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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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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세계 === ==== 미국 ==== [[지미 카터]] 행정부의 실책으로 인해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베트남전 패배 이후 침울해진 미국인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고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 정책을 펼쳤고 대외적으로는 갈수록 세력을 불리고 있는 소련이나 일본을 견제했다. 하지만 니카라과 우익 반군 콘트라를 지원한 이란-콘트라 사건이 밝혀짐으로 인해 도덕성 면에서 비판을 받았다. 여하튼 이 양반은 크게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이니 평가는 알아서 해라 그리고 이 시기는 미국인들이 가장 추억으로 여기는 시기 중 하나인데 [[스타워즈 시리즈]], [[백 투 더 퓨처]] 등의 갓띵작들이 나오고 [[마이클 잭슨]]이 미국을 넘어 세계를 휩쓸었으며 결국 미국이 소련을 이기고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84년 대통령 선거에서 레이건은 재선에 성공했으며 그의 임기 2기가 시작되었다. 1985년에는 일본의 경제력이 지나치게 커지자 일본을 옥상 위로 몰래 불러 [[플라자 합의]]에 동의하도록 시켰고 일본은 거품의 저주에 걸렸다가 훗날 경제가 작살나게 되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레이건 행정부의 공산권 압박과 공산주의의 내부 모순으로 인해 동유럽을 중심으로 민주화 열기가 불었다. 한편 레이건의 임기가 끝나고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89년에는 동유럽의 민주화 열기가 실제 혁명으로 번져 동유럽 공산국가들을 대부분 민주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렇게 제2세계는 껍데기만 남게 되었고 H. W. 부시 행정부는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 1990년에는 쿠웨이트를 쳐들어간 이라크를 참교육해 미국의 위상을 보이기도 했다. ==== 일본 ==== {{유토피아}} 성장세가 안정화되었고 1인당 GNP가 1만 달러를 돌파해 미국의 2/3까지 따라오는 데 성공했다. 대기업 순위에서도 일본 기업들이 절반 이상이 존재했으며 경제 강국이었던 서독을 짓밟고 서독+프랑스+영국 GDP의 합이 일본과 맞먹는 수준의 위엄까지 찍는다. 영토는 일본 제국 시절보다 작아도 그 영향력은 일제 시대 이상으로 성장해버린 일본사상 최전성기를 달성하게 되었다. 문화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룩했는데 음악 시장에서는 일본 아이돌이 유행했으며 애니메이션도 이 시기 급성장해 씹덕들을 대거 양산했다. 미국에서 조금씩 커져가던 게임 시장도 일본이 견인해서 아타리 쇼크로 미국 게임 시장이 좆망한 틈을 타 [[닌텐도|킹텐도]]가 [[슈퍼 마리오 시리즈]], [[젤다의 전설 시리즈]]로 세계 게임 시장을 휘어잡았다. 그리고 그동안 등한시되었던 군사력에 대한 투자도 80년대부터 급증했다. 특히 해군이 급성장을 이루었다. 버블경제 시절 일본의 경제상황을 말해보자면 소비 성향은 남자들은 외제차 매장 가서 계약서에 도장 찍고 여대생들은 명품가방을 누구든지 들고 다니는 등 닥치고 써보는 삶이었으며, 머학 졸업한 뒤 일 구하려고 면접만 갔다왔는데 교통비랍시고 3~5만엔(지금 환율로 치면 면접 갔다왔을 뿐인데 수십만원을 받은 셈이다)을 찔러주는 등 돈다발 그 자체였다. {{거품}} 하지만 이런 일본의 성장을 아니꼽게 바라본 천조국과 꼽사리 일진들은 일본을 플라자 호텔로 몰래 불러 [[플라자 합의]]를 했고 이에 따라 일본은 엔화의 가치를 올리게 되었다. 결국 일본 경제에는 거품이 끼게 되었다. 이후 엔화 가치가 폭등하자 일본은 기존의 '다른 나라보다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수출하는' 전략을 더이상 써먹을 수 없게 되었고 거품 경제의 시대가 열렸다. 이후 일본은 저금리 정책을 펼쳤고 이 틈을 타 미국 채권이 일본 시장에 침투해 부동산 및 주식이 급등했다. 이렇게 일본 경제는 비정상적으로 변했고 일본인들은 더 이상 장인정신에 기반해 노오력을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대충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해서 돈이 부풀려지기만을 주구장창 기다리면서 일본의 경제 구도를 더욱 왜곡시켰다. 1989년, 마침 일본에서 63년 동안이나 덴노를 해먹던 [[쇼와 덴노]]가 사망하고 [[아키히토]]가 덴노로 즉위하면서 [[쇼와 시대]]가 막을 내리고 [[헤이세이 시대]]가 개막했다. 그리고 1989년 12월 29일 닛케이 평균 주가가 38915엔 87전을 찍은 것을 끝으로 일본의 거품은 점차 무너지게 된다. ==== 중화민국 ==== [[장징궈]] 총통이 대만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이 시기부터 국민당 독재가 완화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창당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돼서 지금은 대만의 양대 정당 중 하나인 [[민주진보당]]이 이맘때에 창당되었다. 1987년에는 대만 독재를 위해 내려진 계엄령을 해제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 본토와의 협상을 통해 양안관계 개선과 통일 논의가 시작되기도 했다. 심지어 국민당과 공산당을 합친다거나 중화민국이 UN에 재가입할 방법을 논의하기까지도 했다. 하지만 1988년 장징궈가 사망하고 1989년 중공의 덩샤오핑이 [[천안문 6.4 항쟁]]을 강제진압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전부 다 가라앉아버렸다. 장징궈 사망 이후 [[리덩후이]]가 총통 권한대행으로 취임했다. 그는 최초의 본성인 총통이었고 이 덕분에 외성인과 본성인 간의 차별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기도 했으며 외성인 위주의 국민당 보수파들을 설득시키기도 했다. ==== 서독 ==== [[헬무트 슈미트]]가 연정을 통해 집권하다가 경제 침체로 사민당 내의 운동권 출신 멤버들이 분열의 조짐을 보였고 결국 사민당-자민당 연정이 깨지면서 [[헬무트 콜]]이 총리직을 이어받았다. 이후 집권한 헬무트 콜 총리는 아데나워의 정치적 양자를 자처하며 외교적으로도 미국과 영국에 의존하기보다는 프랑스 등의 유럽 대륙 국가들과 친하게 지냈다. 또한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의 동방 정책을 계승해 1987년 동독의 서기장인 에리히 호네커와 정상회담을 하기도 했다. ==== 이탈리아 ==== 사회적 혼란과 부정부패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었고 이 틈을 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같은 부패한 방송인들도 생겨나고 있었다. ==== 프랑스 ====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임기가 끝난 이후 [[프랑수아 미테랑]]이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제5공화국 첫 좌파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기업들을 공영화시키고 근로 시간을 감축하고 의료를 공공화시키는 등의 정책을 펼쳤고 사형제를 폐지시켰다. 하지만 우파는 그의 정책이 진보적이라고 까고 좌파들은 너무 온건한 개혁이라고 까면서 위기를 맞았다. 또한 나라 빚도 늘어나고 있었다. 한편 외교적으로는 미국과 가깝게 지내면서도 제3세계 국가들과도 친하게 지내려고 했다. 더욱이 당시 프랑스 신좌파들은 제3의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고 심지어 과거 우파들의 정신적 지주인 [[샤를 드골]]도 미국에 휘둘리지 말자는 입장이었기에 많은 호응을 받았다. 1986년 총선에서 여당이 의회의 과반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해 상대 정당의 총리를 임명하게 되었는데 이때 [[자크 시라크]]가 총리로 임명되었다. 시라크는 내정을 맡았고 미테랑은 외정을 맡게 되었으나 시라크의 정책이 경제성장률을 올리지 못하자 인기를 잃었고 미테랑은 독일과 친하게 지내며 유럽 연합기구를 추구하면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를 통해 1988년 대선에서 미테랑이 재선에 성공했다. ==== 영국 ==== [[마거릿 대처]]가 영국 총리가 되어 영국을 다스렸는데 일단 정책은 [[신자유주의]]에 기반했으며 노조를 여럿 조지고 강한 산업 구조조정을 했고 많은 기업을 민영화시켰다. 긍정평가로는 [[영국병]] 극복이 있고 부정평가로는 양극화 심화와 스코틀랜드 독립 관련 문제, 피노체트 정권의 칠레 지원 등이 있어 평가와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데 자세한 건 해당 문서로 ㄱㄱ 그리고 1982년에 포클랜드에서 아르헨티나와 맞장을 까서 이기고 이후 아르헨티나는 이 여파로 독재정권이 붕괴되기는 했으나 아르헨티나 자체도 나락으로 가버려서 중남미 사람들은 대처를 존나 싫어한다. 영국 내에서도 영국을 구한 여인인지 영국을 분열시킨 여인인지에 대한 평가가 크게 갈리다가 최근에는 공과 과를 명백히 구분하려는 추세에 있는 듯하다. ==== 스페인 ==== 독재 정권 붕괴 이후 민주화 테크를 밟고 있었으나 [[23-F]]라는 쿠데타 사건이 1981년 2월 23일에 일어났다. 이때 쿠데타군이 국회의사당을 점령해 인질극을 벌였으나 당시 국회의사당의 아돌포 수아레스 총리 및 공산당 산티아고 카리요 서기장이 쿠데타군의 명령에 응하지 않고 꼿꼿하게 자리에 앉아있었으며 심지어 1936년 프랑코와 함께 [[스페인 내전]]을 일으켰던 프랑코주의자 인사인 마누엘 구티에레스 메야도 또한 쿠데타군에게 호통을 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데타군은 '상관'에게 불복종하며 구티에레스 메야도 부총리에게 총구를 들이댔으며 이 장면은 오랜 기간 군사독재를 겪었던 스페인 사람들에게 그대로 생중계되어 프랑코주의자들까지 쿠데타군을 지지하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스페인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직접 등판했으며 직접 쿠데타군을 비판하면서 쿠데타군은 완전히 명분을 잃었고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스페인 군부가 몰락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하튼 이런 소동이 끝난 이후 국왕을 상징적 존재로 하고 총리가 스페인 전국을 다스리는 입헌 군주제 체제가 최종 확립되었다. 언론 자유 지수도 급상승했고 문화적으로는 그동안 억눌려오며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 시기에 분출하며 스페인 대중문화의 급성장을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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