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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 독일 ==== 독일에서는 의회정치가 점차 붕괴되고 극단주의자들이 정계를 장악하게 되었는데, 연정을 거부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을 붕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치당]]과 독일 공산당이 상당히 약진했다. 반공 중도우파 하인리히 브뤼닝은 나치당과 공산당에 맞섰지만 경제실적은 세계 대공황으로 더욱 악화되어갔고 결국 이들은 물러났다. 이후 군부와 귀족들이 자리를 채웠으나 이들도 인기가 없어 연정에 실패하고 정권을 잃었다. 이제 나치당과 공산당을 뽑지 않는 이상 연정을 이루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해졌고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의 주범이 공산당원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공산당 또한 민심을 잃어 독일은 군부의 지지를 통해 권력을 얻은 나치당이 점차 장악해나갔다. 히틀러는 힌덴부르크를 포섭해 의회를 해산시켰고 [[프란츠 폰 파펜]]과 연정을 이뤄 수상이 되었다. 이후 히틀러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하는 [[수권법]]이 통과되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은 [[나치 독일]]이 되었다. 나치는 군중의 저항심리와 지배를 받고 싶어하는 심리의 이중성을 교묘하게 공략해 극단주의를 내세움으로써 독일인들의 저항심리를 충족시켜주었고 철권통치를 통해 혼란스런 정국을 바로잡은 것처럼 보이면서 독일인들은 점차 그러한 체제에 순응했다. 나치당은 얼마 후 나치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을 금지했으며 복지 정책을 여럿 만들고 경제상황을 안정시켜 독일인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렇게 체제를 고착시킨 나치는 슬슬 팽창 정책을 펴기 시작하는데, 먼저 국제연맹이 관할하던 중립지대 루르에 국방군을 진군시켰고, 당시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던 영국과 프랑스가 방관하면서 루르 점령에 성공했다. 한편 독일 밑에 있던 오스트리아에서는 기독사회당이 나치를 견제하고 파시즘을 내세워 오스트리아 연방국을 세웠는데. 나치당 지지자가 오스트리아 독재자 돌푸스를 암살하면서 나치의 손아귀에 넘어갈 뻔 했으나 쿠르트 슈슈니크가 재빨리 대처하고 이탈리아 또한 독일을 견제하면서 실패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이미 같은 민족인 독일과 나라를 합치자는 사람들이 나치즘에 빠져들고 있었고 오스트리아의 뒤를 봐주던 이탈리아마저도 독일의 친구가 되자 결국 정권은 나치당에게 넘어갔다. 이후 독일은 [[안슐루스]]를 통해 오스트리아 나치당과 지들 멋대로 합의하며 오스트리아를 합병했다. 독일은 이번에는 체코슬로바키에아게 주데텐란트 할양을 요구했고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이 이를 방관하다 못해 아예 [[뮌헨 협정]]까지 맺어주면서 주데텐란트는 독일에게 넘어갔다. 나치는 자기들이 아무리 똥을 싸도 영국과 프랑스가 방관해주자 이번에는 아예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해 점령했고, 다음에는 소련과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했으며 방송국에 폴란드 군복을 입은 나치군이 진군하는 주작 사건을 통해 아니꼬왔던 폴란드 침공 명분을 내세웠다. 결국 1939년 9월 1일 독일은 폴란드를 전격적으로 침공했으며 소련 또한 독소불가침조약을 통해 이에 참전해 폴란드를 분할해버렸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번에는 방관하지 않겠다며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으나 이는 사실상 방관이나 다를 게 없어서 서부전선은 [[가짜 전쟁]]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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