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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MF 외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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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환 위기 이전 한국 모습 == {{유토피아}} {{흥한 시즌}} {{과거의영광}} * 식당 입구에서 문 열어주고 인사하는 직원 존재. 참고로 당연히 정규직이다. * 대기관 혹은 대기업 큰 빌딩이나 백화점마다 엘리베이터 걸이라고 층수 눌러주는 여자 존재. 당연히 정규직이다. * 중졸도 막말로 나사만 돌릴 줄 알면 취직해서 진급함. 그리고 이때 취직한 놈년들이 현재 공장장... 진짜로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기 이름을 한문 내지 영어로 쓸 줄 모르는 국졸들이 공장장을 지내고 그랬다. * 은행이율 10%가 평균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이자가 10%가 넘었다. * 하도 부사관 하겠다는 인간이 없어서 중졸 초졸들이 병장에서 하사로 진급해서 부사관을 하고 그런 인간들이 현재 주임원사... * 경찰관 및 소방관도 하겠다는 인간들이 너무 없어서 순경&소방사는 물론이고 경찰종합학교&소방종합학교조차 지원이 곧 합격이었음. 아예 경찰종합학교&소방종합학교는 매 해마다 미달크리 먹었음. ㄴ 참고로 이건 전두환-노태우 때 군부정권 불만 잠재운답시고 범죄와의 전쟁 등 치안 위주 정책 펼쳐서 경찰관들&소방관들 수가 부쩍 늘어난 탓도 있다. 특히 경찰관들의 경우 뒷돈이 일상화된 상태라 (비공식적) 상당한 고소득 공무원이였고. 소방관들 역시 피해자들을 무사히 살려서 구조시켜주면 피해자들 가족들로부터 뒷돈을 받기도 했다. * 대학 나와서 9급 공무원하면 가족들 및 친척들한테 욕 먹고 호적에서 파였음. 그리고 이때 공무원 한 놈년들 대부분이 현재 과장, 계장, 팀장...(수정 전에는 그냥 공무원으로 했는데 옛날에는 판검사가 더 권력 있었다. 그때도 판검사는 쩔었다.) * 대학에서 공부 왜 함? 졸업장만 따면 원하는 대기업들 골라가는데... 그래서 이때 대학가는 놀자판이었고 술 마시고 담배 피고 기타 치고 띵가띵가 놀았다. 그러다가 노는 것조차 지겨우면 데모를 했다. 그래도 데모 존나 하거나 대놓고 빨갱이 짓 해서 빨간줄 안 그이면 취직 잘도 했다. * 알바만 해도 대학등록금 충분히 벌었다. 참고로 이때는 비정규직이 없었기 때문에 알바가 전부 정규직이었다. 그래서 대학등록금 벌려고 알바했다가 그걸 직장으로 가지게 된 놈년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학원 선생들, 인강 강사들, 학습지 선생들은 거의 90%가 이 테크 탔다고 보면 됨. * 대기업 특히 건설사는 신입사원 수 백 명씩 뽑음. 이때 뽑힌 놈년들은 대부분 IMF 때 모가지가 날아갔지만 살아남은 놈년들은 대기업 고위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금은 정년퇴직 했겠지? * 자영업자는 사장님 소리 들으면서 주변 사람들한테 대접받고 말 그대로 가게를 오토로 돌려도 생활이 충분히 가능한 개꿀같던 시절. 내가 치킨집 사장 아들이라고 하면 금수저 대우 받았다. * 비정규직 따위가 존재하지 않아서 전원 정규직행. 한번 취직하면 범죄같은 사고만 안 치면 공무원처럼 평생직장행. * 서울 양천 목동 지역의 아파트 한 채가 8000만원(지금 5억 후반) * 사교육? 없다. 국가에서 사교육을 금지했다. 그 대신에 만든 게 EBS다. 그래서 금수저든 흙수저든 공부 환경 조건은 거의 똑같았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ㄴ미친 리얼 헤븐조선이네 ㄴ90년대 초반생인데 어릴적의 한국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지금이랑 너무 달라서 소름끼친다. 밖에 나가면 웃는 얼굴로 정겹게 대해주는 사람이 많았고, 서구 사회의 개방성과는 다르지만 나름의 정신적 여유가 가득한 분위기였다.(지나가던 손님한테도 같이 밥 먹고 가시라고 붙잡았던 시절이다. ㄹㅇ 몇 번이나 모르는 사람이랑 밥 먹었었던 기억이 분명히 있다.) 자신의 삶이나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었고.(물론 시민의식 및 정신의학에 대한 인식이 심하게 떨어져서 그런 것도 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항상 내일이 오늘보다 더 성장한다는, 긍정적 경험들로 가득찬 디즈니 애니속 동산 같은 느낌이 있었다. 당시 뉴스에서는 김영삼 정부가 OECD와 같은 대부분 선진국들이 회원으로 있는 세계 국제 기구에 잇달아 가입하면서 우리도 이제 "세계에서 인정한, 인증받은, 공인하는 선진국입니다" 라고 허구한날 홍보하는 멘트를 썻다. 당시 정부와 관료들은 당당히 선진국 클럽 반열에도 올랐으니 아시아권에서 우리를 유일하게 뛰어넘는 국가를 중국과 일본이라 하면서 따라잡을 일이 머지않을 것이라고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거. 힘든 사람은 도와줘야 하고,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이간질하는 새끼를 개새끼라고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처럼 서로 금수저들이 만들어놓은 콜로세움 안에서 니가 더 병신이니 내가 더 잘났니 하며 쥐 잡듯이 매일 전쟁을 벌여대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상상할 수 없었다. 참고로 이 시기에 개꿀빤 세대가 바로 [[586세대]]다. ㄴ ㄹㅇ 지금도 임금체불 밥 먹듯이하며 노오력 타령하는 틀딱들이 바로 이때 취업 날로드신 [[586세대|좆팔육]] 새끼들이다 지나가다 한마디 한다. 이건 일본 버블경제때도 동일했었다. 아니 오히려 더했지. 오죽하면 일본 전재산 털면 미국땅 중국땅 전부 다 산다는 얘기까지 나왔으니까. 씹덕들은 잘 알테지만 일본 버블경제때 나온 애니메이션들이 죄다 수작업으로 작화 때려박아서 쩌는 애니들이 많았었다. 지금보면 구데기이지만서도 우리나라 IMF 논할려면 플라자 합의가 빠질 수 없다. 그때 미국 레이건 정부가 플라자 호텔에서 독일, 일본측 앉혀다가 환율 조정하려했는데 애새끼들이 말을 안들어 쳐먹어서 아예 냅킨에다 '이 정도로 환율줄여 ㅇㅋ?' 이런 씹깡패짓을 했다. 지금 같아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지금 트럼프가 중국 조지듯이 레이건 역시 일본을 줘팸했는데, 이걸 잘 파고든게 바로 전두환 정부였다. 전낙지 욕 많이 쳐먹어도 이때 노저은 건 신의 한수였다. 어떻게 일본을 벗겨먹었는지 레이건 정부와 짜고 F-16 전투기를 일본 차관으로 땜빵쳐서 국내 도입했다. ㅆㅅㅊㅌ 위에 설명한 헤븐조선이 이때부터가 시작된거. 일본 환율이 치솟으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우리나라 공산품이 북미시장에서 팔려나가기 시작하고 기업들이 사업해먹기 좋은 환경이 된거다. 근데 어쩌다 헬조선 됐냐고? 위에 죄다 설명 나와있잖아. 땡삼이가 정치를 개같이 해서 좆된거지 뭐겠냐. 1인 소득 1만 달러 밀어붙일려고 경제전문가들 경고 다 좆까고 해외 외환시장 요동치는거 모르고 지랄싸다 외환 바닥난게 첫번째고, 두번째는 일본이 통화 스와핑 응 좆까 시전한거. 시발 총독부 건물 때려부수고 독도에 전투기 보내고 이 지랄하는게 뭐가 이뻐서 해주겠냐. 일본이 통화 스와핑 해줬으면 IMF로 이렇게 개쳐맞진 않았겠지. {{파시스트}} 근데 경제적으로는 플라자 합의 영향으로 풍요해도, 사회 문화적으로는 군사독재 시절에 곯았던 교육, 노동, 종교, 군대, 빈부격차 등 온갖 사회 분야의 음지에 잠겨있었던 불만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시절이었다. 당장 외환위기 이전에 땡삼이 정권의 별명이 사고공화국이라고 불린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민주화가 되면서 자유 체제의 성격을 갖는 경제 발전 속도에 따라오지 못한 권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회제도와 시민의식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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