹은 [[춘향뎐]]으로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고 이 영화를 통해 [[조승우]]가 데뷔했다. 그리고 연극과 단평영화판에서 뛰었던 [[봉준호]]성님이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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