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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utorii {{Lang|ja|ヒストリー}}(History) == 일본 역사학자에 따르면 빙하기때 일본열도와 한반도 중국대륙이 붙어있었는데 일본열도에는 사람이 안살았다가 중국대륙의 고대부족들이 이주하면서 일본인들이 만들어졌다는게 과학적 사실이라고한다. [[파일: East asian ethnic.jpg]] 빙하기가 끝난다음 신석기시대에 들어서고 해수면이 조금 높아졌을때의 동아시아지도. 옛날 한반도 중남부와 [[열도|일본 열도]]에는 조몬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해수면이 높아져서 분리됐고 남아있던 조몬인들은 그나마 일본열도와는 다르게 발전한채로 살았는데 남하하던 예맥인들의 침략으로 인해서 일본열도로 넘어와 한반도에서 기존에했던 [[쌀]]농사 같은 문화가 일본 열도로 [[야요이 시대|들어오게 된다.]] 이후에 일본 최초의 나라인 [[야마토|야마토국]]이 세워진다. 야마토국은 [[백제]]를 너무 좋아해서 백제로부터 여러 문화를 전수받고 멸망한 백제인도 좀 받는다. 7세기 후반 '[[당|당나라]] 따라하기'의 영향으로 중국의 제도가 들어오게 되면서 헤이안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11세기에 발달한 무사 계층이 왕과 귀족을 나가리로 만들고 지들끼리 나라를 해쳐먹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막부 정치'이다. 최초의 '막부'는 가마쿠라 막부였다. 가마쿠라 막부는 13세기에 [[몽골]]한테 침략당한다. 몽골의 침략을 태풍덕에 겨우겨우 막아냈지만, 가마쿠라 막부는 망한다. 그래서 새로 들어선 막부가 '무로마치 막부'이다. 무로마치 막부시대에는 [[명|명나라]]에 조공을 하며, [[근세 조선|조선]]과 함께 명나라의 꼬봉을 자처했으나, 얘네도 얼마안가 망한다. 이 이후의 시대엔 여러 지역의 영주들이 지들끼리 싸우게 되는데, 전국시대라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재통일하고 전국시대를 끝낸뒤, 조선을 정벌하러([[임진왜란]]) 갔지만 실패한다. 임진왜란이 실패하자 기회를 엿보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가문을 쓸어버리고 자기가 막부의 자리에 오르는데, 이때부터 '에도 막부시대'라고 부른다. 에도시대에는 경제와 문화가 크게 발전하였기 때문에 전국시대까지 미개하기 그지없던 일본인들이 에도시대에 들어서 드디어 사람 기색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일본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미국은 이때 [[남북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화는 실패한다) 군대를 끌고 강제로 문을 열어버리게 되자 천황파와 막부파의 내전을 거쳐 에도 막부는 망하고, 메이지 유신이 단행되어 드디어 천황이 다시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천년동안의 막부 지배에 익숙했던지라 한동안 [[왜왕|천황]]이 뭔지도 몰랐다. 후에 짱깨와와 슬라브놈들을 처바르고 섬짱깨와 헬조선까지 병합해서 콧대가 높아진 일본은 주제 넘게 [[천조국]]을 [[제2차 세계 대전|치려 했다가]] B29 폭격맞고 좆망한다. 전쟁에선 졌지만 냉전때 미국 지원을 팍팍 받고 옆동네에서 [[625|전]][[베트남 전쟁|쟁]]이 나서 전쟁특수로 무기를 많이 팔아먹어서 다시 경제 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일뽕들은 일본 경제학자도 인정한 한국전쟁 특수를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다. === 조선통신사가 기록한 250년전 일본 === 일뽕 새끼들이 자꾸 "조선통신사가 기록한 -년전 일본 어쩌고~~"라고 글 올리는 거 본 적 있을 것이다. 과연 조선통신사는 일본을 진짜로 넘사벽으로 보았나? 에이 그럴리가^^. 일뽕 새끼들이 조선통신사가 일본 찬양했다고 주장하는 글은 하나같이 "생각보다 좀 컸네. 이땅 우리왕 밑으로 지배시켰으면 좋겠다." 정도의 칭찬이었는데, 이걸 조선보다 낫다는 식으로 왜곡한 글이었다. '''약간의 칭찬을 제외한 일반적인 실상은 아래와 같다.''' 조선통신사였던 원중거의 기록 10월 17일 경자 "일본 백성들이 고생스럽고 인색한 것은 아마 천하에서 최고일 것으로 비록 우리 배를 끄는 격졸(格卒)로 말한다 하더라도 매일매일 익힌 고구마 뿌리를 두 번 먹고 그 뒤에 밥을 먹는 사람은 오분의 일에 불과하다. 또한 수저질 몇번에 나무 그릇 바닥에 닿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비록 같이 앉아서 먹는 사람이 (밥이) 없다고 해도 양식 한 톨도 나누어 주지 않는다. (우리)여섯 배에 타고 있는 왜의 사공들은 예에 따라 우리가 음식을 먹이는데, 모두 큰 통을 가지고 와서 반드시 음식을 많이 달라고 한다. (우리) 격군들이 그들의 음식을 탐하는 것을 비웃으며 질책을 하여도 또한 부끄러움을 알 지 못하였다" 12월 21일 계묘 "마을은 가히 백 호쯤 되는데 모두 초가집이었고 사는 것이 궁핍했으며 모두 남루했고 빗질도 안 했으며 씻지도 않았다. 여자들은 나오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으니 의복이 깨끗하지 않아 다른 사람을 만날까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널로 덮은 3층짜리 집들이 있었는데 모두 신사(神舍)와 승사(僧舍, 절)라고 한다. 신유한 해유록 "(일본)농민들은 1년 내내 경작하여도 다 관아로 들어가고 풍년이 들어도 콩 반쪽도 잇기 어려워 스스로 처자를 팔아먹기까지 하니 빈부가 균등치 않음이 다 국법의 폐단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뽀너쓰,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즈의 기록''' [[마비키|"일본의 여성은 기를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면 모두 아기 목을 다리로 눌러 죽여버린다"]] . . . . 이 시대에는 〈무명이외는 입어서는 안 된다〉〈아침부터 밤까지 일할 것〉〈술이나 차는 마시지 말 것〉 등의 엄격한 룰로 막부는 농민을 심하게 통제했다. 심지어는 〈농민과 깨는 짜면 짤수록 나온다〉는 막부관리의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농민은 막부를 지탱시켜주는 중요한 존재이기에 농민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되는 법까지 등장했다. 한 마디로 〈살리지 않고 죽이지도 않는 정책〉으로 일관한 것이다. 당시의 농민은 수확의 40~50%를 세금으로 착취당했다. 이 시대는 농업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무로마치 시대의 3배까지 급상승했지만 농민들의 생활은 가렴주구로 고통이 끊이질 않았다. 신분은 하극상 풍조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고정화가 이루어졌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28436] 헬조선시대: 아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http://mnews.joins.com/article/9678270#home] 조선 시대 평균 남성 신장은 일본보다 6㎝ 더 크고 식사량도 더 많다. 조선 시대 사람들이 대식가였다는 건 알지? 유전적 차이 때문에 키가 큰거라 쳐도 최소한 영양 섭취면에서 에도 시대와 조선시대와 크게 다를게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ㄴ 이게 유전자에 각인이 되었는지 지금 신장차이가 그대로 이어진다는건 유우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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