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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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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남 외 다른 지역에서는? == 중공군의 대공세로 서부전선과 동부전선 양측에서 국군과 유엔군이 급히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상 흥남 외의 지역(주로 항만도시)에서도 철수 작전이 진행되었다. * [[함경남도]] [[원산시]]: 레인 빅토리(SS Lane Victory) 호가 피난민 7,009명을 태우고 철수하였다. 안타깝게도 원산이 너무 일찍 함락되어 피난민을 더 태우고 가지 못하였다. * [[함경북도]] [[성진시]]: 12월 9일 13시에 [[3사단]] 22,23연대가 미군 수송선편으로 철수하면서 작전이 종료되었다. [[LST]] 및 미군 수송선에 피난민이 12,000여 명이 탑승하여 피난 성공. * [[평안남도]] [[진남포시]]: 미군 군용선편으로 3만여 명 피난. * 기타 서해안 일대: 대부분 [[황해도]] 출신들로 구성된 피난민 62,082명이 1951년 2월까지 군용선으로 피난하였다. 출처: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72. 해당 통계에 잡히는 인원들은 모두 국군, 유엔군 군용선편으로 피난하였으며 대부분 피난민 수용지에 하선하자마자 집단 수용되어 출신 시, 도, 군별로 신분 조사를 받고 방역을 거쳤기 때문에 그 수치는 상당히 정확한 것으로 판단된다.<ref>김귀옥 著,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총서12 <월남민의 생활 경험과 정체성-밑으로부터의 월남민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1999), p.68~70.</ref> 그리고 이들만이 아닌, 어선<ref>동력선이 아닌 [[범선]]도 더러 섞여있었다.</ref> 등 중소형 민간 선박 편으로 철수한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http://m.kyeongin.com/view.php?key=20170612010003695] - 범선으로 진남포항에서 해주, 인천을 거쳐 군산까지 피난한 사례. 특히 국군 및 유엔군이 해공군으로 제해권을 장악한 황해도, [[평안북도]] 서해안 일대에서는 국군 및 반공 유격대, 유엔군이 장악한 도서로 피난해 오는 일이 1953년 [[정전협정]] 이전까지 계속되었다. [[분류:전쟁]][[분류:한국사]] [[분류:6.25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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