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1980년대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세계 == === 제1세계 === ==== 미국 ==== [[지미 카터]] 행정부의 실책으로 인해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베트남전 패배 이후 침울해진 미국인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고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 정책을 펼쳤고 대외적으로는 갈수록 세력을 불리고 있는 소련이나 일본을 견제했다. 하지만 니카라과 우익 반군 콘트라를 지원한 이란-콘트라 사건이 밝혀짐으로 인해 도덕성 면에서 비판을 받았다. 여하튼 이 양반은 크게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이니 평가는 알아서 해라 그리고 이 시기는 미국인들이 가장 추억으로 여기는 시기 중 하나인데 [[스타워즈 시리즈]], [[백 투 더 퓨처]] 등의 갓띵작들이 나오고 [[마이클 잭슨]]이 미국을 넘어 세계를 휩쓸었으며 결국 미국이 소련을 이기고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84년 대통령 선거에서 레이건은 재선에 성공했으며 그의 임기 2기가 시작되었다. 1985년에는 일본의 경제력이 지나치게 커지자 일본을 옥상 위로 몰래 불러 [[플라자 합의]]에 동의하도록 시켰고 일본은 거품의 저주에 걸렸다가 훗날 경제가 작살나게 되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레이건 행정부의 공산권 압박과 공산주의의 내부 모순으로 인해 동유럽을 중심으로 민주화 열기가 불었다. 한편 레이건의 임기가 끝나고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89년에는 동유럽의 민주화 열기가 실제 혁명으로 번져 동유럽 공산국가들을 대부분 민주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렇게 제2세계는 껍데기만 남게 되었고 H. W. 부시 행정부는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 1990년에는 쿠웨이트를 쳐들어간 이라크를 참교육해 미국의 위상을 보이기도 했다. ==== 일본 ==== {{유토피아}} 성장세가 안정화되었고 1인당 GNP가 1만 달러를 돌파해 미국의 2/3까지 따라오는 데 성공했다. 대기업 순위에서도 일본 기업들이 절반 이상이 존재했으며 경제 강국이었던 서독을 짓밟고 서독+프랑스+영국 GDP의 합이 일본과 맞먹는 수준의 위엄까지 찍는다. 영토는 일본 제국 시절보다 작아도 그 영향력은 일제 시대 이상으로 성장해버린 일본사상 최전성기를 달성하게 되었다. 문화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룩했는데 음악 시장에서는 일본 아이돌이 유행했으며 애니메이션도 이 시기 급성장해 씹덕들을 대거 양산했다. 미국에서 조금씩 커져가던 게임 시장도 일본이 견인해서 아타리 쇼크로 미국 게임 시장이 좆망한 틈을 타 [[닌텐도|킹텐도]]가 [[슈퍼 마리오 시리즈]], [[젤다의 전설 시리즈]]로 세계 게임 시장을 휘어잡았다. 그리고 그동안 등한시되었던 군사력에 대한 투자도 80년대부터 급증했다. 특히 해군이 급성장을 이루었다. 버블경제 시절 일본의 경제상황을 말해보자면 소비 성향은 남자들은 외제차 매장 가서 계약서에 도장 찍고 여대생들은 명품가방을 누구든지 들고 다니는 등 닥치고 써보는 삶이었으며, 머학 졸업한 뒤 일 구하려고 면접만 갔다왔는데 교통비랍시고 3~5만엔(지금 환율로 치면 면접 갔다왔을 뿐인데 수십만원을 받은 셈이다)을 찔러주는 등 돈다발 그 자체였다. {{거품}} 하지만 이런 일본의 성장을 아니꼽게 바라본 천조국과 꼽사리 일진들은 일본을 플라자 호텔로 몰래 불러 [[플라자 합의]]를 했고 이에 따라 일본은 엔화의 가치를 올리게 되었다. 결국 일본 경제에는 거품이 끼게 되었다. 이후 엔화 가치가 폭등하자 일본은 기존의 '다른 나라보다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수출하는' 전략을 더이상 써먹을 수 없게 되었고 거품 경제의 시대가 열렸다. 이후 일본은 저금리 정책을 펼쳤고 이 틈을 타 미국 채권이 일본 시장에 침투해 부동산 및 주식이 급등했다. 이렇게 일본 경제는 비정상적으로 변했고 일본인들은 더 이상 장인정신에 기반해 노오력을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대충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해서 돈이 부풀려지기만을 주구장창 기다리면서 일본의 경제 구도를 더욱 왜곡시켰다. 1989년, 마침 일본에서 63년 동안이나 덴노를 해먹던 [[쇼와 덴노]]가 사망하고 [[아키히토]]가 덴노로 즉위하면서 [[쇼와 시대]]가 막을 내리고 [[헤이세이 시대]]가 개막했다. 그리고 1989년 12월 29일 닛케이 평균 주가가 38915엔 87전을 찍은 것을 끝으로 일본의 거품은 점차 무너지게 된다. ==== 중화민국 ==== [[장징궈]] 총통이 대만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이 시기부터 국민당 독재가 완화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창당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돼서 지금은 대만의 양대 정당 중 하나인 [[민주진보당]]이 이맘때에 창당되었다. 1987년에는 대만 독재를 위해 내려진 계엄령을 해제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 본토와의 협상을 통해 양안관계 개선과 통일 논의가 시작되기도 했다. 심지어 국민당과 공산당을 합친다거나 중화민국이 UN에 재가입할 방법을 논의하기까지도 했다. 하지만 1988년 장징궈가 사망하고 1989년 중공의 덩샤오핑이 [[천안문 6.4 항쟁]]을 강제진압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전부 다 가라앉아버렸다. 장징궈 사망 이후 [[리덩후이]]가 총통 권한대행으로 취임했다. 그는 최초의 본성인 총통이었고 이 덕분에 외성인과 본성인 간의 차별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기도 했으며 외성인 위주의 국민당 보수파들을 설득시키기도 했다. ==== 서독 ==== [[헬무트 슈미트]]가 연정을 통해 집권하다가 경제 침체로 사민당 내의 운동권 출신 멤버들이 분열의 조짐을 보였고 결국 사민당-자민당 연정이 깨지면서 [[헬무트 콜]]이 총리직을 이어받았다. 이후 집권한 헬무트 콜 총리는 아데나워의 정치적 양자를 자처하며 외교적으로도 미국과 영국에 의존하기보다는 프랑스 등의 유럽 대륙 국가들과 친하게 지냈다. 또한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의 동방 정책을 계승해 1987년 동독의 서기장인 에리히 호네커와 정상회담을 하기도 했다. ==== 이탈리아 ==== 사회적 혼란과 부정부패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었고 이 틈을 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같은 부패한 방송인들도 생겨나고 있었다. ==== 프랑스 ====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임기가 끝난 이후 [[프랑수아 미테랑]]이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제5공화국 첫 좌파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기업들을 공영화시키고 근로 시간을 감축하고 의료를 공공화시키는 등의 정책을 펼쳤고 사형제를 폐지시켰다. 하지만 우파는 그의 정책이 진보적이라고 까고 좌파들은 너무 온건한 개혁이라고 까면서 위기를 맞았다. 또한 나라 빚도 늘어나고 있었다. 한편 외교적으로는 미국과 가깝게 지내면서도 제3세계 국가들과도 친하게 지내려고 했다. 더욱이 당시 프랑스 신좌파들은 제3의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고 심지어 과거 우파들의 정신적 지주인 [[샤를 드골]]도 미국에 휘둘리지 말자는 입장이었기에 많은 호응을 받았다. 1986년 총선에서 여당이 의회의 과반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해 상대 정당의 총리를 임명하게 되었는데 이때 [[자크 시라크]]가 총리로 임명되었다. 시라크는 내정을 맡았고 미테랑은 외정을 맡게 되었으나 시라크의 정책이 경제성장률을 올리지 못하자 인기를 잃었고 미테랑은 독일과 친하게 지내며 유럽 연합기구를 추구하면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를 통해 1988년 대선에서 미테랑이 재선에 성공했다. ==== 영국 ==== [[마거릿 대처]]가 영국 총리가 되어 영국을 다스렸는데 일단 정책은 [[신자유주의]]에 기반했으며 노조를 여럿 조지고 강한 산업 구조조정을 했고 많은 기업을 민영화시켰다. 긍정평가로는 [[영국병]] 극복이 있고 부정평가로는 양극화 심화와 스코틀랜드 독립 관련 문제, 피노체트 정권의 칠레 지원 등이 있어 평가와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데 자세한 건 해당 문서로 ㄱㄱ 그리고 1982년에 포클랜드에서 아르헨티나와 맞장을 까서 이기고 이후 아르헨티나는 이 여파로 독재정권이 붕괴되기는 했으나 아르헨티나 자체도 나락으로 가버려서 중남미 사람들은 대처를 존나 싫어한다. 영국 내에서도 영국을 구한 여인인지 영국을 분열시킨 여인인지에 대한 평가가 크게 갈리다가 최근에는 공과 과를 명백히 구분하려는 추세에 있는 듯하다. ==== 스페인 ==== 독재 정권 붕괴 이후 민주화 테크를 밟고 있었으나 [[23-F]]라는 쿠데타 사건이 1981년 2월 23일에 일어났다. 이때 쿠데타군이 국회의사당을 점령해 인질극을 벌였으나 당시 국회의사당의 아돌포 수아레스 총리 및 공산당 산티아고 카리요 서기장이 쿠데타군의 명령에 응하지 않고 꼿꼿하게 자리에 앉아있었으며 심지어 1936년 프랑코와 함께 [[스페인 내전]]을 일으켰던 프랑코주의자 인사인 마누엘 구티에레스 메야도 또한 쿠데타군에게 호통을 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데타군은 '상관'에게 불복종하며 구티에레스 메야도 부총리에게 총구를 들이댔으며 이 장면은 오랜 기간 군사독재를 겪었던 스페인 사람들에게 그대로 생중계되어 프랑코주의자들까지 쿠데타군을 지지하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스페인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직접 등판했으며 직접 쿠데타군을 비판하면서 쿠데타군은 완전히 명분을 잃었고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스페인 군부가 몰락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하튼 이런 소동이 끝난 이후 국왕을 상징적 존재로 하고 총리가 스페인 전국을 다스리는 입헌 군주제 체제가 최종 확립되었다. 언론 자유 지수도 급상승했고 문화적으로는 그동안 억눌려오며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 시기에 분출하며 스페인 대중문화의 급성장을 이룩했다. === 제2세계 === 레이건 정부의 공산권 압박과 공산주의의 자체적 한계로 이 시기 대부분의 공산권 국가들이 붕괴를 맞이했다. 폴란드에서는 공산당이 몰락하고 노조 출신의 [[레흐 바웬사]]가 민주화를 이루었고 루마니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엘레나 차우셰스쿠]] 부부를 총살하고 민주국가로 전환되었다. ==== 북괴 ==== 공산주의가 점차 몰락해가는 시대 속에서도 김일성이는 혼자서 자신의 권력을 끝없이 강화해나가며 만행을 벌였는데, 1980년대부터는 자기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대규모 토목 공사를 벌이다가 자주 망했다. 대표적으로 3대 실책으로 불리는 서해 갑문 설치와 순천 비날론 연합 기업소, 그리고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있었다. 특히 마지막 행사는 주로 공산권이나 제3세계에서 여는 행사를 북한에서 연 것이었는데 이것은 아무런 돈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열심히 돈을 쏟아부어 남한의 성공적인 서울올림픽 준비 및 투자와 대조되었다. 안 그래도 군사비용으로 쓰는 돈이 대다수인데 여기에 돈을 쏟아부어버렸고, 마침 남한에서 민주화 열풍이 좀 심해져서 [[임수경]]이라는 또라이가 [[임수경 방북 사건]]을 일으켰는데 경직된 북한 사회와 대조되는 남한 청년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고 충격받은 북한 사람들이 되려 동요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위상(?)을 알리려고 행사를 준비했다가 되려 북한 전역에 남한의 위상만 똑똑히 각인시켜버렸고 훗날 임수경이 북한처럼 탄광행이나 처형을 당하지 않고 징역 5년을 받는 수준에서 끝나고 가족들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만 되는 수준에서 끝났다는 사실을 북한 사람들이 접하자 북한 사회는 더욱 크게 동요했다. 무엇보다 이 시기부터 탈북자가 급증했고 북한은 1980년대를 시작으로 끝없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한편 이 시기부터 [[김정일]]이라는 작자가 권력 장악을 시도하며 자신의 가족들까지 몰아내고 당 대회에서 여러 직책을 임명받으면서 국가 서열 2위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는 이미 70년대부터 [[기쁨조]]를 조직해 애비인 김일성에게 갖다 바치면서 김일성의 눈을 가리고 실질적인 권력을 본인이 독차지해나가고 있었다. ==== 짱깨 ==== [[흑묘백묘론]]을 내세우며 대외 개방 정책을 펼쳤고 1983년에는 사이가 나빠졌던 소련과도 다시 관계를 회복했다. 1984년에는 [[중영공동선언]]을 발표해 홍콩을 1997년에 되돌려받기로 합의했다. 뭣보다 경제 특구 4개를 시범 지정해 중국 남부 도시들을 키워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통합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산주의라는 기본 틀을 전제로 한 개혁이었고 독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또한 개혁개방으로 인해 양극화가 심해지고 빈부 격차도 커졌다. 여하튼 개혁개방을 통해 리버럴한 성향을 갖게 된 학생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천안문 등지에서 민주화 요구를 하기 시작했고, 심기가 불편해진 [[덩샤오핑]]은 이들을 강경진압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다가 1989년에 [[후야오방]]이라는 양반이 죽었는데 그는 많은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아오던 인물이었던 탓에 많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천안문 광장에 모여 추모를 시작했다. 하지만 1989년 6월 4일 중국인민해방군은 탱크를 밀고 들어와 시위대를 대학살하는 바람에 짱산당 피셜 218명 정도 죽었으나, 실제로는 만명 넘게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탱크맨]] 같은 영웅들도 나타났다. 여하튼 중국은 무력 진압에 성공했고 당 내의 개혁주의자들을 대거 숙청하면서 다시 권위적인 공산 독재 시대로 회귀했다. 물론 일부 시장 경제는 유지한 채로 말이다. 이후 중국은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며 체제를 유지했고 동유럽의 대거 민주화 열풍에도 휩쓸리지 않은 채 훗날 세계에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거대 독재국가로 자리잡게 된다. ==== 소련 ==== 소련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였으나 점차 몰락하고 있었다. 마침 아프가니스탄에 세워진 친소 정권이 반소 시위 및 폭동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소련인들이 폭도들에게 사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친소 정권이 쿠데타로 뒤집히면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게 된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지리적으로 천혜의 요새와 같은 나라로 전혀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단기에 끝날 것 같았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무려 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을 개최했는데 미소 관계가 극악으로 치닫으면서 서구권 국가들이 대거 불참하는 일이 있었다. 공산권 국가들끼리 치룬 이 올림픽은 반쪽짜리 올림픽이라는 평을 받았고 소련은 실제로 큰 타격을 입었다. 1982년에는 소련 제국의 차르인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사망했고 [[유리 안드로포프]]가 소련 제국 차르로 즉위했다. 이 시기에는 미국에서 서맨사 스미스라는 급식이 편지를 보내 안드로포프가 답장하고 그 가족을 소련으로 초청한 사건이 있었다. 또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으로 인해 한국과도 사이가 나빠졌고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라는 사람이 컴퓨터 오류로 인한 우발적 미사일 발사를 겨우 막아 핵전쟁을 막아냈다. 1984년 소련 차르인 안드로포프가 사망하고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차르로 즉위했다. 크게 눈에 띄는 사건이나 업적, 실책은 많지 않았고 대신 교육 개혁 작업에 착수했고 중국과 교섭을 시작했으며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불참하면서 해당 올림픽을 제1세계 국가들만의 올림픽으로 만들기도 했다. 물론 제1세계의 경제력이 훨씬 컸기에 소련과 다르게 미국은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1985년 3월 10일 체르넨코가 사망하고 다음날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제국 마지막 차르로 즉위했다. 그의 시대에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리우는 개혁개방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경제 및 정치적 개혁에 실패하고 너무 조급했기 때문에 소련 멸망의 단초를 제공했고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후 이를 수습하는 데에도 실수한 데다가 희생양을 찾아 잘못을 뒤집어씌우기까지 하는 소련 정부의 잘못된 대처 때문에 공산주의 체제의 실패가 더욱 확고해지게 되었다. 1989년에는 동유럽의 공산권 국가들이 대부분 민주화되면서 공산권도 붕괴를 맞이했고 소련은 이제 해체만을 앞둔 껍데기만 커다란 국가가 되었다. 결국 소련을 몰락시켜버린 그는 훗날 러시아인들에게 옐친과 함께 욕을 덩달아 먹는 신세가 되었다. 반면 유럽에서는 소련 해체와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고 칭찬을 받고 있다. ==== 동독 ==== 동구권 국가들이 하나둘씩 민주화되어가는 추세에서 동독의 공산주의도 더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었고 당시 동독 지도자였던 에리히 호네커는 현실을 부정하며 1989년 동독 수립 4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루는 등 삽질을 했으나 결국 반공 시위가 커지고 그는 물러났다. 이후 에곤 크렌츠가 동독 서기장으로 취임했는데 그는 기존의 억압적인 동독의 분위기를 없애고 점차적 자유 개혁을 이룩하기를 약속했으나 실상은 지켜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갈수록 시위가 거세지자 1989년 11월 9일 여행 일부 자유화 정책을 발표하려고 했는데, 이때 기자가 국경 개방은 언제 할 거냐라고 묻자 당시 정부의 자율화 방침을 전혀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귄터 샤보프스키 총서기가 지연 없이 즉시라고 말해버리는 사고를 치면서 이 소식은 전 세계로 퍼졌다. 결국 동서독 국민들도 이를 접하고 [[베를린 장벽]]을 작살내기 시작했는데 동독 군인들은 이를 막으려 했으나 하도 많은 사람들이 드릴, 해머, 빠따, 불도저, 크레인 등을 들고 달려와 장벽을 작살내는 모습을 보니 여기서 눈치없이 진압했다가는 쳐맞아 죽을 것 같고 자신들의 일이 통일을 방해하는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받아 방치했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은 이듬해인 1990년 완전히 해체되었다. ==== 베트남 ==== 캄보디아, 중국과 맞다이를 뜨면서 베트남의 경제 상황도 작살났고 이로 인해 수많은 보트피플들이 추가 양산되었다. 이때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 및 글라스노스트 개혁개방 정책이 시행되자 베트남에서도 1986년에 도이모이(베트남 개혁개방)를 추진해 시장 경제를 일부 인정했다. 1989년 캄보디아에서 철수한 후에는 조금씩 자본주의화가 되어가고 있다. === 제3세계 및 기타 === ==== 동남아 ==== ===== 미얀마 ===== 무능한 사회주의 정권의 [[네 윈]]이라는 작자가 버마를 말아드셨으며 결국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1981년 그는 대통령직을 우 산유에게 넘겨준 다음 뒤에서 실권을 쥐고 나라를 흔들었다. 결국 1987년에 통용 지폐를 일부 회수하겠다는 미친 정책을 내놓았고 경제가 씹창나자 이에 반대한 사람들이 1988년 8월 8일 대거 들고 일어나 [[8888 항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군부는 이를 무력진압해 대학살을 벌였고 결국 전 세계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네 윈은 계속 학살을 벌이다가 소 마웅이 쿠데타를 일으켜 네 윈을 쫓아내고 신군부로 집권했다. 신군부는 국명을 미얀마로 변경했으며 수도인 랑군을 양곤으로 개명했다. ===== 태국 ===== 군부와 공산군 간의 갈등은 내전 직전까지 번졌으나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이런 갈등도 사그라들었고, 이후 민간 정부가 들어서 관광 사업을 발전시켜 태국은 급성장을 맞이했다. =====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 말레이시아의 경우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총리가 1981년 집권해 정적 탄압 및 국왕 권한 축소를 통해 독재 체제를 확립했고 경제 개발을 진행해 국가가 급성장을 이루었으나 말레이계 우대 정책과 중국 및 인도계 탄압으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싱가포르에서는 [[리콴유]]가 엘리트 우대 정책을 펼쳤는데 출산 정책까지 모조리 엘리트 양성을 위한 목적으로 바꿔버리면서 많은 비판을 받긴 했지만 여하튼 실제로 많은 엘리트들이 양산되어 싱가포르는 동남아에서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독재가 강화된 탓에 경제력만 강한 권위주의 국가로 성장했다는 문제를 낳았다. ===== 인도네시아 ===== 80년대에 들어서 고도 성장기를 맞이했고 소득 수준이 크게 올랐으나 [[수하르토]] 가문 재벌의 횡령과 부정부패가 판쳤고 많은 사회적 문제점을 남기게 되었다. 또한 경제 발전으로 인건비가 상승해 해외 기업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으로 공장을 옮겨버려 타격을 입었고 훗날 90년대의 동아시아 대규모 경제위기 때 크게 참교육을 당하게 된다. ===== 필리핀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탄압이 도를 넘어서자 [[베니그노 아키노]] 등을 중심으로 한 야당에서 큰 비판이 쏟아졌고 여론이 심하게 악화되어 내전 수준까지 격화된 분쟁이 일어났다. 결국 1981년 1월 17일 계엄령을 해제했으나 이후 부정선거를 통해 재선했다. 1983년에는 야당 민주화운동가인 베니그노 아키노가 암살당했고 마르코스에 대한 여론은 더욱 악화되었다. 하지만 마르코스는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했는지 대선을 1986년으로 앞당겨 선거를 치뤘고 막상 표를 까보니 야당 후보이자 베니그노의 아내인 [[코라손 아키노]]가 몰표를 받자 화가 난 마르코스는 개표를 중지하고 마르코스의 승리를 선언하며 정신승리했다. 결국 국민들은 모두 분노해 들고일어났으며 전 세계의 언론에서 마르코스를 저격했다. 또한 부정선거 정황이 모조리 밝혀졌으며 마르코스의 뒤를 봐준 미국마저도 마르코스를 버리고 마르코스의 부하 중 하나인 피델 라모스 육군대장마저도 대통령직에서 당장 꺼지라는 발언을 하면서 시민과 코라손 아키노 편에 붙어 군대를 끌고 대통령궁으로 진격했다. 최종적으로 마르코스는 하야 후 하와이로 빤쓰런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시위를 이끈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 인도 ==== 새로 집권한 여당이 단순 '반 간디'를 내세운 집단이었던지라 금방 붕괴했고 1980년 총선에서는 이들의 삽질로 인해 [[인디라 간디]]가 다시 총리로 취임했다. 하지만 시크교 탄압은 지속되었고 1984년에는 암리차르 황금 사원에 탱크와 박격포를 끌고 가 시크교도들을 학살했다. 하지만 간디는 경호원으로 체격이 좋은 두 명의 시크교도들을 임명했고 이들을 크게 믿고 있었는데 학살 사건으로 그 두명까지 돌아서게 만들었고 결국 이 경호원들은 간디를 암살했다. 이후 인디라 간디의 아들인 라지브 간디가 총리로 집권했다. 한편 1983년 스리랑카에서 타밀족과 싱할라족 사이에 내전이 발발했는데 1987년에 인도에서 인도 내의 타밀족들이 독립을 요구할 지도 모른다는 명목으로 스리랑카 정부를 지원하기로 결정해 내전에 참가했다. 그는 경제를 발전시키고 과학 기술 발전에 투자했으나 타밀족과의 갈등을 빚었고 1987년 스웨덴 무기회사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루머가 확산되어 1989년 총선에서 실각했다. ==== 중동 ==== ===== 이란 ===== [[팔라비 왕조]]를 몰아내기 위해 일어났던 [[이란 혁명]]은 근본주의자 꼴통들과 그들의 수장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꼽사리를 끼는 순간부터 이슬람 근본주의 반동 폭동으로 변질되었고 이들은 집권하자마자 민간 시위대를 배신하고 모조리 탄압하고 숙청했다. 그리고 강력한 반미 및 반소반공 노선을 채택해 스스로 고립을 택했다. 이후 이란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면서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는데, 웃긴 건 훗날 미국의 심기를 건드려 두번이나 탈탈 털릴 이라크가 이 때는 이란의 온갖가지 만행 때문에 서구권의 옹호를 받았다는 것이고, 이란도 이라크 하나를 막기 위해서 지들이 몰아냈던 팔라비 왕조의 국가(國歌)를 부활시키는 짓거리까지 했다는 것이다. 여하튼 중간에는 이란이 다시 이라크를 압도하고 이라크 영토까지 쳐들어갔으나 이란의 무기의 기술적 한계로 다시 이라크가 전세를 역전시켰고 두 나라의 소모전은 갈수록 확장되다가 1988년 이라크가 영토 내 이란군을 몰아내고 둘 다 나라가 씹창나면서 정전 협정을 맺었다. 이후 이란에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독재정권이 확립되었다가 1989년 호메이니 사망 후 [[알리 하메네이]]가 집권했다. 이라크에서는 [[사담 후세인]]이 계속 독재를 이어나갔다. ===== 아랍, 팔레스타인 ===== 시리아에서는 하페즈 알 아사드가 독재를 이어나갔고 사우디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메카의 카바에서 인질극을 벌이는 사건이 일어났다가 진압되자 극보수로 회귀해 이슬람권의 대표적 꼴통 국가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경우 1980년대 초반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게 반환하며 이집트와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고 1982년에는 PLO를 축출하기 위해 레바논을 침공했다. PLO는 축출되었으나 레바논에 대한 시리아의 영향력만 강해졌으며 결국 이스라엘은 남레바논으로 후퇴했다. 1987년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인티파다를 일으켰으나 이스라엘군은 이들을 강경진압하면서 국제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 북아프리카 ===== 이집트에서는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추진하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1981년 암살당하고 부통령인 [[호스니 무바라크]]가 독재자로 집권했다. 리비아에서는 반서방주의자인 [[무아마르 카다피]]가 온갖 패악질을 벌이다가 미국에게 폭격을 쳐맞기도 했다. 알제리에서는 사회주의 정권이 집권했다가 안일한 경제 정책에 대한 반대 시위로 인해 사회주의가 폐기되고 다당제가 인정되었다. 모로코에서는 하산 2세가 국왕으로 재위하면서 정적 탄압 등의 독재 행위를 했고 서사하라에서는 폴리사리오 전선과의 분쟁이 잦았다. ==== 아프리카 ==== 에티오피아에서는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이라는 또라이가 공산독재를 벌이고 나라 경제를 씹창내고 있었고 1987년 군정 폐지 후 에티오피아 인민 민주 공화국을 선포해 스스로 대통령직에 올랐으나 아무것도 바뀐 건 없었다. 결국 반군이 1988년에 들고 일어났고 내전으로 번졌다. 앙골라에서는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가 공산독재를 펼쳤고 대외적으로 조용히 지낸 탓에 국제적 지탄을 받지 않고 암암리에 부정부패를 벌였다. 짐바브웨는 영국령 로디지아로 지내다가 1980년에 아프리카 마지막으로 독립을 맞이했는데, 초대 대통령으로는 카난 바나나가 취임했으나 1987년 [[로버트 무가베]]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독재자가 되어 집권했다. 그는 희대의 병신같은 경제 정책을 펼쳤는데 거대 기업들의 주식의 절반을 국가가 삥뜯었으며 이로 인해 외국 기업들이 철수하자 시장 물자가 사라져버렸고 이는 짐바브웨가 레전드급 인플레이션을 맞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