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3.1 운동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헌병 통치 체제의 부식 === 어제까지만 해도 11시 외국이었던 조선을 장악한 일본 제국이었지만 행정 전통과 문화 전통의 이질성이 통치의 장애물로 기능하고 있었고 이러한 장애물에서 비롯되는 페널티를 보완하기 위하여 헌병 제도라는 무단 통치 요소를 도입하였다. 이 요소를 조선에 도입하고 구축한 자는 조선의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 그는 일본 육군 원수 출신으로 쵸슈번벌이었다. 조선 통치를 효과적으로 해낸 그였지만 1916년에 물러나서 정치질을 하면서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당시 조선은 일본 육군의 거의 유일한 전리품이나 다름없었는데 실제로 일본 제국이 조선 병합이라는 결정을 내린 건 육군을 축으로 하는 쵸슈번벌들의 입김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쵸슈번벌의 육군 출신 인사가 아닌 다른 인물에게 육군의 전리품 조선을 넘겨주기 싫었고 그래서 퇴임 당시 하세가와 요시미치를 제2대 조선 총독으로 추천했다.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러일전쟁 당시 수려한 통솔력으로 조선반도를 제압한 전력이 있는 장군이었다. 당시 하세가와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평가가 그다지 좋은 인사가 아니었지만, 이러한 육군에서의 화려한 전적을 놓고 볼 때 평타 정도는 쳐 줄 거라고 데라우치가 기대한 듯했다. 하지만 총독으로 앉혀 놓고 보니 웬 좆병신이었다. 일단 하세가와는 육군 이외의 지지 기반이 없는 정치인이었고 뇌물을 좋아했기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았고 따라서 조선총독부의 고위 공무원들이 새로운 총독을 잘 따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까 일본 제국의 조선 통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통제가 느슨해져 죽창맨들이 일어설 환경이 마련되었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