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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맹국 === ==== 오스만 제국 ==== 메흐메트 5세가 술탄으로 즉위했지만 실권은 청년 튀르크당이 쥐고 있었고, 이들은 이탈리아와 전쟁을 벌였으나 그 좆병신인 이탈리아에게도 쳐발리자 발칸 반도의 여러 국가들은 오스만 제국이 단단히 병신이 되었다고 판단,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그리스, 몬테네그로가 오스만 제국에 선전포고하며 [[발칸 전쟁|제1차 발칸 전쟁]]이 발발했다. 오스만군은 힘도 못 쓰고 연패했으며 결국 휴전 협상에 들어갔으나, 이를 틈타 오스만 내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이스마일 엔베르가 집권했다. 이를 빌미로 발칸 국가들은 다시 오스만을 털었고, 결국 런던 조약을 통해 오스만은 이스탄불 부근을 제외한 대부분의 발칸 반도 영토를 상실했다. 하지만 승전국인 발칸 국가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고, 이는 결국 불가리아가 발칸 국가 중에서 왕따가 되는 상황으로 흘러갔다. 결국 불가리아가 세르비아와 그리스를 침공하며 제2차 발칸 전쟁이 일어났으나 되려 발칸 국가들은 오스만까지 끌어들여 불가리아를 두들겨 팼으며, 부쿠레슈티 회담을 통해 불가리아 영토는 심각하게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오스만과 두번이나 맞장을 떴던 불가리아는 세르비아의 적이 되었고 동시의 러시아의 적이 되었다. 당시 오스만은 러시아를 싫어했고 이 때문에 오스만과 불가리아가 공동의 적을 두게 되었고 마침 오스만의 동맹인 독일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자 오스만 제국도 덩달아 제1차 세계 대전에 동맹국 편으로 참전했고, 이듬해 불가리아가 오스만의 편을 들어 동맹국으로 참전했다. 오스만 제국은 전쟁 중에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벌이며 잔혹한 전쟁범죄를 많이 저질렀다.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을 공격해왔으나 오스만 군은 의외로 이들을 잘 막아냈는데, [[갈리폴리 전투]]에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활약한 덕에 영국과 프랑스군을 처참하게 격파할 수 있었다. 문제는 하필이면 친구를 잘못 뒀다는 데에 있었고 결국 독일과 오스트리아라는 최악의 친구를 만난 오스만은 영국군이 이집트를 통해서 오스만 영토를 야금야금 먹어가자 결국 항복했다. 이후 오스트리아와 독일도 연달아 항복했고 넷 다 패전국이 되었다. ==== 독일 제국 ==== 독일은 세계 정책을 표방하며 갈수록 해군력을 강화하고 있었는데, 이는 영국의 반발을 사 영국과 독일 간의 해군력 군비 경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사라예보 사건]] 이후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고 러시아가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하자 독일은 삼국 동맹 조약에 따라 오스트리아를 침공한 러시아와 그 동맹인 프랑스에 선전포고하며 [[제1차 세계 대전]]에 뛰어들었다. 독일은 프랑스를 침공하기 위해 중립국인 벨기에를 침공해 점령했으며 이는 영국이 독일을 침공하게 만드는 명분이 되었다. 이후 독일은 양면 전선에 놓였으며 초기에는 독일이 양 전선에서 모두 선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진격이 막히자 독일군은 참호를 파서 참호전을 시작했다. 협상국도 참호를 파서 아주 긴 기간 동안 대치했다. 중간에 [[크리스마스 정전]] 같은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잠시뿐이었고 서부전선에서의 정체되어가는 전쟁은 많은 손실을 낳았다. 하지만 독일이 미국인이 탑승한 민간 여객선들을 여러 번 침몰시킨 데다 멕시코에 미국을 침공해달라는 전보를 보냈다가 미국에게 들켜버리는 바람에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하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미국은 전쟁 특수를 통해 막대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고, 독일은 미국을 건드린 죄로 엄청난 양질의 공격을 받았다. 다행히도 러시아가 혁명으로 나가떨어지자 한숨 돌리고 서부전선에 집중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결국 협상국의 맹공을 버티지 못한 동맹국들은 대부분 떨어져 나갔으며 독일 내에서도 반전 여론이 확산되었다. 이러던 와중 킬 군항에서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독일 전체적으로 노동자들이 봉기를 일으키면서 11월 혁명이 일어났고, 결국 빌헬름 2세는 퇴위 후 네덜란드로 망명, 제정이 붕괴하면서 [[독일 제국]]이 멸망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당시 독일군은 독일 영토 내에 협상국의 군대를 전혀 들이고 있지 않았는데도 항복 선언을 하며 패전하자 독일 전역에서 분노와 의심을 샀다. 패전한 독일은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을 협상국과 체결했으며, 이를 통해 알자스-로렌을 프랑스에게 뜯기고 모든 식민지를 일본, 영국, 프랑스 등에게 빼앗겼으며 1320억 마르크의 배상금을 물게 되었다. 이 이외에도 많은 권리들을 강탈당했다. 하지만 당시 피폐해진 독일의 입장에서 배상금을 갚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결국 독일에서는 공산주의, 전체주의, 파시즘과 같은 사상들이 퍼지게 되었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민족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소하고 오스트리아를 여러 민족의 연방으로 재구성하자는 입장을 보였으나 이는 범슬라브주의 신봉자들에게 좋게 보이지 못했고 결국 범슬라브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암살하며 파국이 일어났다. 분노한 오스트리아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세르비아와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속했던 [[검은 손]] 간의 관계가 있다고 의심하며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날렸다. 세르비아는 그 중 일부만 제외하고 다 수용하기로 했지만 오스트리아는 전부 수용하지 않으면 세르비아를 침공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최후통첩 기간이 끝나자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를 침공했다. 세르비아의 뒤를 봐주던 러시아 제국은 오스트리아를 침공했으며 오스트리아의 동맹 독일 제국이 러시아에 선전포고함과 동시에 러시아의 동맹인 프랑스와 중립국 벨기에를 침공했다. 영국은 중립국 벨기에가 침공당한 것을 명분으로 독일에 선전포고하며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번졌다. 오스트리아는 독일, 불가리아, 오스만과 동맹해 협상국과 싸웠지만 삼국 동맹 중 일원이었던 이탈리아는 협상국 편에 붙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간에 이손초 전투가 벌어졌다. 한편 세르비아는 국토 전체가 오스트리아에게 넘어갔다. 전쟁 도중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사망하고 카를 1세가 카이저로 뒤이어 즉위하자 오스트리아 내의 병폐와 악습들을 처리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친구 독일이 미국에 시비를 털다가 미국을 참전하게 만드는 바람에 미군은 엄청난 물량으로 동맹국을 공격했으며, 불가리아를 시작으로 오스만 제국이 항복하자 전세가 완전히 기울었고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이 이탈리아군에게 쳐발리는 사건이 터지자 결국 항복했다. 카를 1세는 1918년 10월 31일 헝가리 황제에서 물러났으며 11월 16일 오스트리아 황제 직까지 내려놓으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보스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다민족 국가들로 분열되었다. 또한 생제르맹 조약을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정식으로 해체되면서 프랑크 왕국 대에서 이어져내려온 신성 로마의 황제의 직계로써 유럽을 상징하던 제국이 완전히 소멸했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알프스 산맥과 빈 일대만 통치하는 소국으로 쪼그라들었으며 공화국이 되었다. 독일과의 동맹이나 병합이 금지되었으며 군비도 축소되었고 신분제가 영구히 폐지되어 황족들은 오스트리아에서 추방당했다. 엄청난 혼란을 맞은 독일과 다르게 오스트리아의 경우 기독사회당의 주도로 그나마 안정적인 국가 운영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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